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 김지윤의 실수와 실수. 그리고 실수
다시 호주에서의 나날들로 돌아와 보자면, 시드니 북단의 카페에서 일하던 시절의 나는 학생 비자 소지자였다. 그 당시 호주에서는 거주용 학생비자를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받을 수가 있었는데, 거주용 학생비자라 함은, 일주일에 한 번 단타로 학교 수업을 치고서 제출해야 할 과제를 그 자리에서 선생님과 함께 완벽히 만들어 낸 후 남은 평일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저비용의 학교, 말 그대로 이 나라에서 장기로 지내기 위한 눈 속임용의 비자이다.
이쯤 되어 내 성격을 스리슬쩍 말해볼까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 그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으로서 대학교 문을 박차고 나온 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졸업장을 따지 못했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마음 아파하는 명예 주의자라고 정의 내리겠다. 하지만 또 아이러니하게 지구력은 남들의 반의 반조차 되지 않아 무언가를 벌려놓고서는 끝을 낸 적이 열 번 중 0.5번밖에 되지 않는, 최악 중 극악의 인물이다. (나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런 나의 눈에 거주용 학생비자는 결단코 불명예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나는 외국인 친구들과 능수능란하게 영어 과제를 하며 한국에서 따지 못한 졸업장도 따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학비까지 충당하는 그런, '다른 아줌마들의 부러움을 사는 미세스 리의 딸, 혼자 호주 유학 가서는 학비조차 손 벌리지 않는 본새 나는 자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자기만족이 아닌 능동적 부모 만족? 뭐, 그 비스무리한 것이었을 테다. 아 물론 미세스 리는 나에게 그런 기이한 짓을 종용한 적이 없다. 이 황당무계한 나의 선택이 3n살이 된 지금까지도 내 발목을 거머쥐고 놓아주지 않을 줄이야. 뭐, 어찌 되었든 간에 3n살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다시금 나의 비자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나는 유아교육학과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최악 중 극악의 인성 소유자답게 나는 어린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줄 줄을 모른다. 아이들의 영민함은 언제고 날 기만하는 듯 보였고 그들의 순수함 저 아래 숨겨져 있을 성악설의 뿌리가 늘상 의심되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유아 교육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김지윤 인생 최악의 선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유아 교육학과는 내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학과 중 하나였고, 그 당시 나는 친구 조카를 꽤나 자주 만났었는데, 아이들을 좋아하는 친절하고 밝은 여성!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지금은 탈피했다.) 나의 모든 친구들과 심지어 부모님조차 나를 말렸다. 너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이 것은 정리된 삶을 착착 살아가야만 했던 나의 완벽한 계산 오류임을 이제서야 인정한다.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고역이다. 아이가 하는 악의 없는 말과 그들이 내뿜는 분비물, 장난스레 나를 향해 던지는 모래 따위를 받아들일 정신력이 나에겐 없었다. 아이의 토사물을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고 닦아줘야 하는 일, 아이가 던지는 모래를 맞으며 언성 높이지 않아야 하는 일, 너는 왜 어른인데 나보다 영어를 못하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난 대신 너보다 한국말을 잘해 라고 얼굴 붉히지 않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는 일. 이런 모든 것들을 쉽게만 생각했던 나 자신은 무지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몹시 한심스럽다.
영어 학교를 6개월이나 다니고서야 합격한 유아교육학과에는 딱 5개월. 자격증 하나를 따고 그만두었다. 이 정도 수준일 뿐인 내가 그들 옆에 자리한다는 것은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 않을 테고, 무엇보다 이것은 사랑하는 나의, 내 정신상태를 위한 포기였다.
그 후 두 달을 쉰 나는. 그러니까, 그 후의 나는.
나는
거주용 학교에서,
매주 토요일에만 출석하는
그런 거주용 공부를 시작했다..
치욕의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