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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3. 2022

4번 타자의 헛스윙을 기다리며,

8시면 여지없이 나는 타자기를 두드린다

8시면 여지없이 나는 타자기를 두드린다.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나면 어제 일을 적고 오늘 일어날지도 모를 일은 내일 적어도 된다. 적어도 한 개의 해프닝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글은 숨을 쉬는 것과 같아서 계속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영감이라도 끌어오게 된다고 믿는다. 물론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쓰지 않으면 늘지 않고 반드시 긴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좋은 글이 될 것이다. 이런 글들을 쓰다 보면 아주 운이 좋게 책이라는 걸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만드는 회사에서 나는 책을 만들거나 편집하는 일 이외의 일들을 한다. 신간이 나오면 온라인 서점에 도서의 DB를 보내서 도서를 등록하게 한다든지 온라인 서점을 비롯한 거래처들의 주문을 처리한다든지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한다. 출판사에서 나 같은 사람을 마케터로 통칭한다. 그렇지 않은 회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영업의 기로에 서있다. 그동안 여러 회사의 영업직군으로 일하면서 나는 영업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과 다르게 매일 매출에 일희일비하면서 흔들리는 멘털을 부여잡을 강한 성정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껏 수없이 많은 회사의 면접에서는 문제없이 통과되었어도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나오게 된 것이다. 이 회사에서 면접 시내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좋은 것만 취사선택하여 장점을 어필하는 게 면접이니 나는 최적화된 모습만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 외모가 상당히 준수하거나 특별히 잘난 것은 없지만 40~50대 남, 녀가 보기에 신뢰성이 가는 말투와 표정으로 면접에서 승리하는 방식을 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남들은 네가 면접 보는 곳이 뭐 대기업도 아니고 대부분 작은 기업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어쨌든 매일 취업이 어렵다고 말하는 시대에서 나는 취업 자체가 어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특별히 가고 싶은 회사가 없어서도 그렇지만 나를 특별히 원하는 곳도 없었다. 대기업은 자기들에게 딱 맞는 사람을 원하는가? 아니다 좋은 스펙으로 면접장에 앉아 긴 시간을 견딘 인간들 중에서 비용 대비 최고의 효율을 보여줄 사람을 뽑는 과정을 자기들만의 방식대로 정형화한 것뿐이다. 요즘은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에 학력에 대한 정보를 넣지 않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학교라는 간판을 떼면 다 거기서 거기임을 면접의 현장에서 알게 된다. 좋은 학교, 회사를 가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노력의 대가가 그들이 만들어놓은 카르텔로 이어져 다른 누군가가 진입하는 장벽을 더 높게 쌓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동기 중에 한 명이 디자인 쪽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위에 있는 사람이 대학원 가서 공부를 더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사비를 들여 공부 중이다.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꽤 괜찮은 회사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학비를 대출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꼭 대학원에 가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더 높은 곳으로 진급하려면 학벌 세탁이 필요하다고 친구는 말한다. 기업의 채용이 점점 학교와는 별개로 블라인드 채용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좋은 학교 그들의 인맥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가지 못한 선수처럼 나는 그들을 동경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한계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더 노력해서 그들과 같은 리그에서 뛰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흔히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부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영원히 도태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또한 내가 원하는 세상은 아니다. 쓸 말이 없어서 두드리다 보면 꼭 세상에 불만만 가득한 사람으로 남는다. 글은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의 얼굴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살아오면서 노력에 비해 불평과 불만이 많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온전히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것을 늘 경계해왔다. 그건 부모님이 처해있던 많은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지만 여전히 손가락이 머뭇거린다. 내가 처음 두 발로 섰을 때도 나는 조금 머뭇거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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