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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Apr 29. 2022

유소유 #17 황소랑 곰이 싸운다는 게 무슨 말이야

주식 시장에 사는 3가지 동물 이야기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그리고 대한민국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는 황소상이 있다. 뿔을 들어올리는 황소는 상승장(불마켓, Bull Market)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편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미국 증시가 폭락하자 '나스닥, 하락장(베어마켓, Bear Market) 진입'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앞발을 찍어내리는 곰은 하락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식 관련 뉴스나 리포트를 읽다 보면 뜬금없이 동물들이 등장한다. 황소와 곰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있으니 오늘은 주식 시장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동물들의 상징적인 의미를 3가지 더 알아보자. 아마도 투자 구루들의 이야기가 더 잘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1. 그 사람은 비둘기야, 아니면 매야?


올해 주식 시장에는 비둘기(Dove)가 안 보이고 매(Hawk)밖에 없다. 현실 속 비둘기는 피하고 싶지만 많은 주식 투자자들은 비둘기를 기다린다. 반면 주식 투자자들에게 매는 공포스러운 존재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조절해 통화정책을 펼치는데,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장에 풀린 돈(통화량)이 줄어들어 증시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비둘기파는 기준금리를 낮춰 경제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매파는 기준금리를 높여 물가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둘기파와 매파는 베트남 전쟁 당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대에는 통화정책 상 온건파와 강경파를 상징하는 용어로 주로 쓰이고 있다.



현재 미국 재무부 장관인 재닛 옐런은 비둘기파로 유명한데, 비둘기파라고 무조건 기준금리를 내리는 건 아니다. 2014년 옐런 의장은 전임자였던 벤 버냉키 의장이 시중에 막대한 돈을 풀어놓았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했다. 매파 성향 인사들은 금리인상 강행을 압박했지만 옐런 의장은 고용 지표를 확인하며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렸다. 한편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린 폴 볼커 의장은 1979년 취임 직후부터 기준금리를 19%까지 끌어올렸다. 덕분에 물가는 잡았지만 경기침체에 빠졌다. 하지만 볼커 의장이 매파라고 해도 성장을 경외시한 것은 아니다. 당시 물가가 10% 이상 상승하던 상황이 그로 하여금 매파적 선택을 하도록 이끌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 시장은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일단 제롬 파월 의장은 비둘기도, 매도 아니다. 2018년 파월 의장이 금리인상을 강행하다가 증시 폭락이 오기도 했고 2020년 팬데믹 이후로는 제로 금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2022년 심상치 않은 물가상승에 다시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 기조를 달리하는 파월 의장을 '올빼미파'라고 부르기도 하고, 매파처럼 발언하지만 실제 행동은 비둘기처럼 한다며 '매둘기'라고 비꼬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영원한 비둘기도, 영원한 매도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비둘기를 매로 착각하면 최소한 다치지는 않지만, 매를 비둘기로 착각하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2. 개와 고양이가 시장을 들었다놨다 한다.


'꼬리가 개를 흔든다(The tails wag the dog)'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고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인데, 주식 시장에서 '왝더독'이라 하면 선물 시장이 현물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현물 시장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진 선물 시장은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투기 세력들의 전쟁터로 전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편 월스트리트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면 죽은 고양이도 튀어오른다(Even a dead cat will bounce if it falls from a great hill)'라는 무서운 어록이 있다. 증시가 폭락하더라도 일시적으로 반등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데드캣바운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올해 증시는 롤러코스터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폭으로 하락하기도 했지만 투자자들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것은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는 장세다.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선물과 함께 대표적인 파생시장인 옵션 시장에서 투기 세력들이 현물 시장을 뒤흔드는 왝더독이 일어나고 있다. 속된 말로 '개미 털기'라고 하는데 이럴 때 대응을 잘못하면 큰 돈을 잃을 수 있다. 한편, 작년 말부터 나스닥 지수가 폭락하다가 3월 초에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자, 코로나19 폭락 이후 'V자 반등'이 이번에도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돌았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데드캣바운스에 불과했고, 4월 증시는 재차 하락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적투자(트레이딩)와 관련된 표현을 알아보았는데 어떻게 투자에 활용할 수 있을까? 만약 본인이 트레이딩에 소질이 있다면 선물 시장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차트 추세선을 분석해서 바닥을 잡으면 된다. 하지만 나처럼 트레이더의 꿈을 빨리 포기한 투자자라면 마음이 편하다. 트레이딩 기법을 몰라도 큰 지장은 없으며, 급등장에서 올라타거나 급락장에서 뛰어내리지만 않으면 된다. '개미 털기'에 당하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대응보다 소극적인 무대응이 훨씬 낫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V자 반등을 주장하더라도 섣부르게 움직이지 말았으면 한다. 데드캣바운스인지 V자 반등인지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3. 백조와 코뿔소를 조심하라.


2007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해진 나심 탈레브가 저서에서 소개한 '블랙스완'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흰 백조 뿐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검은 백조가 나타나자 큰 충격에 빠졌는데, 이처럼 발생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실제로 일어나면 굉장히 파급력이 큰 사건이 바로 블랙스완이다. 한편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은 '그레이라이노'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우리말로 하면 회색 코뿔소를 뜻하는 그레이라이노는 블랙스완과 달리 예측할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위험을 의미한다. 평소에는 얌전해보이는 회색 코뿔소가 마음 먹고 달려오면 거대한 덩치와 재빠른 속도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는 대표적인 블랙스완의 사례다. 팬데믹 발생 전부터 빌 게이츠가 세계적인 전염병이 유행할 것이라고 예측한 게 화제가 됐지만, 그 누구도 코로나19라는 질병이 2020년 전세계 경제를 셧다운시킬 것을 구체적으로 예측하지는 못했다. 한편 그레이라이노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은 중국의 성장 둔화와 미국의 국가 부채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던 중국이 고성장 시기를 지나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고, 세계의 지갑 역할을 했던 미국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면서, 중국이 생산하고 미국이 소비하는 글로벌 공급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이 패권 다툼을 벌이면서 디커플링(탈세계화)은 이미 현실화되었다.



주식 시장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넥스트 블랙스완을 예측하려 하는데, 블랙스완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므로 이는 모순이다. 나심 탈레브는 블랙스완에 대한 해결책으로 '안티프래질'을 제시했다. 안티프래질은 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최선책을 모색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꽤 많은 투자자들이 그레이라이노는 애써 무시하거나 그레이라이노를 블랙스완으로 치부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투자에서 큰 위기를 몇 번 피하고 큰 기회를 몇 번 잡으면 인생이 바뀐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레이라이노를 대비하다가 실제로 위기가 닥치면 그때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처럼 주식 시장에는 황소부터 곰, 비둘기, 매, 강아지, 고양이, 백조, 코뿔소까지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용어를 알아야만 투자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두는 것을 권장한다. 투자 서적이나 칼럼을 읽을 때 용어를 알면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평생 투자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힘일 뿐만 아니라 재미가 될 수 있다. 주식 시장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통해 현재 증시는 어떤 국면인지, 중앙은행은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선물 시장과 현물 시장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앞으로 다가올 위기는 어떤 모습일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다음 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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