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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kim Mar 23. 2020

열일곱 번째 산맥

18. 소울 메이트 일 번

'집순-집순-'하고 울었다.



대구에서 일주일을 좀 넘게 채우고 짐을 쌌다. 초중고를 경기도에서 지낸 나의 모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서운해하는 엄마의 원성을 들으면서도 단호히 내린 결정이었다. 후회는 없다. 오 년 만에 온 건데 나도 친구들 좀 봐야지.


이미 눈치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싸 중의 아싸로 집순이 중의 집순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건 그게 어디가 됐든 일단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3시간 안에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명감이 차오른다. 일단 외출이라는 생각 만으로도 전력 손실이 꽤나 크다. 그러한 내가 호주에 와서 혼자 일하고 공부하고 하버브릿지 횡단까지 했다니. 새삼 스무 살 초반의 김지윤은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누가 돈 줘도 못할 짓들이다. 역시 젊음은 위대해.


그렇게 집 밖으로 안 나가니 교우 관계 역시 협소할 수밖에. 친구가 몇 명이냐 물어보면 열 손가락도 텅텅 빈다. 누구는 보면 '아는 사람'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친한 사람'이 있고 그 안에 또 '진짜 친구'가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나와 친한 모든 사람들이 '진짜 친구'다.



글쎄, 성격이 모나서인지, 집순이 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만 그 '진짜 친구' 이외, 나머지 소소한 인맥의 형태들이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해 파티를 하고(생각만 해도 주먹이 떨린다. 성스러운 나의 공간에 누군가를 불러드린다니.) 매주 금요일, 토요일 밤에 나가 맛집에 가고 데이트를 하는 등. 인싸들을 보면 저 짓도 다 체력이 좋아서 하는 거구나 싶기도 하고.


나의 로직은 외식은 포장 또는 배달, 가장 좋아하는 일은 심즈 따위를 하며 이불속에서 뒹굴기, 취미는 방에 갇혀 책 보기, 매일 30분씩 나가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강아지 산책. 이게 삶의 전부인 나. 그래도 난 내가 너무 좋다.



쏘쏘 of 피라냐



쨌든. 이런 나에게도 '진짜 친구'안에 '소울 메이트'의 개념의 친구들이 몇 있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었기에,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나에겐 그 친구가 그 친구였다. 그들 중 몇몇은 싸우고, 흩어지고, 걸러내어 지고, 이탈하는 등 자잘한 사건사고를 거쳐 '피라냐'라고 불리는 그룹이 생겨났다.


'피라냐'는 총 여섯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있는데, 맥시멀리스트 켈리킴, 강아지 담당 최달달, 야근 담당 기명, 신혼부부 담당 주탱, 시드니 담당 김지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구 담당의 쏘쏘 되시겠다.




야구 담당 쏘쏘가 첫 번째로 소개할 나의 소울메이트 되시겠다. 그녀를 만난 건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 그때 친해져서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같은 반이 되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나는 일진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왕따를 당하게 되는데.. 아무튼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무시무시했던 그녀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 2학년부터 쏘쏘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스무 살 이후로 야구라는 공통분야에 관심을 쏟게 된다. 그렇게 집에만 박혀 살던 내가 야구장이라 하면 무조건 달려 나갔다. 그렇게 쏘쏘와 나는 거진 2년 가까이를 잠실에서, 목동에서, 대구에서, 사직에서. 전국 곳곳의 구장들을 누비며 지냈더랬다.


카톡으로도 야구 이야기, 만나서도 야구 이야기, 만나면 야구장 갔다가 밥 먹고 집에 가기 가 전부였던 그녀와의 일상을 비틀어버린 건 다름 아닌 나. 호주로 떠나게 되며 우리의 끈끈함 또한 점차 묽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쏘쏘와 김지윤을 얕잡아본 나의 크디큰 오산이었다. 내가 없는 6년 간, 그녀는 날 보러 시드니로 여행을 왔고, 종종 나가던 야구 동호회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고, 그와 결혼을 했으며 귀여운 랑랑이를 낳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금껏 생중계로 방송해주는 쏘쏘. 1분 전에도 남편 욕이 가득 실린 카톡을 했다지. 조만간 야구 시즌에 한국에 가서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회포를 풀고 싶다. 몇년 전 그 어느날 처럼, 마치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인 것 마냥, 쏘쏘와 나 둘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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