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시끌벅적한 도시는 더욱더 활기차 졌다. 길거리만 걸어도 사람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시국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는 건 자살 행위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선물을 위해 이날만큼은 다들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남반구의 크리스마스는 한국과는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12월에 티셔츠,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호주의 여름 햇빛은 옷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강하고 따갑다. 선크림을 듬뿍 발랐는데도 바닷가에 잠시 나가 있으면 피부가 빨갛게 오른다. 이런 무더위에 산타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여름을 제대로 즐기는 것 같다. 이열치열이라고 해야 할까? 미국의 산타는 추워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면 호주의 산타들은 무더위 때문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종종 산타 복장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이제 순록도 본인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영어권 국가에서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설날과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가족, 친척들이 모여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먹고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런 날일 때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워진다. 한국에 있을 때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매번 다투는 경우가 많았는데 해외에 나오니 갑자기 그것마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올해의 마지막을 잘 보내고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2년 동안 가족들로부터 걱정덩어리 었다. 힘들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넘어와도 된다며 연락할 때마다 강조하여 이야기했었다. 처음엔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확진자는 나날이 늘어가고 법이 계속 강화되면서 나중에는 통금시간까지 생겼다. 일자리도 잃고 학교도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면서 호주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답은 한국으로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이 기간 한국으로 귀국한 지인들이 엄청났다. 특히 몇 년 동안 영주권을 위해 준비하던 분들은 근무 경력을 채우지 못해 강제로 귀국해야 하는 분들도 있었다. 나갈 수는 있지만 영주권, 시민권이 아닌 이상 다시 입국할 수 없어서 한국으로 간다면 언제 다시 입국할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이나 호주나 상황은 비슷하니 호주에 남아있기로 결정하고 나서부터 우여곡절 많았지만 어떻게 2년이란 시간을 버텼다.
그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을까? 크리스마스 날 백인 친구들이 파티를 하는 것을 보고 호주에서 한 번쯤은 파티를 해보고 싶었다. 31일까지 3일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아 아침저녁으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몇 명을 초대할 것인지, 테이블은 어떻게 꾸밀 것인지, 조명은 어떤 것을 할 것인지 등 의외로 해야 할 것들이 많아 골머리를 앓았다. 특히 초대하는 인원 중 비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메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루 전날 갑자기 일이 생겨 파티에 오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원래 하려고 했던 스테이크, 크림 파스타. 샐러드 3가지 메뉴로 간단하게 구성했다.
카일과 찰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날 파티는 엉망진창이었을 것이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대중교통 운영이 잠시 중단되어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당시 시간은 여섯 시 반이었고 파티 시작은 여덟시었다. 다행히 카일이 테이블 데코레이션을 다 끝내 놓고 픽업을 하러 왔고 찰리는 그 시각 스테이크를 준비하고 이었다. 이들 도움이 없었다면 음식 없이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약속 시간까지 마무리를 마치고 드레스 코드에 맞추어 초록색 옷을 입었다. 다들 웃고 떠들며 연말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왜 사람들이 파티를 주최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분위기에 취한 걸까 아님 정말 와인을 많이 마셔서 취한 걸까? 알딸딸한 기분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보았다.
다 같이 카운트 다운을 하며 새해를 맞이하는데 기분이 시원섭섭했다. 20대의 새해는 넘어갈 때마다 두근거림의 연속이었다면 30대의 새해는 넘어갈 때마다 고민의 연속이었다. 돈, 직업, 미래 등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보니 새해가 다가온다고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와인의 쌉싸름함이 뒤늦게 찾아온 것처럼 폭죽놀이가 끝나고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그 덕분에 나의 미래를 위해 자기 계발에 더 투자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작심삼일,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목표란 거 알지만 이번에도 A4용지에 한가득 새해 목표를 적어두며 작년보다 더 나은 한 해를 보낼 수 있도록 종이 위에 희망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해외여행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일상 글들을 조금 더 주기적으로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