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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기자 Oct 13. 2021

아, 지역에서 왜 그래!

이웃 지역의 군수가 뇌물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지역은 중앙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입니다. 군수는 그 지역의 소통령이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권력과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군수입니다. 당연히 지역에서는 큰 뉴스입니다. 군수가 뇌물수수라니요!


당장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수사는 경찰 수사를 거쳐 검찰로 넘어간 단계입니다. 취재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그랬듯이 검경 수사당국 취재는 어렵습니다. 무얼 물어봐도 모르쇠로 일관하지요. 경찰도 말을 안하지만, 검찰은 더 말을 안 하는 조직입니다. '모르겠습니다.' '확인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 2가지 말만 들을 수 있을 뿐이죠. 민감한 수사 정보를 공개하는 데 조심스러운 건 이해하지만, 기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어찌어찌 알게된 사실은 오늘 내일 군수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다는 겁니다. 정확한 소환 시각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지역 기자 여럿과 팀을 짜고 돌아가면서 검찰청사 앞을 지켰습니다. 기자들 말로 '뻗치기'를 시작한 거죠. 청사로 들어가는 군수를 붙잡고 한 마디라도 들어보려는 몸부림입니다. 혹시나 군수가 검찰청사로 들어설까 눈을 부릅 떠고 지켜봅니다. 


뻗치기는 지루한 과정입니다. 검찰청사 입구에 촬영기자와 함께 가서 삼각대를 입구에 '척' 세워놓습니다. 그리고는 무한정 기다리는 겁니다. 언제까지요? 우리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 조사를 받으러 올 때까지요. 


오전이 지나고 점심 시간이었습니다. 통상 검찰에서는 식사를 위해 소환자를 내보내줄 때가 있습니다. '군수가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청사 문이 열리더니 조사를 마친 군수가 나옵니다. 카메라 기자와 저는 날 듯이 달려갔습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기자들이 피의자에게 붙어 질문을 합니다. (자료화면)


오늘 어떤 일로 오셨나요? 


군수가 저를 째려봅니다.


오전에 안에서 무슨 말씀 하셨나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군수가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아 지역에서 왜 그래!


갑자기 한 소리 들은 저는 순간 벙쪄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군수는 그런 저를 두고는 변호사와 함께 총총 걸음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소식을 들은 동료 기자들은 낄낄 대고 난리가 났습니다. ㅠㅠ. 


지역 사람끼리 살살 하라는 얘기잖아요. 너무 적극적으로 붙으니까 그랬나 보네.


그렇습니다. '같은 지역 사람끼지 뭐 이런 일 가지고 이렇게 취재를 해서 사람 욕을 보이냐'는 의미였던 겁니다. 좁은 지역 사회 특성이 반영된 한 마디였던 거죠. 아마 군수는 제가 지역 출신이 아니란 걸 몰랐나 봅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저로선 억울할 수 밖에요. 지역이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지만, 지적할 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 군수는 어떻게 됐냐고요?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군수직을 내어놓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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