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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Jul 11. 2022

호주 일상 /  익숙함이란






멜버른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영하로 떨어지지 않지만 잦은 비와 흐린 날씨 때문에 체감 온도는 벌써 영하로 떨어진 것 같다. 트램을 타고 시티에 오면 그나마 활기찬 모습에 마음이라도 따뜻해진다. 만약 영국에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흐린 날씨에 빅토리아 풍 양식의 건물들 사이를 걸으면 영국이 이런 느낌이었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거리를 걷게 된다.  언젠가 한 번쯤 비 오는 날의 영국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한번 거세게 비가 내리다 멈추면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와 거리가 다시 북적인다. 


비 내리는 날이면 의식처럼 플랫 화이트를 마시게 된다. 예전엔 롱 블랙을 자주 마셨는데 너무 뜨겁다 보니 우유가 들어간 플랫 화이트를 마시게 되었다. 그 뒤로 언젠가부터 비 내리는 날이면 플랫 화이트를 주로 마시게 되었다. 


짙은 회색이었던 하늘이 푸른 하늘로 바뀌는 순간 멜버른의 거리는 또 다른 옷을 입었다. 날씨가 맑다 라는 표현보다 청명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비슷한 말이지만 청명하다는 말이 무언가 마음에서부터 시원함을 느껴지게 만든다. 


커피의 도시답게 카페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멜버른에서 유명하다는 카페를 찾아갔는데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서 구경만 하다 나왔다. 여유가 있었으면 기다렸을 텐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이런 기다림은 나에게 사치였다. 


아침 먹고 난 후 버스 타고 기차역에 가면 이제 시작이다.  한 시간 정도 기차 타면 시티에 도착한다. 그 후 트램 타고 시티 중심부로 나오면 아직 출근하지도 않았는데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써버린 것 같다.  그래서일까? 퇴근하면 뇌는 작동하지 않고 몸은 알아서 집으로 가는 것 같다. 


해외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일까? 이제는 백인 사람들을 봐도 떨림이 없다. 가끔 어쩌다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 오래된 양식의 건물들을 보면 잊었던 설렘이 살아나는 정도일까? 


퇴근 후 저녁을 먹는데 소스에서 기포가 생겼다. 처음에는 한 방울 그리고 두 방울. 조금씩 거품이 쌓이다 개구리 알처럼 뭉쳐져 있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다가 조금 더 가까이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확대하니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별생각 없이 확대했는데 알록달록한 거품들이 뿌옇게 사진이 찍혔다. 멜버른 여행도 나에겐 이런 걸까? 익숙함 때문에 멜버른의 더 깊숙한 매력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덕분에 무엇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는지.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얼마나 많은데 벌써부터 지루함을 느끼다니. 해외여행 못해서 어떻게든 비행기 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주 복에 겨운 소리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아쉬움 없게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 




City of Melbourne - Melbourne Town Hall



City of Melbourne - City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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