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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Sep 02. 2020

Ep 25 처음 만난 베지테리안

 호주에서 처음으로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친구의 친구가 생일인데 초대되었다. 

무슨 영문인가 했더니 생일을 주최하는 사람이 아무나 데려와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처음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흔쾌히  ' Yes ' 하기 어려웠다. 

만약 가게 되면 나 혼자 덩그러니 있을 것 같았고 막상 주변 사람들이 대화를 하려고 멍석을 깔아줘도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아웃사이더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약쟁이 사건 이후로 밤에 나가는 것이 꺼려졌다.  


몇 번의 제안 끝에 퇴근시간에 다돼서야 결정을 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생일 파티에 초대 외었으니 조그마한 케이크이라도 사가야 될 것 같아 베이커리로 향했다.  오랜만에 들린 베이커리에 지름신이 강림할뻔했다. 

한국에서의 생일은 특별함이 없었다. 대부분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들어오다 보니 씻고 밥 먹으면 벌써 생일이 지나가 있었다.  그렇기에 틈틈이 케이크를 챙겨 먹는다. 특별하지도 않은 날에.

그래서인지 유독 케이크를 보면 비싸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하던 찰나 파티 시작됐고 이미 다른 사람들이 케이크를 여러 개 사 와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문자를 보고  사진만 찍어두고 왔다.  


' 다음번에 저 초콜릿 케이크는 내가 먹어야지'







보내준 주소를 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막까지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정적으로 가게 된 이유는 이들이 한인 바비큐 집을 간다는 것이었다. 고기가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 같다. 모임 장소를 듣기 전에 어떻게 모르는 사람 파티에 가냐고 거절하기 바빴는데 삼겹살 집이라는 소리에 한번 얼굴 비추러 가겠다고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너무 웃겼다. 

 ' 그래 입이 원래 대화만 하라고 있는 게 아니지, 가서 저녁이라도 먹고 오면 되겠다. ' 


약속 장소에 도착과 동시에 환호성이 들려서 깜짝 놀랐다. 생일자의 이름은 데이빗이었다.  자기소개를 하며  어디서 맥주잔을 들고 와 입장 샷이라며 소주를 잔뜩 따라주었다. 흔쾌히 원샷하니 어디서 안주가 입으로 날아온다.  어디서 많이 본 문화인데 호주에도 이런 문화가 있나? 싶었다.

그 뒤로 새로운 사람들이 올 때마다 데이비드는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주었고,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도 다 같이 소주잔에 소주를 마셨다. 

몇 번 하고 말겠지 생각했는데 정말 마지막 사람 올 때까지 술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오늘 처음 본 친구지만 오늘 두발로 걸어 나가긴 힘들겠다는 것은 직감했다. 



자리에 착석 후 대학생 새내기 마냥 자기소개를 했다.  어색한 기류를 어떻게 떨쳐내야 할지 몰라 애써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 같으면 말이라도 붙여보겠는데 약 15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 사이 속에 있다 보니 부담되었다. 

드디어 구세주 ' 삼겹살 님'이 오셨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삼겹살 접시를 받고 있었다.

세팅이 되고 난 후 다들 멀찍이 쳐다만 보고 있는데 딱 봐도 가위와 집개는 내가 들어야 될 것 같았다

' 불쌍한 휴먼, 내가 오늘 고기로 너희들의 잃어버린 미미를 찾아주겠다!  ' 

고기를 열심히 굽고 있는 모습을 본 친구는 나를 참 대견하게 쳐다보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보고 이제는 너희들에게 고기를 하사 한다는 뜻을 표현하자 주변 친구들이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내가 발음이 좋지 않아서 제대로 듣지 못했나 해서 몇 번 이야기했지만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화의 흐름은 끊겨도 고기의 흐름은 끊기면 안 되니까 접시에 담아 친구들이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 중앙에 두었다. 그리고 새로운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려놓는데 친구들의 말을 듣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 나 베지테리언이야 '


처음으로 만난 베지테리안들이었다. 당연히 삼겹살 집에 왔기에 고기를 못 먹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제야 친구들 앞에 고기 없는 잡채, 두부 비빔밥을 보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친구들 앞에 있던 고기 접시를 내 앞에 두고 사과했다.  그제야 왜 이 친구들이 고기를 보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얼마나 당혹스럽던지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새빨개졌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고기를 먹는 사람들과 , 베지테리안 자리를 나눠 놨는데 늦게 온 사람들이 자리가 부족해서 베지테리안 자리에 앉힌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본인들이 베지테리언이라고 이야기를 해서 알고 있는 상황에 내가 뒤늦게 온 것이었다. 

미리 주문했던 삼겹살, 목살, 항정살이 테이블 위에 올려지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덕분에 어색할 것만 같았던 자리가 너무나 재밌었다. 


이번을 계기로 베지테리안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을 주문하기 전 미리 물어보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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