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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는다는

말없이 지켜봐 준 그 순간의 온기

by Jeoney Kim

내 기억이 맞다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었다. 집 근처 작은 대학교에서 그림 그리기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늘 부모님께 나가고 싶다고 조르곤 했다. 사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었다. 잘 그리지도 못했고, 주어진 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챙겨,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내어 나를 그곳에 데려가 주셨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셨다. 무엇보다 내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조용히 기다려 주신 것. 성과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 기억들은 내 안에 여전히 따뜻한 온도로 남아 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존중받고 있었다. 몸집도 작고, 정서적으로도 한창 자라야 했던 어린아이였지만, 존중받았던 그 느낌은 여전히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부모님이 나를 존중하기 위해 애썼던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할 순 없지만, 몇 가지 일화는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때 입시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요즘도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수업이 추가되면서 학원 원장님이 부모님과 통화하셨다고 들었다. 이런 경우 보통 부모님 선에서 결정하곤 한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 아이도 해야죠”라며 바로 결정을 내리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달랐다. “집에 가서 지연이랑 의논해 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라고 하시며 통화를 마무리하셨다고. 그 말이 당시 원장님께는 꽤 놀랍게 들렸다고 한다.


또 다른 기억은 중학교 때다. 그 시절 나는 자전거 타기를 정말 좋아했다. 마침 학교에 사이클 동아리가 처음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이야기가 내 귀에 얼마나 솔깃했겠는가. 부모님께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결과적으로는 반대하셨지만, 그 반대가 마음에 상처가 되거나 기분 나쁘게 다가오지 않았다. 먼저 왜 하고 싶은지 물어보셨고, 부모님 나름의 반대 이유를 차분히 설명하며 나를 설득하셨다. 마치 거래처 사람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듯 부드럽고 침착하게. 그러고는 “일주일만 더 생각해 보라”며 시간을 주셨다. 그 후에도 하고 싶으면 도전해 보라고 하셨다.


일주일 동안 나는 부모님의 의견을 곰곰이 생각했다. 결국 설득당했고,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오히려 부드럽게 설득해 주신 그 과정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살면서 꽤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그때마다 부모님은 “그래, 잘해보거라” 정도로 지지하며 지켜봐 주셨다. “네가 그걸 해서 뭐 하게?” 같은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존중받는다는 건 질문하고, 알아가고,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며, 시간을 갖고 기다려 주고,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별한 날의 이벤트처럼 지나가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상에 녹아든 이해의 느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내게 ‘존중’이란 그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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