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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Feb 09. 2022

주가 없는 주식학 #03 라면&제과

매운 놈, 진한 놈, 불타는 놈/초코파이와 카스타드, 원조는 나야

라면: 한국인의 입맛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대한민국 사람들은 라면을 사랑한다.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학생들도, 수영장이나 스키장에서 신나게 노는 청년들도,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는 어르신들도 옆에는 항상 라면이 있다. 한국인의 주식이 밥인지 라면인지 헷갈릴 정도다. 방송이나 영화에서도 라면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경규가 개발한 꼬꼬면은 대한민국에 흰국물라면 열풍을 불러왔고, 2013년에 '아빠! 어디가?'에서 윤후가 먹은 짜파구리는 6년 뒤인 2019년에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던 영화 '기생충'을 타고 세계로 뻗어가 K-라면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신의 인생 라면을 만드는 기업이 어쩌면 인생 자체를 바꿔줄지도 모른다.



4개 업체가 라면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데 나름 서열도 확실하다. 메가브랜드를 5개나 보유한 농심, '진' 시리즈로 2인자 자리를 굳힌 오뚜기, 라면의 원조지만 정작 돈은 불닭볶음면으로 버는 삼양식품, 비빔면 시장에서만큼은 최강자인 팔도가 주인공이다. 이 중에서 상장 기업은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이다. 라면을 포함해 대부분 음식료는 가격탄력성이 낮다. 쉽게 말해 사람은 가격이 절반이 됐다고 하루 6끼 먹지도 않고, 가격이 세 배가 됐다고 하루 1끼 먹지도 않는다. 따라서 라면 기업이 돈을 더 벌기 위해서는 라면 먹는 사람 수를 늘리거나, 라면을 더 비싸게 파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라면업계 키워드로 '글로벌'과 '프리미엄'이 등장한 것이다.


K-라면은 2021년에도 6억 달러 이상 수출하며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며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로 이어진다. 수출 대장은 역시 큰형님인 농심이다. 농심은 이미 미국 현지 공장에서 라면을 생산하고 있고 올해 제2공장까지 증설해 가동할 예정이다. 농심의 대표 라면인 신라면은 월마트 전 점포에 입점하기도 했다. 오뚜기는 상대적으로 내수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래도 해외매출 비중이 최근 두자릿수를 넘어섰다. 삼양식품은 효자 상품인 불닭볶음면 시리즈를 앞세워 전체 매출 중 절반 이상을 해외 수출로 벌고 있다. 1990년대부터 이미 러시아에서 도시락으로 이름을 날리던 팔도는 러시아에 라면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라면 소비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존재한다. 라면업체들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다. 프리미엄 라면의 시작은 '신라면 블랙'이다. 출시 초기에는 기존 라면 대비 2배 이상 되는 가격에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농심이 오래 전부터 신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오뚜기는 '라면비책' 시리즈로 프리미엄 라면인 '닭개장면'과 '고기짬뽕'을 출시했다. 의외로 삼양식품이나 팔도보다 하림이 눈에 띈다. 1 봉지에 무려 2200 원이나 되는 하림의 'The미식 장인라면'은 출시 1달 반 만에 500만 봉지를 팔아치웠다. 하지만 열풍이 지속되지 못하는 가운데 대표까지 돌연 사임했다.



박지성부터 손흥민까지 농심 신라면의 매운 맛에 울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라면 순위를 매겨보면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짜파게티, 육개장이 항상 순위권에 들어간다. 그저 그런 라면 10개보다 신라면 하나가 백 배 이상 낫다. 왜냐하면 사람의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는 중요하다. 소비자는 계속 새로운 제품을 찾고, 농심은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신제품과 30년 이상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해진 신라면 중 하나만 택하라면 후자다. 게다가 30년 이상 한국인의 입맛을 지배한 신라면이 이제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30년 동안 살아남은 브랜드는 30년을 더 살아남을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견고했던 농심의 점유율에 균열이 가는 시기가 있었다. 2013년 한국 야구의 간판, 코리안몬스터 류현진의 '진'라면 마케팅이 대성공을 거두며 오뚜기의 점유율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진짬뽕'까지 대히트를 치면서 오뚜기는 안정적인 2위로 우뚝 선다. 오뚜기는 사회적 공헌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갓뚜기'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또한 오뚜기 재벌 3세 함연지씨는 유튜브 채널 '햄연지'를 운영하면서 친근한 이미지로 구독자들과 소통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오뚜기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 하지만 '갓뚜기'답지 않게 기업 지배구조 이슈로 ESG 점수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는데 오뚜기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잘 팔린다. 불닭볶음면의 매운 맛에 도전하는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유튜브를 통해 외국인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삼양라면' 하나로 버티고 있던 삼양식품을 '불닭볶음면'이 멱살을 끌고 해외로 나가는 꼴이 됐다. 한편 국물라면이 주류이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라면은 겨울이 성수기, 여름이 비수기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은 라면의 계절성을 극복하려고 비빔면을 출시했지만 여전히 팔도 비빔면의 아성은 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적고 둘은 많은 마법의 양 조절부터 BTS RM의 요청에 1.2배 비빔면 출시로 화답한 팔도는 마케팅을 참 잘한다. 비상장이라는 것이 유일한 흠이다.



IT기업들이 주목받는 시대에서 라면은 폭발적인 성장을 내기 어려운 산업이다. 위에서 언급한 식품의 가격탄력성, 건강 중시 트렌드는 분명 라면업계에 리스크다. 게다가 라면 빅4를 위협하는 또 다른 존재는 편의점, 대형마트, 이커머스의 PB상품이다. 잘 생각해보면 농심 라면을 파는 농심 가게는 없다. 라면업체는 만들기만 할 뿐 파는 건 유통업체다. 그런데 유통업체가 직접 라면을 만드는 것은 심판이 경기를 뛰는 셈이다. 따라서 최근 라면업체는 국내에서 마케팅 경쟁을 최소화하면서 내실을 다지고 해외에서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라면이 한국인의 밥상을 넘어 전세계의 식탁에 올라가는 순간 라면 기업 주식도 든든한 수익을 안겨줄 것이다.


과자: 왜 자꾸 날 따라해? 너가 너무 잘나가니깐.

#오리온 #롯데제과 #농심


과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과자에도 종류가 참 많은데 파이, 비스킷, 스낵, 초콜릿, 캔디, 껌, 아이스크림 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카테고리가 많은 만큼 기업, 브랜드, 제품도 엄청 많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브랜드와 제품이 히트를 쳤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오래 살아남고, 다양한 맛이 나올수록 히트상품이다. 그런 히트상품을 많이 보유한 기업일수록 안정적인 현금으로 신제품을 만들 수 있다. 한편 경쟁사가 히트상품을 출시하면 재빠르게 모방하기도 하는데 '허니버터칩' 이후 나타난 수많은 유사 제품과 파생 제품이 대표적이다. 아예 대놓고 따라한 카피캣 제품도 있는데 이를 시작으로 과자업계를 살펴볼 것이다.



과자 시장에는 업체가 너무 많기 때문에 파트를 나눴다. 오리온, 롯데제과, 해태제과, 크라운제과는 파이, 비스킷, 스낵, 껌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커버하는 종합제과업체다. 1위는 오리온과 롯데제과가 번갈아하면서 차지하는데 왕좌에 오르기 위한 팽팽한 기싸움이 볼만하다. 이들은 잘나가는 제품이라면 경쟁사의 제품을 모방하는 카피캣 전략도 서슴지 않는데, 오리온의 초코파이를 롯데가, 롯데의 카스타드를 오리온이 따라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롯데제과는 카피캣 전략 남용으로 상표권 소송도 많이 걸려있고 사회적으로 지탄도 받는데, 보통명사는 상표권 독점이 어렵다는 점과 표절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교묘하게 활용한 전략이다.


해태제과와 크라운제과는 한 지붕 두 가족이다. 해태제과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해태제과는 2005년 크라운제과에 인수를 당한다. 대한민국의 '과자 장인'이라고 불리는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의 장남 윤석빈 대표와 사위 신정훈 대표가 각각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를 이끌고 있다. 쿠크다스를 비롯한 국민 과자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크라운제과는 3세 경영을 본격화하며 외형 성장보다 내실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 허니버터칩이라는 역작을 탄생시켰지만 제2의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 채 위기에 빠진 해태제과는 급기야 해태아이스크림을 빙그레에 매각하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해태제과로부터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인수한 빙그레는 단숨에 빙과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1위 사업자로 우뚝 서게 된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가 빙과 시장에서 점유율 2위와 3위를 차지하는데 상호명이 비슷하지만 엄연히 둘은 다른 회사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보태자면 '롯데 식품 3총사'라고 하면 롯데칠성, 롯데제과, 롯데푸드를 일컫는다. 메로나와 부라보콘을 앞세운 빙그레 연합군과 빠삐코와 월드콘을 앞세운 롯데 연합군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 농심은 사실상 라면 기업이지만 새우깡 하나만으로 스낵 시장에서 인정해주는 과자 기업이기도 하다. 농심의 사업은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Simple is the Best.'



과자는 친숙하지만 과자 기업 투자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업계 내 경쟁이 치열할 뿐만 아니라 라면만큼 글로벌화와 프리미엄화가 어렵다. 따라서 원재료 비용 상승에도 가격을 인상하기 쉽지 않고, 설령 지금처럼 물가가 대폭 오르는 시기에 과자업계가 다함께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마케팅 비용 상승으로 효과가 상쇄된다. 게다가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는 불량 식품으로 취급받기 일쑤인 과자업체에게 불리한 현상이며, 외식업계와 배달문화의 발달은 사람들로 하여금 평범한 과자 대신 고급스러운 디저트를 찾아나서게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젤라또 아이스크림은 자랑하기 좋지만 투게더 아이스크림은 나를 '아재'처럼 보이도록 만들 뿐이다.


하지만 SNS가 과자 시장을 죽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SNS 활용도가 높은 MZ세대가 과자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기존 제품으로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고 SNS에 공유하는 '모디슈머(Modisumer)', 괴상한 조합으로 도발적인 레시피를 시도하는 '펀슈머(Funsumer)'가 대표적이다. 롯데제과는 모디슈머에게 영감을 얻어 꼬깔콘 홀갈릭마요 딥소스 팩을 출시했고, 오리온은 펀슈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레몬 초코파이를 한정판으로 선보였다. 기업은 모디슈머의 레시피를 상품화해 어느 정도 수요가 보장된 시도를 할 수 있고 펀슈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그들의 SNS를 통한 자연스러운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또한 과자업계는 구독과 콜라보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구독 모델에 가장 진심인 롯데제과는 '월간 구독'을 신청하면 매달 과자 패키지를 택배로 보내주는데 사람이 과자를 언제 많이 먹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작정하고 과자를 먹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여유로운 주말에 영화와 함께 과자를 먹으며 소확행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지니뮤직'이나 '엔젤리너스' 같은 타 브랜드와 콜라보를 진행해서 쿠폰도 보내준다. 유튜브에 광고를 싣듯이 과자 박스에도 타 브랜드 광고를 실어서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마 이 구독 모델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 과자업계에 새로운 유행처럼 번질 것 같다.



처음 주식 투자를 할 때는 과자를 팔아서 무슨 돈을 버냐며 무시했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시작된 공급망 대란에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면서 종류를 가릴 것 없이 식품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푼돈이라고 무시했던 내가 2+1 행사상품만 찾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확실히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어마어마하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럴 때일수록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브랜드는 바로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손이 갈 수밖에 없는 본좌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다. 지금 과자 사먹을 돈을 아껴서 먼 훗날에는 과자 기업에서 받은 배당으로 먹고 싶은 과자를 사먹는 게 소박한(?) 꿈이다.



<다음 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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