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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우 Peter Lee Nov 13. 2015

또 다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해산의 수고

갈라디아서 공부 10강 


또 다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라디아서 4:19)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을 개척하며 성도들을 돕기에 힘썼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들이 하나님을 알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성도들은 어느정도 믿음의 길을 걷고 있었고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들은 목자 바울을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주고 싶어할 정도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들은 사랑하는 제자들이며 자식과 같았고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바울과 갈라디아 성도들간의 관계가 그냥 적당한 관계라면 그렇게 실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갈라디아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깊으면 깊을 수도록 더욱 실망도 컸을 것입니다. 저도 이전의 프로젝트에서 믿고 맡겼던 PL급 리더가 보고하지 않고 저를 속이고 있다가 전체 프로젝트가 결과적으로 망가지고 퇴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일이 실패한 것도 힘들었지만 믿고 맡겼던 한 사람을 잃었다는 것이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이후 사람에 대한 감정이 다시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나서서 사람을 돕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을 포기하거나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맺었던 사랑의 관계성을 이야기 하며 돕고자 했습니다. 처음 가졌던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 바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그럼 바울은 어떤 자세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고 그 사랑을 지키고자 했습니까?

  바르고 참된 말, 즉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할 때 사람에게는 반발심이 생기고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사람의 본성은 성경 말씀을 싫어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씨름을 해야하고 애를 써야 합니다. 별로 좋은 예는 아니지만 한 팟케스트에서 현재 야당의 문제점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486 출신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새로운 제안을 하고 이슈를 제기하면 부딫혀야 하고 욕을 먹다가 잡음을 내어 공천에서 탈락하기 싫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을 이루고 사람을 살리려면 새로운 것, 정직한 것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아프지만 듣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율법이라는 초등학문에 종노릇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잡음이 나고 때로는 욕을 먹더라도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또한 처음 열심이 변질되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앞서 말했던 486 세대들이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변절했습니다. 그 열심이 변질될 때 더욱 구리게 되고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저도 많은 형제들에게 전도를 했고 교회에 따라왔던 세대의 사람이고 과거 활발한 복음역사를 보고 자란 세대입니다. 교회에 오는 형제들을 도우면서 저로 그 틈에서 조금 헌신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의 마음속에서 이전의 헌신했던 저의 모습만 본다면 열심이 변질되어 오히려 역사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학생 리더들의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고 학생 리더들이 세움을 입도록 돕고 뒤에서 섬기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배우면서 해산의 수고를 다시 시작하려는 바울의 모습을 통해서 은혜를 받습니다. 제가 그렇게 나이를 먹은 것은 아니지만 지난 몇 년간 형제들을 돕는데 뒷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양들에 대해서 기도하고 조언을 했지만 한 영혼을 다시 깊이 있게 돕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있다 저의 상황이 그렇다 하면서 핑게를 대고 있었지만 사실은 한 영혼에 대해서 해산의 수고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한 영혼을 돕기 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제가 다시 후배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한 영혼을 위해서 돕고 해산의 수고를 하고자 결단하고 소원 합니다. 또한 아직 부족하지만 후배 학사님들의 기도제목을 잘 알고 이를 위해서 기도하며 심방가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작지만 헌신하고 한 영혼을 돕고 섬기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마디 : 한 영혼을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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