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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Aug 28. 2020

EP.21 친구들의 중요성

한동안 출퇴근 이외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지난번 백인 사건 이후로 밖에 나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다행히 아무런 피해 없이 끝났지만 아직까지 마음속에 여운이 남아있었다. 

' 만약 '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맴돌며 생기지도 않은 일들을 상기시키기 시작했다. 


계절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추운 것은 딱 질색인 편이라 한국에서도 겨울에는 출근 이외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없었다. 

호주에 와서 생긴 몇 안 되는 외국인 친구들이 안쓰럽게 생각했는지 몇 번 모임에 참석할 것을 부탁했으나 이미 다시 집돌이가 되어 거절하기 급급했다. 



퇴근길, 오늘도 집에서 맥주 한잔 할 생각에 바삐 움직이는데 키 큰 외국인이 핸드폰 번호를 물어본다. 당혹스러워서 거절하고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길래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호주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였다.  아직까지 대충 보면 다들 생긴 게 비슷해 보여서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한동안 자주 못 봐서  다 같이 내가 퇴근할 때까지 매장 근처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이 친구들 내가 선약 있었으면 어쩌려고 무작정 기다렸을까? 

너무 고마운 마음에 이번에 거절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동행하기로 했다. 


인종, 성별도 다르지만 이 친구들과 있으면 한국인들과 있는 것 같다.  평소에 모이면 한인 술집에 가서 K-pop노래를 부르며 최근 본 K 드라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모르는 가수, 드라마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당혹스럽다. 







오늘은 특별히 나를 위해 볼링장을 예약했다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하려면 볼링장을 가야 한다는데 여기서부터 문화 차이가 느껴진다. 한국이었으면 스트레스 풀러 코인 노래방으로 달려갔을 텐데.

볼링장 안에는 술을 마실수 있는 공간과 서바이벌 총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있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승부욕 때문인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한번 봐줄 법도 한데 경기에서는 사소한 감정에 휩싸이면 안 된다면서 연신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옆자리에서 볼링을 치던 사람들이 서바이벌 총 게임을 하려는데 인원이 부족해 우리에게 같이 게임할 것을 제안했다.   입구에서 센서가 달린 옷을 착용하고 레이저 건을 받는다. 그 뒤 서바이벌 게임장 안으로 들어가 상대편을 쏘면 된다. 게임이 다 끝나고 나서 개인 점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 라고 했던가? 

그렇게 재수 없게 잘난척하던 친구는 나의 등을 지켜주는 든든한 동지가 되어 주었다. 얼마나 신나게 뛰어다녔는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이렇게 신나게 뛰어다닌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볼링은 몰라도 사격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를 보니 참혹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들 덕분에 오늘 하루 종일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워킹홀리데이 기간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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