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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Aug 27. 2020

Ep.20 익스트림 멜버른

한국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근무 일 중 일요일을 가장 선호하는 편이었다. 이 날은 매장 관리자가 쉬는 날이기 때문에 모든 직원들이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다. 덕분에 일요일이 되면 모두 모여 안부 인사를 하는 날이 되었다. 또한 근무 시간이  6시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퇴근 후 다 같이 술 한잔 하기 좋은 날이었다.   


대부분 퇴근 시간을 한 시간 남겨두고 예약이 없는 사람들이 먼저 매장 청소를 했다. 이번 주는 화장실 청소 당번이었다.   퇴근 후 다들 선약이 있었고 나 또한 새로운 외국인 친구를 만나기로 했기에 들떠있던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청소가 마무리가 되어갈 때쯤 매장 밖이 소란스러웠다.  일하는 곳이 시티 중심부에 있었기 때문에 밤만 되면 시끌벅적했다. 당연히 여행객들이 멜버른의 밤 문화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의 소리일 줄 알았다. 


몇 분 지났을까 다급하게 나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매장  양 옆으로 음식점이었기에 벌레가 자주 출몰하여 그 때문인 줄 알았다. 매장 밖에 나갔을 때는 눈이 휘둥그레 지며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실제 상황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 빨가벗은 백인이 손님 옆에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초지종 설명을 들을 시간도 없었다. 빠르게 손님을 매장 밖으로 내보내려는데 손님 한 명이 끝까지 나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본인이 중요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본인 머리를 계속해달라고 디자이너에게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가게가 일층이고 전면 유리였기에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백인을 내보내려 노력했지만 했지만 폭력을 휘두르며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관리자가 에게 상황 전달을 위해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소를 지으며 카운터 앞쪽에 있는 우리를 쳐다보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순간 소름이 돋았다. 

'충혈되고 반쯤 풀린 눈, 확장된 동공, 걸을 때 중심을 잡지 못함 '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았을 때 약에 취한 사람이 인 것 같았다. 

영화에서만 보았지 두 눈으로 직접 약에 취한 사람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내 매장 안을 둘러보며 모든 것이 흉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되어  마지막까지 버티던 손님까지 빠르게 내보냈다. 


' 이내 얼마 되지 않아 클리퍼를 들고 거울 앞으로 가더니 본인의 중요 부위의  털 틀을 밀고 있지 않은가? ' 


모든 사람들을 내보내고 난 후 매장에 그 사람 혼자 남아있었다. 주변에 사람들에게 경찰에 신고해줄 수 있는지 도움을 청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떨리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약 15명의 경찰이 왔다.  경찰이 오자 일사 분란하게 일이 처리되었다. 2인 1조가 되어 한 팀은 사람들이 현장 주변으로 오지 못하도록 게이트를 치고 다른 한 팀은  매장 구석으로 도망가는 백인을 추격하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난동을 피우던 백인은 팔다리가 포박된 채 경찰차 안으로 구속되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가스총을 발포하면서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동료들도 피해를 입었는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매장 안 상황이 정리될 동안 우리는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매장 안에 CCTV가 있는지, 파손된 물건이 있는지 등 간단한 조사를 마쳤다.  결국 모든 상황은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8 시 정도에 마무리가 되었다.  


 주변에서 호주 워킹홀리데이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라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이 날 일어난  일을 이야기할 것 같다. 


가끔 영화에서 고구마 백개 먹은 사람이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죽거나 피해를 당하는 경우를 보고 답답해했었다. 왜 저렇게 대처하는지  모르겠다며 나 같으면 도망가거나 주변에 빨리 도움을 청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이런 일을 겪어보니 머릿속이 새 하애 졌다.  어느 곳에 전화를 해야 할지, 어떤 번호를 전화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게 빠르게 정리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며 그들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꼈던 내가  딱 그 상황에 맞닥뜨리니 그 주인공의 마음을 백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주인공들도 얼마나 경황이 없었으면 그렇게 멍하니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한국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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