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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Sep 12. 2020

Ep35. 한시간의 기차 여행

' 오늘은 내가 너네 동네로 갈게 '


매번 시티로 놀러 오는 친구를 위해 이번에는 내가 친구 동네로 놀러 가기로 했다. 거리는 약 40킬로 트레인으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정말 올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한국 지하철 노선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며 호주에서 트레인 타는 건 식은 중 먹기라고 이야기했다. 


트레인을 타러 서던 크로스 역으로 향했다.  이 곳을 올 때면 멜버른 처음 도착했을 때가 생각난다.  공항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처음 본 곳이 서던 크로스 역이었다. 역 앞 트램을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 가까운 거리였는데 이상한 곳에 내릴까 봐 쉽게 타지 못했다. 결국 트램을 타면 20분도 안 걸릴 거리를 그 무거운 짐을 끌고 한 시간을 걸어 다녔다.  


그때는 숙소 찾는 것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트레인 타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니 참 많이 발전했다




트레인 역에 도착 후 역 앞에 설치되어있는 전광판을 훑어보았다.  다행히 친구가 살고 있는 지역이 종착역이어서 열차를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역 안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방송 소리,  버스킹 소리, 기계음 소리, 기차 경적 소리 등 정신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이어폰 끼고 노래를 들었을 텐데 처음 타는 트레인이다 보니 방송 소리에 귀 기울였다. 


마침 승강장에 도착할 때 트레인도 멈춰서 재빠르게 열차를 탔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분명 내가 타야 할 트레인이 어느 승강장에 멈추는지 확인까지 하고 탑승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알고 보니 호주는 한국처럼 승강장에 들어오는 열차가 고정이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승강장에 여러 개의 라인이 다니기 때문에 탑승하기 전 본인이 타야 할 열차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서울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은 1호선, 4호선, 공항철도, 경의 중앙선이다. 만약 1호선을 이용하고 싶다면 서울역 안에서 1호선 라인을 탈 수 있는 승강장으로 이동한 후 1호선 열차를 탈 수 있다. 반면 호주는 우선 역에 도착 후 승강장으로 이동을 한다. 이 승강장은 1호선, 4호선, 공항철도, 경의 중앙선 열차가 모두 이용하기 때문에 탑승하기 전 내가 타야 할 열차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호주 시스템을 모르고 있던 나는  전광판에 내가 타야 할 트레인이 멈추는 승강장만 확인하고 무작정 열차를 탔던 것이다.  트레인 안에 있는 전광판을 보고 잘못 탄 것을 인지해 바로 내려서 다행이지 이 트레인을 타고 쭉 갔다면 친구네 집까지 2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탄 트레인과 내가 타야 했을 트레인과의 배차시간이 1~2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차 실화인가.... 2호선 출근길도 전철 간 배차도 이렇게 타이트하지 않은데...


친구에게 걱정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결국 어떻게 가야 하는지 SOS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친구가 알려준 빅토리아 대중교통 어플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트레인을 갈아탔다. 






트레인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고 내부도 넓어서 편하게 갔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높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호주의 자연 날것을 볼 수 있었다.  소, 양, 말, 캥거루 등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높은 건물들이 없다 보니 그동안 시티에서 볼 수 없었던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속 시원하게 하늘을 바라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볼법한 장면도 보았다. 흐린 먹구름 속에 조그마한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에서 햇빛이 쭉 내려오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한 시간 동안 설렘, 지루함, 기대감, 피곤함 등 다양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기차 여행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사회 년생 때 친구들과 내일로 여행을 다 같이 가자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다 같이 퇴사하거나 휴가 일정 맞춰서 여행을 떠나자고 이야기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 같이 기차에 타본 적이 없다. 

나이 제한 폭이 넓어지고 나서 다시 한번 내일로 여행을 이야기했을 때는 우리 모두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기차를 타고 갔다가 택시 타고 돌아올지 모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웃기만 했다.


가끔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잊고 있었던 추억들, 그동안 답답했던 것들이 아주 조금은 숨통이 틔이는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홀로 여행을 떠나나 보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기차는 멈추고 역에서 기다리는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호주에서의 짧은 기차 여행이 끝났다.


' 이번을 계기로 

언젠가 나만의 위한 여행을 한 번쯤 떠나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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