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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Oct 18. 2021

마라탕 중독

3학기 - 8 

비 내리는 날 얼큰한 짬뽕 국물에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밤이 있다. 어딜 가나 높은 건물들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꽉 막힌 것 같다. 이럴 때 시원한 소주 한잔 들이켜면 추운 날 숨을 들이켠 것처럼 막혀있던 숨구멍이 뻥 뚫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국이었다면 짬뽕 맛집이라도 찾아가서 콧물 흘리며 얼큰함으로 우울했던 마음을 달래줄 텐데 지금으로써 최선은 라면이었다. 최대한 기분을 내기 위해 계란, 만두, 파, 고추 등 라면에 넣을 수 있는 건 다 넣어봤지만 얼큰한 짬뽕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한참 한국의 얼큰함을 그리워할 때쯤 마라탕을 알게 되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려던 찰나 직장 동료가 고민 상담을 요청해 근처 마라탕 집을 간 적 있었다. 기분이 우울할 땐 마라탕을 먹어야 한다며 멜버른에서 유명하다는 마라탕 맛집을 갔다. 


입구에서부터 풍겨오는 매운 냄새에 코끝이 찡했다. 대림동에서 자취할 당시 중국 음식을 제대로 즐기려면 중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집에 가야 한다며 한자로 적힌 음식집에 간 적 있었다. 친구는 메뉴판을 쓱 보더니 본인이 알아서 주문을 했다. 


알 수 없는 음식들이 테이블에 놓이고 맛을 보는 순간 친구들과 눈이 마주쳤다. 한식에서 맛볼 수 없는 향신료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는 맛이었다. 다섯 명이서 갔는데 맛있게 먹는 친구는 그 친구 한 명뿐이었다. 향신료는 고량주를 먹으면 나아진다며 다 같이 한잔 쭉 들이켰다가 밤새 시름시름 앓다가 친구 한 명은 응급실을 다녀왔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알싸한 냄새가 느껴지자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주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가판대에 여러 가지 토핑들이 있는데 본인이 원하는걸 그릇에 담고 카운터에 가져가면 됐다.  


테이블 위에 마라탕이 놓였을 때 고추기름을 보고 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매운맛보다 입안이 얼얼했다. 바늘 수십 개가 입 전체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알싸한 느낌 빼고 아무 맛도 안 느껴지는데 왜 비싼 돈 주고 사 먹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접시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직장 동료는 집에 가서 후회할 텐데라며 혹시 저녁에 먹고 싶을지 모르니 포장해가라고 했다. 그날 저녁  버릴까 하다 아까워서 소주 한잔 꺼내어 같이 먹었는데 궁합이 좋았다. 얼얼한 입에 시원한 소주가 들어오니 두세 잔만 마셔도 취기가 올라왔다. 


치킨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 뒤로 이틀에 한 번꼴로 마라탕을 먹게 되었다.  호주에서 한인 술집이 가장 늦게  문을 닫는 줄 알았는데 이곳은 24시간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술 마시고 국밥으로 해장하는 것처럼 중국인들도 이곳에서 해장을 하나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점심시간마다 학교 친구들에게 마라탕 먹으러 가자며 마라탕 전도사가 되었었다. 


 한겨울에 먹던 그 얼큰하던 짬뽕 맛은 아니었지만 해외에서 이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음식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게 느낀다. 다시 한번 마라탕의 맛을 알려준 그 동료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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