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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의 계약 파기, 3번째 시도 끝에 매수한 첫 집

<부린이는 첫사랑에 빠지기 쉽다>

by 시크릿져니

부린이는 용감했다.


부동산 공부한지 4개월만에, 집 근처 경기도 구축아파트를 덜컥 계약했다.


가계약금 100만원을 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실행에 옮겼다는 뿌듯함과 알 수 없는 흥분으로 가득찼다.


'드디어 나도 1주택자야!!'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괜히 덜컥 질러버린 건 아닐까? 밤마다 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시나리오가 돌아갔다.


계약일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잘수가 없었다. 흥분이 아니라 불안 때문이었다.


계약 당시 부동산 사장님은 '이 가격에 나온 게 기적'이라 했고, 매도자는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정작 나 자신은 이 아파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부동산 고수인 팀장님께 친구이야기로 둔갑하여 투자상담을 했다.


결과는 매수 반대.


매수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을 듣고 나니,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역시,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


고민 끝에 결국 계약을 파기했다.

하지만 며칠 뒤, 마음이 바뀌어 옆단지 물건에 가계약금을 걸었고 같은 이유로 계약을 포기했다.


두번의 계약파기로 날린 돈만 200만원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강의료지만 덕분에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 실력으로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후로 매일같이 부동산 공부에 집중했다. 아침에 책 읽고 점심시간에 강의 듣고 퇴근길에는 임장을 갔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첫 투자처가 서울이면 좋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수도권에서도 입지가 탄탄한 곳을 투자하기로 마음 먹었다.


당시 내가 세운 기준은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 무조건 강남과 가까울 것

- 학군이 좋아서 전세수요가 꾸준할 것

플러스, 여기에 실거주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조정지역이었기에,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일정 기간 살아야 했으니까.


추리고 추리다보니 내 기준에 들어온 곳이 보였다.

다 좋은데 단점이라면 30년차 구축 59타입이란 점?


마침 관심있게 보던 단지 RR 매물이 나왔다길래 보러 갔다. 입주 후 한번도 인테리어 한적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인 듯 했다.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을 만큼 어마무시한 상태였다.

처음부터 오래된 집들만 보러 다녔더니, 이정도는 무난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이 저렴했다.

나에게는 그 어떤 신축보다도 빛나 보였다. 마치 첫사랑처럼ㅎㅎ

무엇보다 나와 시간차로 이 집을 사기 위해 달려온 신혼부부가 있었다.

이번엔 경쟁자도 붙었다.


그래,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군.


그렇게 5년 동안 모은 돈 1억, 여기에 마이너스 통장 1.5억을 탈탈 털어 갭투자를 강행했다.



잠깐, 5년동안 모은 돈이 1억밖에 안되냐고?

다시 얘기하지만 당시 나는 미래 따윈 없는 욜로족이었다.

"행복은 지금 여기!"를 외치며, 여행이든 쇼핑이든 하고 싶은 건 다 하며 살았다.

...지금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예전과는 달리,

계약일이 다가와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무탈하게(?) 계약일이 다가왔다.



"이 집에 살면서 좋은 일만 가득했어요. 아들, 딸도 여기서 키우고 시집 장가 잘 보냈어요. 이 집 팔고 맘 편하게 고향 내려갑니다. 좋은 기운이 가득했던 집이니, 앞으로도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시원섭섭해하는 노부부의 말에, 마음이 찡했다.

아파트는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가는 곳이었다.


나는 실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이 집을 샀지만, 그래도 이 공간을 채워갈 세입자들이 좋은 기억만 남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사고 처음으로, '단순히 수익을 내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고민해 본 날이었다.


전주인이 행운의 열쇠꾸러미를 건네주셨다^^


이 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집주인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좋은 기운이 가득한 집'이라던 그 말.


나도 좋은 기운을 이어가고 싶었다. 세입자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손을 좀 봐주기로 했다. 사실, 강의에서 배운대로 깔끔한 기본수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욕심이 문제였다. 처음엔 도배랑 장판만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욕실이 너무 낡아 보여서 화장실도 손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아예 싹 다 뜯어고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세입자한테 최고가로 전세를 맞출 거라면, 이 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아직 몰랐다.


이 착각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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