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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kim Apr 03. 2020

스물두 번째 산맥

23. 네 개의 발이 달린 가족을 대하는 방법

개엄마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개딸을 둘이나 둔 엄마는 바쁘다. 정신없이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기도 전에 산책부터 나간다. 나는 비록 인스턴트식품을 먹어도 우리 집 개딸들은 유기농의, 단백질 80 이상으로 된 밥을 먹여야 한다. 내 옷은 안 사 입어도 개딸들의 간식거리, 장난감 등은 자주자주 사다주며 심심함을 달래줘야 한다. 쇼핑몰에 가면 가장 처음으로 가는 샵은 애견 용품점, 마트에서 장 볼 땐 간식 코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지체하곤 한다.


나는 나름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다. (옷 정리를 귀찮아하지만) 나의 집은 매일매일 아주 청결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나는 향기 나는 것을 좋아한다. 고급 향초를 주기적으로 바꿔주는 일은 날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이런 나는 냄새에 민감하기도 하다. 옷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화장실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것은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이다.


옷 역시다. 나는 보풀이 일어난 옷을 싫어한다. 옷에 묻어있는 먼지, 실밥을 아주 신경 쓰여한다. 신발 또한 마찬가지다. 운동화는 깨끗해야 하고, 구두는 반짝반짝 빛나야 한다. 구두굽이 닳아 띠걱띠걱하는 소음을 내는 것은 내가 소름 돋아하는 것 중 한 가지이다. 간혹 외식을 하다 빨간 국물이 운동화 혹은 옷에 튄다면, 어쩔 수 없다. 그날로 잠옷행이다. 빨아도 자국은 남기 때문.




이랬던 내가 꾸꾸와 도비를 만난 후로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꾸꾸와 도비는 이불을 잘근잘근 씹고 뜯어 솜을 빼놓기도 하고 배변패드를 장난감 삼아 놀다 찢어발기는 일은 다반사. 매일 밤 2세 딸을 둔 어미처럼 어지럽혀놓은 장난감을 정리하고서 잠자리에 든다.


단정했던 옷에 흰색의, 때로는 갈색의 털이 잔뜩 묻어있고 깔끔하던 나의 집에서는 강아지의 오줌 냄새, 비 오는 날에는 강아지 비린내가 풀풀 난다. 사다 놓은 향초와 디퓨저는 쓸모가 없다. 강아지의 후각은 매우 예민해 진한 향기가 좋지 않기 때문. 몇 없는 운동화는 물어뜯겨 너덜너덜해졌고 송곳니에 잘려 짧아진 신발끈 역시 간당간당 묶여있다. 아, 외식을 하다가 옷에 튀는 일은 드물다. 외식을 안 하기 때문. 애기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싹수가 노래서 그렇지 심성은 착해요



예민한 여자아이들이라 사온 밥이 맛없으면 입에도 안 댄다. 일반 매장에는 입점도 안되어있는, 온라인에서만 따로 판매하는 고급 Air Dried 제품을 미지근한 물에 말아 드신다. 사료가 똑 떨어져 마트에서 저렴한걸 사온 적이 있었는데 위액을 토하면 토했지 그딴 거 안 드시겠단다. 달에 한두 번씩은 닭이나 소고기를 코코넛 오일에 볶아줘야 한다. 그냥 넘겨버리면 자꾸 부엌 근처를 서성인다. 요리를 할 때면 언제나 뒤에서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도비는 대형견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파크에 가지 못한다. 주로 킁킁대며 한 곳에서 오래 냄새 맡는 것을 즐기는 그녀는 다른 개가 다가오면 일단 짖기 시작한다. 꾸꾸는 사회성 만랩 친화력 만랩 핵인싸 에너자이저 무한동력. 그녀는 파크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뛰는 것을 좋아한다. 고로 이 둘은 산책 역시 따로 한다. 제나가 꾸꾸를 맡아 파크에서 힘을 빼는 동안 나는 도비와 함께 강을 따라 천천히 걷는 것이 우리의 하루 일과. 아주 그냥 산책 스타일마저 남다른 그녀들이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돈이 꽤 많이 들어간다. 자잘한 장난감들과 용품(줄, 하네스, 똥 봉지, 옷 등)부터 시작해 매달 먹이는 구충제, 매년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 혹시 모를 알레르기와 입맛에 맞춰진 사료, 간식, 그리고 인간보다 비싼 보험비까지. 이쯤 되니 내가 일하는 이유는 얘네 먹여 살리려고 버는 것도 같고, 지금껏 숨 쉬는 이유 역시 얘들 키우려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삶을 파괴하고 무너트린 털복숭이들은 내 몸속 전부를 행복으로 꽁꽁 채웠다. 한때는 호주라는 나라가 싫어진 적도 있었고, 어떤 날엔 나의 존재가치에 대한 불안감으로 불면증 약도 처방받아먹던 나인데, 똥강아지들을 만나고서부터 무척이나 안정된 생활을 한다. 언제나 나만 생각하고, 내 위주로만 살아왔던 삶에 스리슬쩍 작은 발을 담그기 시작한 녀석들은 이제 온몸을 깔고 누워 안주인처럼 행동한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참으로 빈틈없이 행복하다.


부족한 집사일지라도 조금만 나에게 너그러워주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나만큼 행복하길, 그리고 제발 그만 짖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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