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나의 유일한 업(嶪)이다.

기시미 이치로의 『일과 인생』을 읽으며

by 절대음감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소싯적에 중장년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가요 〈타타타〉의 가사 일부다. 타타타(tathātā)는 산스크리트어로, '여여(如如)함'를 뜻하는 불교용어다. 그렇다면 '여여함'이란 또 무엇인가?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岸見一郎)는 '여여한 본성'을 가리켜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직장인이었다가 대학원생이었다가 무급 인턴상담원이었다가… 고정된 역할 없이 1~2년 주기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철새 같은 내 모습이야말로 여여한 본성을 떠오르게 만든다. 『디 에센셜 한강』에서 한강 작가는 집필 장소가 계속 바뀌었던 것을 들며, 머무르지 않음의 대상이 '집'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에겐 머무르지 않음의 대상이 '직(職)'이니, 자유로운 마음보다 불안한 마음이 더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교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위무관(無位無官)의 삶을 가장 훌륭한 삶이라 했다 하니, 한 번쯤은 '직'이 아닌 '업(嶪)' 즉 카르마(karma)의 관점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바라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자네는 그 일―시를 쓰는 것―을 하지 않고는 정녕 견딜 수 없는가?" 릴케(Rainer Maria Rilke)가 젊은 시인 카푸스에게 던진 이 질문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이 질문은 다시 카르마의 관점에서 "그 일을 선택했을 때 따라오게 되는 '업'을 감당할 수 있는가?"로도 바꿀 수 있다. 문제는 '업'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는 그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지나온 삶의 경험이 하나의 힌트가 되어줄 수는 있다. 굳이 일의 장면이 아니더라도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아무런 대가가 없음에도, 오랫동안 꾸준히 해왔던 활동들이 그것이다. 나아가 아들러(Alfred Adler)는 그러한 활동이 일로 이어지려면 타인에게 이로움을 주고, 이를 통해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요컨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사람이 될지를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면에서 유독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는지 상기해 보는 반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는 원래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을 강의하다가 아들러에게 빠져 상담사가 된 후 작가로 전향했다. 나 역시 학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했으니 그와 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학부에선 대중음악이 아닌 클래식음악 작곡을 전공했다. 전공자나 애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을 작곡하다 보니 권위자로부터 인정 '받기'만을 바랬을 뿐, 정작 타인에게 이로움을 '주는' 공헌감 같은 건 느껴본 적이 없었다. 상담은 좀 달랐다. 심리검사 해석상담 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고마움을 표했던 학생, 온라인 화상상담이 가능한 겨울방학임에도 일부러 매주 1시간 거리를 달려온 학생을 보며, 공헌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상담센터에 소속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계약 만료 후 상담센터 여러 곳에 지원을 했지만 끝내 나를 불러주는 상담센터는 없었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간택을 받아야만 비로소 가치 있는 사람으로 기능할 수 있는 구조에 적잖은 회의감이 들었다.


문득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고, 무언가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으며, 이름 모를 사람들과 생각과 감정을 무한히 '공유'할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미 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직장을 잃고 사랑을 잃었던 그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쉼 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 "Scribens est mortuus." "쓰다 죽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플라톤(Plato)처럼 죽는 날까지 지속할 수 있는, 어떠한 주저함도 들지 않는,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는, 영원 속에서 몰두할 수 있는, 무엇보다도 가장 나답게 살게 해 줄 거의 유일한 일. 그것이 나에겐 글쓰기라는 결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은 인생은 작가처럼 살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