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이퍼 Aug 23. 2020

Ep.12 퀸 빅토리아 나이트 마켓

어렵던 일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듯 인터뷰를 계속해서 보다 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레쥬메를 들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넌지시 직원에게 말을 거는 내 모습을 보면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말 거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내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제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레쥬메를 냈던 곳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다. 


인스펙션 보다가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와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동생과 잠시 접선을 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항상 " 잡 구했어? "라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가끔 이동경로가 비슷해서 레쥬메를 돌리다가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서로의 고충이 비슷하다 보니 문제의 해결은 되지 않지만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했다. 



" 나 농장 갈까 고민 중이야 " 

옆에 있던 동생이 갑자기 농장 선언을 했다. 가지고 온  자본금이 너무 적고 지금 당장 이제 잡을 구하지 못한다면 한국을 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했다고 한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서로 없는 정보 교환해가며 서로 힘을 돋아주는 관계였다 보니 아쉽긴 했지만 분명 동생에게 새로운 도전이기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점심 겸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빅토리아 나이트 마켓


빅토리아 마켓에 도착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에는 텅텅 비어있던 마켓이 사람들로 꽉 차 있고 평소에 팔지 않던 음식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날은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빅토리아 나이트 마켓이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꽉 찬 탓에 자리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이트 마켓을 하는 줄 알았다면 일찍 와서 자리 잡고 있었을 텐데 부족한 정보력에 다시 한번 정보의 중요성을 느꼈다. 


셋이서 뭉쳐 다니다 보니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아 친구와 동생은 음식을 주문하러 갔고 나는 앉을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역시 알짜베기 자리는 이미 만원이었다.. 

다행히 변두리 쪽에 사람이 없어서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북적이는 마켓을 바라보며 문뜩 동생이 농장 간다는 말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 잡을 구하지 못해서 농장으로 간다면?'

' 농장에서 과일 수확 철을 놓여서 일을 못한다면 어떡하지?'

' 이미 일 년 뒤에 온다고 이야기했는데 한 달 뒤에 한국으로 들어가면 어떡하지' 

혼자 있다 보니 잡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잡도 안 구했는데 이런 곳에서 밥 먹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 시작하면 이런 여유도 즐기지 못하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라는 생각으로 안 좋은 생각들을 뒤로했다.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서로 음식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록 한 개당 17불이라는 비싼 가격이었지만 분위기  값이라 치고 즐겼다. (음식은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 역시 이런 곳에 오기 전에 집에서 아무거나 먹고 나오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즐기는 여유 덕분인지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나 홀로 호주에 와서 무언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즐겁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자취하는 느낌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에서는 언제든지 가족과 친구들을 볼 수 있었지만 호주는 나 홀로 나 자신에 의지하여 버텨야만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간단한 일도 크게 느껴졌다.  덕분에 내가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 안은 다양한 기념품으로 즐비했다.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다양한 나라의 기념품들을 보면서 워킹홀리데이 끝물에 여기에 와서 친구들 선물을 사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무르익어해 가지고 밤이 찾아왔다. 마켓 입구 쪽에서 이국적인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아코디언, 드럼 등 다양한 악기 소리가 들리는데 어느 나라 음악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노랫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너무나 부러웠다.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춤추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무대 앞쪽 자리에서 엉덩이만 들썩거리니 앞에서 춤추는 분들이 같이  춤을 출 것을 제안했다. 

“ 어차피 한 번뿐인 거 뭐 춤추는 게 부끄럽다고 자리에 앉아있냐, 이왕 마켓에 온 거 즐길 거 즐기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우리를 향해 외쳤다. 


몇 번의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들은 서로 나가서 춤추라며 시선 피하기에 급급했다.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더니 딱 그 말이 맞았다.  결국 노래가 다 끝나고 난 후 각자 트램을 타고 헤어졌다. 


그리고 주문처럼 외쳤다. 

" 내가 일자리만 구하면 이제 자유로운 도비처럼 살아야지 " 




작가의 이전글 Ep.11 아시안 마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