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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May 04. 2022

주가 없는 주식학 #09 의류&가구

의류: 트렌드를 따라가는 패션, 트렌드와 멀어지는 주식

#영원무역 #한세실업 #화승엔터프라이즈 #F&F #신세계인터내셔날 #휠라홀딩스 #한섬


언택트 시대에서 비대면 수업과 회의가 일상이 되자 위에는 셔츠, 아래는 츄리닝이라는 기괴한 패션이 유행했다.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옷을 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2년여 만에 드디어 일상으로 되돌아가려는 낌새가 관찰되자 사람들은 다시 예쁘게 입고 나갈 옷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2년 전에 입던 옷은 해지거나 트렌디하지 않았고, 새출발하는 기분으로 새 옷을 장만하려는 수요가 증가했다. 패션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주식도 사이클에 따라 주도주가 바뀐다. 음식료 만큼이나 우리의 삶과 밀접한 의류 주식 가운데에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투자 기회가 있을지 살펴보자.



의류 산업에 속한 주식들은 OEM/ODM 생산업체, 브랜드 수입업체, 브랜드 제작업체로 나눌 수 있다. 화장품, 의약품처럼 의류 산업에서도 OEM/ODM 생산업체가 많은데 대표적으로는 영원무역, 한세실업, 화승엔터프라이즈가 있다. 영원무역은 노스페이스, 룰루레몬, 파타고니아 같은 해외 브랜드의 제품을 위탁받아 동남아시아나 남아메리카에서 생산한다. 화승엔터프라이즈는 아디다스 신발이나 나이키 모자를 생산하고, 한세실업도 GAP, H&M 의류를 생산한다. OEM/ODM 업체의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신규 매출처 발굴 여부인데, 최근에는 개발도상국의 노동착취나 인권유린 문제가 부각되면서 비용 컨트롤 능력도 중요해졌다.


다음으로 의류 브랜드 수입업체는 해외의 유명한 브랜드의 사업권을 취득하여 국내에서 마케팅과 유통을 담당한다. 국내에는 MLB와 디스커버리를 취급하는 F&F, GAP과 아크네스튜디오를 취급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 NFL과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취급하는 더네이쳐홀딩스, 캘빈클라인 언더웨어를 취급하는 코웰패션이 대표적이다. 브랜드를 만들어서 키워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글로벌 브랜드를 등에 업는 것은 꽤 괜찮은 전략이다. 하지만 이들은 항상 재계약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기껏 잘 키웠더니 해외 브랜드가 직접 사업을 하겠다고 뺏어가버리거나, 재계약을 취소해버리거나, 브랜드 로열티를 올려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는 의류 브랜드 제작업체도 있다. 휠라라는 이탈리아 브랜드를 수입해서 유통 사업을 영위하다가 아예 모기업을 사버린 휠라홀딩스는 아쿠쉬네트라는 골프 어패럴도 산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타임, 마인 등 커리어우먼들을 위한 브랜드를 보유한 한섬과 닥스, 헤지스 등 남성들의 추억이 담긴 브랜드를 보유한 LF도 브랜드 제작업체라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체 브랜드가 있는 기업들이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는 게 마땅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패션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브랜드는 애물단지가 되고, 자연스럽게 기업의 미래 가치 전망은 어두워진다.



의류 기업에 투자할 때 고려해야 하는 산업 트렌드로는 무엇이 있을까?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명품이다. '백화점&면세점' 포스팅에서 명품은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핵심만 얘기하자면 어중간한 브랜드는 패션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확실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하고, 지속가능한 브랜드 파워를 갖춰야 한다. 주식 시장에서 고평가냐 저평가를 판별할 때 쓰는 지표를 보면 명품 의류 기업은 너무 높아서 말이 안 되고, 국내 브랜드 제작업체 기업은 너무 낮아서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에 쉽게 매수 버튼에 손이 나가지 않는다면 당신도 무의식적으로 국내 브랜드가 저평가 받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류 주식에 장기투자가 어렵다면 단기매매는 어떨까? 패션에는 트렌드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선구적인 패션 감각을 지녔다면 유행 초기에 올라타서 수익을 보고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노스페이스가 국민 교복으로 자리매김하던 2010년대 초중반 영원무역의 실적과 주가는 상승했고, 트렌드에 뒤처져 죽어가던 휠라홀딩스는 2010년대 중후반 레트로 유행에 어글리 슈즈가 대박이 터졌고 재기에 성공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의 또 다른 사례로는 롱패딩에서 숏패딩으로의 급속한 전환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패션 트렌드를 모두 맞출 수 있다면 의류 주식 단기매매에 도전해보라. 나는 유행에 둔감한 사람이라 포기한 지 오래다.


팬데믹 전후로 주목 받는 패션 트렌드는 '헬스'가 아닐까 싶다. 홈트레이닝, 프리웨이트, 스트릿워크아웃 등 다양한 형태의 운동으로 몸을 가꾸는 사람들이 언더아머를 입기 시작했다. 운동 실력을 증명하는 징표로 사용됐던 언더아머는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주름잡고 있던 스포츠웨어에 언더독 신드롬을 일으키며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언더아머가 주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면 필라테스, 요가, 폴댄스 등 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혜성처럼 등장한 룰루레몬이라는 브랜드가 애슬레저룩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지금 위드코로나와 함께 주가가 빠진 언더아머나 룰루레몬에 투자해보는 건 어떤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기를 끌고 싶다면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지만, 장기투자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트렌드와 먼 주식을 찾아야 한다. 의류 기업의 비즈니스모델부터 의류 산업의 트렌드까지 전반적으로 살펴본 결과 안타깝게도 국내 상장 의류 주식 중에서 장기투자하고 싶은 종목은 찾을 수 없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처럼 막강한 브랜드 파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언더아머나 룰루레몬처럼 섹시한 브랜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가 의류 산업의 메가트렌드를 알아보지 못해서 장기투자할 종목이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국내 의류 브랜드가 명품급 반열에 올라갔으면 한다.



가구: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샘 #지누스


지난 2년 간의 팬데믹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당연히 여기던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부모는 회사에 가고, 자녀는 학교에 갔던 시절 집은 휴식의 공간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 중 상당 부분은 수면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모두 집에 갇히자 변화가 일어났다. 집과 회사, 집과 학교와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집은 업무, 휴식, 여가 등 복합 공간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가족 구성원들 간 생활 리듬이 맞지 않아 갈등이 생겼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했다. 팬데믹은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를 분출시켰다.



전세계 가구 시장 규모는 500조 원이 넘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 요소인 의식주 중 '주'와 관련이 깊은 가구는 예전에는 기능성과 실용성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감성적이고 조화로운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가구 시장은 다시 주방 가구, 침실 가구, 거실 가구, 욕실 가구 등으로 구분되는데 특히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주방 가구와 침실 가구는 이번에 소개할 기업들의 주요 매출원이다. 한샘은 주방에서 시작해 침실, 거실, 욕실로 영역을 넓히며 인테리어 사업까지 영위하고 있고, 지누스는 침실에서 시작해 사업 영역 확장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두 기업은 앞으로 접점이 많아지면서 마찰이 잦아질 것이다.


주방은 원래 주부의 공간이었다. 오래 전부터 부엌은 집 밖에 있었고, 요리라는 과정보다 음식이라는 결과가 중요했기 때문에 주방은 아름다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변하면서 부엌이 집 안으로 들어왔고, 맛집과 셰프가 미디어를 타면서 요리가 현대인의 대표적인 취미가 되었다. 따라서 집 전체와 주방이 어우러질 필요가 있었고, 주방은 여성 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을 위한 제 2의 거실이 되었다. 한샘은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여 '시스템 키친', '인텔리전트 키친'이라는 주방 문화를 선도했다. 조화를 이루기 가장 어렵다는 주방 인테리어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샘은 국내 1위 토탈 홈 인테리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침대라고 하면 대부분 에이스침대나 시몬스침대를 떠올린다. '침대는 과학이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같은 캐치프레이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특히 온라인 시장에서 팔리는 침대 매트리스 3 개 중 1 개는 지누스라는 기업이 만든다. 이름부터 낯선 이 기업은 대부분의 사업을 미국에서 영위하고 있는 국내 상장 기업이다. 부피가 큰 매트리스를 온라인으로 살 수 있다는 인식을 미국에 심은 지누스는 아마존과 월마트라는 유통 공룡을 등에 업고 거실, 주방으로 제품군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호주, 유럽, 동남아시아,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지역군을 확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돌아온 유학파'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인터넷, 게임 같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도 작고 성장세도 더딘 가구 시장은 소외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가구 시장에서 흥미로운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바로 한샘과 지누스의 M&A 소식이다. 작년 10월 롯데그룹은 IMM PE와 함께 한샘을 인수했고, 올해 4월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누스를 인수했다. 한샘과 지누스는 둘 다 비재벌 출신의 개인 창업주가 오랫동안 기업을 이끌어왔는데, 한샘의 조창걸 회장과 지누스의 이윤재 회장은 모두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하는 대신 대기업에게 기업을 매각하는 선택을 내렸다. 중견기업의 자본력으로는 성장 여력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아무튼 롯데그룹이 한샘을, 현대백화점그룹이 지누스를 인수하자 백화점 업계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롯데그룹은 최근 1년 사이에 중고나라, 미니스톱, 한샘 등 굵직한 M&A를 성사시켰는데 일각에서는 뒤늦은 대응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한샘이라는 인지도 높은 브랜드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사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지누스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사업의 발판을 마련하고 과거에 인수한 계열사인 현대리바트, 현대L&C와의 시너지를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신세계그룹은 까사미아라는 가구 브랜드를 2018년에 인수했는데 적자의 늪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 백화점 3사의 '리빙대전'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한샘과 지누스의 M&A를 보고 작년에 유니콘 반열에 오른 인테리어 스타트업 '오늘의집'이 떠올랐다. 팬데믹 이후 몸값이 천정부지로 상승한 것은 맞지만 가구업계에는 위협적인 라이벌임에 틀림없다. 금리인상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오늘의집이 IPO를 강행할지, 아니면 한샘과 지누스처럼 대기업의 품에 안길지도 가구 업계가 주목할 이벤트다. 그리고 스웨덴 출신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상륙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유럽 감성에 가성비를 앞세운 가구 공룡이 시장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의견과 까르푸나 월마트처럼 대한민국 정서에 맞지 않는 유럽계 기업이 실패하도 돌아갈 것이라는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



학교를 가든 회사를 가든, 즐거웠든 슬펐든 사람은 어떻게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어릴 적에는 집이 작거나 크거나, 더럽거나 깨끗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2030 세대가 되어 보니 집이란 공간이 주는 의미가 그때와는 다르다. 집은 휴식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가족의 추억이 쌓이는 장소이기도 하고, 자산을 증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당장 강남이자 용산의 최고급 아파트를 사지 못하니 겉은 초라하더라도 안은 포근하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가구와 인테리어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라가는 집 값을 보며 부동산 투자만 생각하지 말자. 집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과 갈망 속에서 주식 투자 인사이트도 뽑아낼 수 있다.



<다음 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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