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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Feb 21. 2022

프로듀스 유니콘 #02 우아한형제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출처: 우아한형제들


이제는 아무도 전화로 배달음식을 주문하지 않는다. 냉장고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전단지도, 서랍에 꼬깃꼬깃 접혀있던 쿠폰북도 모두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갔다. 치킨, 피자, 짜장면, 짬뽕뿐만 아니라 초밥이나 돈까스, 심지어 빙수까지 터치 몇 번만 하면 음식이 내게로 달려오는 세상이 열렸다. 외국인이 가장 충격적인 K-컬처로 꼽는 게 배달이다. 언제 어디든 1시간 안에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는 걸 보며 깜짝 놀라는 외국인에게 라이더는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듯한 무심한 뒷모습을 보이며 시크하게 떠나간다. 쿠팡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니콘이었던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민족'이라는 서비스로 배달문화를 우아하게 변모시켰다.



[History] 어디까지 우리 민족입니까?

출처: 우아한형제들


2010년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시절, 디자이너였던 김봉진 대표(현 우아한형제들 이사회 의장)는 배달의민족이라는 어플을 출시하고, 이듬해 우아한형제들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사업 초기 아파트 경비실을 찾아다니며 음식점 전단지를 수거했다는 김봉진 대표는 젊은 창업가들의 귀감이 되었다. 2012년 '바로결제' 도입으로 전화주문과 현장결제가 앱주문과 모바일결제로 바뀌면서 배달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2017년 '배민라이더스'가 서울 전 지역에 진출하며 랍스터, 똠양꿍, 빙수 등 직접 가서 먹어야 했던 음식까지 배달되기 시작했다. 이때 '설빙도 우리 민족이었어' 같은 유머러스한 광고가 참 배민다웠다.



우아한형제들은 단순 배달 중개 플랫폼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창조했다. 예를 들어 2015년 '배민 신춘문예'라는 작문 대회를 개최했고,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라는 유행어가 탄생했다. 또한 2017년 '배민 치믈리에'라는 자격 시험을 만들었고, 현재까지 총 118명이 합격했다. 2013년부터는 한나체, 주아체 같은 배민 글씨체를 무료 배포함으로써 유치하지만 기억에 남는 'B급 마케팅'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배민답다'는 말이 가볍기만 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2018년 배달의민족은 푸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을 창간해서 음식에 대한 전문성을 제고하고,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2019년 겨울,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가 우아한형제들을 40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스타트업이 결실을 맺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IPO(기업공개)와 M&A(인수합병)가 있는데 쿠팡은 전자, 우아한형제들은 후자를 택한 것이다. 이 소식은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왜냐하면 딜리버리히어로는 이미 대한민국 배달 시장 2위와 3위 업체인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 시장의 약 99%를 한 기업이 독점하는 문제가 발생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딜리버리히어로에게 시정 명령을 내렸다. 긴 심사 끝에 결국 딜리버리히어로가 2021년 요기요를 GS리테일에 매각하고 배달의민족을 인수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Business] 수익을 잊은 기업에게 미래는 없다.

출처: 우아한형제들


우아한형제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현재 진행형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바뀌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우아한형제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과거부터 미래까지 핵심 위주로 정리했다. 배달의민족은 대표적인 O2O 플랫폼답게 수수료와 광고비가 메인이다. 사업 초기에는 배달 수수료가 주요 매출이었지만 고객들은 높은 수수료 부담을 호소했다. 그리하여 2015년 김봉진 대표는 '수수료 0%'라는 파격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내부적으로도 반대가 많았던 이 전략이 성공한 이유는 수수료 인하 덕에 고객들이 배달의민족 플랫폼에 몰려드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했고, 광고비라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수수료 0% 선언 이후 우아한형제들은 광고비 비즈니스로 전면 개편했다. '슈퍼리스트', '오픈리스트+울트라콜', '오픈서비스' 등 여러 광고비 정책을 시도하는 동시에 배달대행(배민라이더스), 반찬배달(배민찬), 배달용품(배민상회), 공유주방(배민키친), 단건배달(배민1)로 수익 다각화에 나섰다. 배달의민족은 이 모든 서비스를 통해 음식점주들의 배달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달 업계 경쟁 심화로 2019년부터 적자의 늪에 빠진 배달의민족은 5년 만에 수수료 비즈니스를 부활시켰다. 현재 우아한형제들은 수수료와 광고비가 혼합된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미래 먹거리 발굴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미래의 키워드로 '커머스'를 꼽았다. 먼저 'B마트'에서 간단한 장보기 서비스를 시작으로 퀵커머스 시장을 개척했다. 또한 '쇼핑라이브'를 통해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진출하여 실시간으로 소비자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배민스토어'에서 꽃, 신발, 화장품 같은 음식이 아닌 제품까지 카테고리를 넓히며 이커머스를 강화했다. 게다가 '선물하기'를 통해 소셜커머스도 활용하여 고객들이 배민상품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현금을 선지불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보다시피 우아한형제들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도 확실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Performance] 뜻밖의 코로나 수혜, 앞으로 어떻게 될까?

출처: 우아한형제들


대부분 기업에게 코로나19는 위기였지만 우아한형제들에게는 기회였다. 많은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꺼리면서 배달음식을 시켜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배달 시장은 2017년 2조7326억 원에서 2021년 25조6847억 원으로 10배 가까이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배달의민족은 68.61%로 압도적인 마켓 리더였다. 시장에서는 리오프닝이 본격화되면 수혜를 입은 배달업체들의 실적이 둔화할 것이라는 입장과 일상으로 자리 잡은 배달문화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2018년까지 흑자를 기록하다가 2019년부터 적자로 전환한 우아한형제들은 팬데믹 속에서 커진 덩치가 살이 아닌 근육이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금리 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에게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쥐약인데, 2019년부터 적자를 감수하면서 마케팅과 신사업 투자를 집행한 우아한형제들은 수익화 국면에 접어들기 전에 고비를 만났다. 게다가 모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는 세계 각국의 배달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하면서 수년째 만성 적자 행진에 허덕이고 있어,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심지어 라이더 인력난과 개발자 품귀 현상으로 더해진 인건비 부담은 갈 길 바쁜 우아한형제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업계 경쟁 심화와 정부의 배달 중개 수수료 규제라는 부정적인 이슈가 우아한형제들을 계속 따라다닐 것으로 예상된다.



[Competition] 우아하지 않은 치킨게임을 끝내야 한다.

출처: 우아한형제들


원래 '배달 3총사'는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이었는데 2021년 6월 배달통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쿠팡이츠가 대체했다. 배달의민족은 쿠팡이츠 단건배달에 대응하기 위해 '배민1'을 출시했고, 라이더에게 1만 원 넘는 배달비를 지급하는 치킨게임이 막을 올렸다. 한편 '위대한상상'이라는 사명으로 새 출발을 알린 요기요는 업계 최초로 구독형 서비스를 선보였다. 미미한 수준이지만 위메프도 '위메프오'라는 배달 어플을 출시했고, 경기도의 '배달특급'과 신한은행의 '땡겨요'도 배달 시장에 진출했다. 수익보다 국민의 편익을 추구하는 공공기관과 수익보다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금융기관은 우아한형제들에게 상당히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기업이지만 의외로 약점이 많다. 경쟁업체의 치킨게임에 응할 수밖에 없었고, 인건비 부담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소비자와 정부에게는 미운털이 박혔다. 게다가 신사업으로 진출한 퀵커머스와 라이브커머스에는 신세계, GS, 네이버, 카카오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한편 쿠팡이츠가 배달을 건드리자 배민스토어가 이커머스를 건드린 점이 흥미로운데, 마치 검색과 메신저로 출발한 네이버와 카카오가 진출하는 사업마다 충돌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상생 파괴,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판 속에서 우아한형제들이 치킨게임을 피하고 안정적인 수익성을 도모할 수 있을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출처: 우아한형제들


우아한형제들은 대한민국의 배달문화를 정립했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딱딱한 조직문화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실력 있는 사람들이 과거에는 꿈의 직장이었던 삼성, 현대, SK, LG를 떠나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로 떠나고 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스타트업 1세대의 주역으로서 이제 이들의 임무는 스타트업의 지속가능성과 확장가능성을 증명하고, 사회와 상생하는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유의 친근한 마케팅으로 국민들의 머리 속에 자리 잡은 배달의민족의 역할은 막중하다. 배달음식을 잘 시켜먹지 않는 사람들조차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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