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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Oct 18. 2021

나에게 맞는 공부법

2학기 다섯번째 이야기

드디어 영어 권태기가 찾아왔다. 해외에 있으면 한 번쯤 찾아온다는데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닌 줄 알았다. 어렵사리 결정한 해외 살이 1년 연장. 이게 영어 권태기를 누르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학교는 시장 같았다. 잡다한 소리가 뒤섞여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눈은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데 시선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학교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영어가 없는 곳은 오직 침대뿐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말을 걸어올 때마다 한국어로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조금만 쉬어야지 생각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오전 두 시에 눈이 떠졌다. 


어떻게든 잠들기 위해 애써 눈을 질끈 감고 몇 번 몸을 뒤척였지만 편안한 자세를 찾지 못해 결국 거실로 나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 야경이 유난히 빛이 났다. 차 한잔 마시며 발코니에서 청승맞게 시련당한 사람처럼 멍하니 야경을 바라보았다. 


트램 지나가는 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 어느 곳에서도 영어가 들리지 않아 마음이 평온했다. 이런 게 힐링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야경 사진을 찍으려는데 핸드폰 알람을 보고 기분이 다시 언짢아졌다. 


영어 공부하기 위해 깔아 두었던 애플리케이션이 지독한 스토커 같았다. 쌓인 알람을 볼 때마다 '뭐해?', '왜 연락 안 받아?', '일어났니?', '메시지 확인 왜 안 해?', '너 지금 이거 보고 있지?'와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에 두세 번씩 애플리케이션에서 보내주는 자료가 이미 열개가 넘게 쌓여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하려는데 Do you want to uninstall this app?이라는 문구가 참 거슬렸다. 


그때 불현듯 영어 권태기의 시발점이 핸드포네서부터라는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과목을 배우면서 어휘력 부족으로 인해 수업 진도를 따라잡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어떻게든 부족한 영어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BBC 뉴스로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찾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영상에서 영어를 잘하려면 일상생활에서도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핸드폰 언어 설정을 영어로 해두어야 한다고 추천했다. 그땐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 


모든 게 영어로 설정되어있다 보니 원하는 애플리케이션 찾는 것도 힘들었다. 쓰다 보면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와서 인터넷에 검색하는 게 일상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휘력이 느는 게 아니라 짜증이 늘어갔다. 

한술 더 떠서 한국 드라마, 영화 등 한국어로 된 관련 매체들을 끊게 되면서 불난 집에 휘발유 끼얹는 격이 되었다. 


차 마실 새도 없이 핸드폰 설정에 들어가 언어를 한국어로 변경하는 순간 마음이 평온해졌다. 밤새 거슬리게 했던 모기를 잡은 것 같았다.  얼마 만에 고민 없이 핸드폰을 쓰게 된 건지 그날 밤새도록 핸드폰만 만졌다. 


아무리 열쇠가 많아도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지 못하면 쓸모없는 것처럼 좋다고 따라 하기보다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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