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본주늬 Jan 14. 2022

유소유 #02 돈은 없지만 주식은 하고 싶어

투자를 시작하는 청년에게 시드머니가 주는 3가지 의미

주식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처음 주식 투자 자금으로 활용되는 돈을 우리말로는 종잣돈, 영어로는 시드머니라고 부른다. 많은 투자 대가들이 일단 저축을 통해 시드머니부터 모으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투자를 하려면 저축부터 해라.'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왜 투자 대가들이 저축과 시드머니를 강조했는지 알겠다. 아마 주식 투자를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어도 곧장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부디 나중에라도 시드머니의 힘을 깨닫는다면 공감을 눌러주길 바란다. 지금부터 투자를 하면서 느꼈던 저축의 중요성과 시드머니의 의미를 개인적인 경험을 곁들여 설명해보겠다.



1. 시드머니는 바퀴의 크기다.


"투자로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익률을 높여야죠."

"그건 당연한 말이잖아요. 또 다른 방법은 없어요?"

"원금을 키워야 합니다."


평범한 진리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하면 비범한 사람이 된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익=원금*수익률'은 투자의 절대 공식이다. 공식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수익률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투자를 1년만 제대로 해보면 수익률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면에 원금은 상대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하다. 당장 1억이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다음 달에 월급이 얼마나 들어올지는 알 수 있기에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초보 투자자일수록 원금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수익률을 높이거나 관리하는 방법은 원금을 키운 다음에 배워도 된다.




"말씀해주신 대로 1달에 100만 원씩 저축하는데 도통 수익이 나지 않아요. 뭐가 잘못된 걸까요?"

"잘하고 계신 거예요. 원래 모든 일이 처음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제 친구는 최근에 메타버스로 세 배나 먹었다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골목길에서는 오토바이가 더 빠른 법이다. 하지만 부자가 되려면 고속도로로 나가야 하고, 바퀴가 크고 탄탄한 차에 올라타야 한다. 시드머니가 커지면 조금만 굴러가도 멀리 간다. 나도 수많은 투자 기회를 놓쳤다. 작년에 누군가는 테슬라를 타고 화성까지 갔지만 나는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실력도 부족했고 원금도 부족했다. 애써 위안을 삼으면, 설령 내가 테슬라에 올라탔다 하더라도 바퀴가 작았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거리도 짧았다. 그 이후 테슬라에 올라타면 벌 수 있었던 돈 이상으로 원금을 모았다. 'FANG'이나 'BBIG'나 이름만 달리 해서 기회는 또 찾아온다. 그때는 놓치지 않기 위해서 원금과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럼 시드머니를 모으는 동안에는 뭘 해야 하나요?"

"투자 공부를 하면서 맘 편히 적금을 드세요."

"저축을 하면서 투자도 병행하면 안 되는 건가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겪게 될 거라면 최대한 빨리 투자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실제로 나는 100만 원 정도 모였을 때 투자를 처음 시작했다. 투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HTS랑 MTS를 깔고 개별 주식이나 채권을 매수하고 매도하면서 방법을 익히는 수준이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움직이는 호가창을 바라보며 심장이 두근댈 것이다. 50원이라도 싸게 사 보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다가 도망간 주식을 붙잡았는데 결국 매수한 가격보다 낮게 마감하는 걸 보고 하루 종일 우울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경험을 일찍 겪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주 소액일 때도 가격의 변동성을 견디기 힘들다면 투자와 맞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 큰 시드머니로 주식 투자를 시작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2. 시드머니는 기준선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시드머니는 얼마만큼 모아야 합니까?"

"1000만 원이 적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하필 1000만 원인가요?"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제 생각에 1000만 원 이하에서는 저축이나 투자나 유의미한 차이가 없습니다."


적정 시드머니가 얼마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100만 원이 큰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작은 돈이다. 30년 전에는 10억 원만 있어도 부자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래도 하나의 기준선을 잡아보자면 1000만 원이다. 1000만 원의 1%는 10만 원이다. 주식 시장에서 하루에 1% 오르고 내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사회초년생은 하루 일하면 보통 10만 원 가까이 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에 10만 원이 움직이는 수준의 시드머니, 1000만 원이 첫 번째 목표 지점이었다. 그리고 1000만 원 모으기에 성공한 사람이라면 그다음 1000만 원 모으기는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다.




"저는 한 달에 30만 원밖에 저축을 못 하는데 1000만 원을 모으려면 2년이 넘게 걸립니다."

"한 달에 50만 원씩 저축할 수 있도록 지출을 줄이거나 부업을 시작할 수는 없나요?"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있어서 그건 좀 어려워요."

"그러면 목표 금액을 낮춰서 500만 원, 아니 300만 원 모으기부터 시작해보세요."


한때 '마의 벽, 1억'이라는 말이 있었다. 많은 투자자들이 1억을 모으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빠르게 불어났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위의 대화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학생이고,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50만 원 겨우 저축해봐야 1억은 턱도 없는데...'라며 반포기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때 유튜브에서 1억의 벽을 넘기 어렵다면 1000만의 벽부터 넘어보라'는 내용의 영상을 시청했다. 이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준선은 얼마든지 조절해도 괜찮다. 적정한 시드머니가 얼마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액수 자체보다 시드머니를 모으기 위해 저축하는 행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100만 원짜리 시도를 끝없이 반복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성공할 것입니다."

"안타를 칠 때까지 아웃이 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10할 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총알이 무한정 있는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은 없습니다."


시드머니는 투자의 출발선으로서 기준이기도 하지만 심리적 마지노선으로서 기준이기도 한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혹여나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나는 1000만 원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는 가진 돈을 모두 잃더라도 당장 1000만 원부터 모으기 시작할 것이다. '두 번째 실패'라는 말은 한 번 실패하고 나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지, 능력, 인맥이 있다는 뜻이다. 두 번 실패한 사람은 세 번째 시도도 할 가능성이 높다. 시드머니는 투자할 수 있는 '기회'다. 따라서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재기 불가능한 수준의 리스크를 감당해서는 안 된다. 후진은 있어도 전복은 없어야 한다.



3. 시드머니는 나와 역사를 공유하는 돈이다.


"부모님께서 투자해보라고 돈을 주셨는데 시드머니를 부모님께 받아서 시작하면 안 되나요?"

"금리도 낮은데 은행에서 대출받아서 투자를 시작하면 안 되나요?"

"저희 집은 평범하고 부모님도 투자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시드머니는 어떻게 모으면 되나요?"


만약 집안에 돈이 많다면, 소위 '금수저'라면 부러울 따름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맛있는 식사도 하시고 즐거운 여행도 다니시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하기 힘든 위대한 일에 도전해보시길 응원한다. 평범한 20대 청년이 건넬 조언은 딱히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많이 갖고 태어난 것은 축복이다. 은행 대출은 아직 내가 받아본 적이 없어서 감히 답을 할 수 없다.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책임만 질 수 있다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면, 특히 10대나 20대 초반 학생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시드머니를 모으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그 이유는 돈에도 밀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여기서 하루 종일 일해도 여기서 한 끼도 못 사 먹어요. 너무 현타 오네요..."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돈은 회사가 다 가져가겠지? 이런 더러운 세상..."

"돈 벌기가 이렇게까지 어려운 줄은 몰랐네요. 부모님은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신 걸까요..."


20대 초반에 호텔, 레스토랑, 물류센터, 편의점, 쇼핑몰,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눴던 대화다. 노동으로 돈을 벌면서 돈의 밀도를 깨달았다. 노동소득, 사업소득, 투자소득은 같은 가치를 갖는다. 불로소득은 노동이 아닌 방법으로 얻은 소득이란 뜻이지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다. 이를 오해하고 노동소득만 신성시하면 부자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와 다른 가치를 갖는 돈도 있다. 남에게 받은 돈, 로또로 얻은 돈 등이다. 돈의 밀도에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나서 부모님께 지원받는 것은 괜찮다.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돈의 밀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큰돈을 쥐게 되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흘려버릴 것이다.




"퇴직금 왜 안 주냐고 구질구질하게 따져 받아낸 돈, 130만 원."

"군대 가기 일주일 전까지 어둑한 창고에서 상하차 뛰면서 모은 돈, 250만 원."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며 번 돈, 300만 원."


나는 증권 계좌가 여러 개 있는데 첫 시드머니인 1000만 원은 따로 구분해서 관리한다. 이 1000만 원은 과거에 보잘것없고 찌질했던 나와 역사를 공유하는 돈이다. 힘겨웠던 시절을 함께 했기에 각별한 사이다. 위험이 큰 곳에 욕심을 부려 함부로 투자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이 돈은 필사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와 같다. 세상에서는 모두 동일한 가치로 통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첫 시드머니와 그 이후로 모인 돈은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다. 돈의 가치를 알고 돈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돈을 인격체로 대우한다. 돈도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따른다. 시드머니는 내가 더 친근하고 아끼는 사람이다.



시드머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에 이미 투자 대가들이 비슷한 논리로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의 이야기도 특별히 새로운 건 없다. 하지만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자를 꿈꾸는 20대 청년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은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귀여운 발버둥으로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돈은 없지만 주식은 하고 싶은 사람들이 성급한 마음에 주식 판에 뛰어들기보다 돈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돈과 교감하고 교제하면서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종잣돈을 마련해보면 좋겠다. 그 종잣돈이 주는 안정감은 정말로 아는 사람만 안다.



<다음 편 예고>

유소유 #03 안 먹고 만다 (1/21 발행 예정)

혼란스러운 주식 시장에서 갖춰야 할 3가지 마인드


안 오면 말고...


다음 버스 타면 되지!


왜 이런 좋은 정보를 나한테?

작가의 이전글 주가 없는 주식학 #01 편의점&대형마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