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원강 Mar 24. 2022

글은 내가 쓸 테니 주제는 네가 정해.

8시에는 작가가 되겠어요

 3월부터 아주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생소한 일이었고 업무에 익숙해지고 숙련되려면 나 스스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배우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현실에서는 나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해서 부서원 중 아무도 알지 못해 다른 부서 직원에게 업무를 배워야 했으니까.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같은 과에 광고홍보학을 연계 전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학점이 모자라 졸업이 늦춰질까 우려해 수업만 들었다. 우리 과 교수님이 대부분 수업을 하셨고 채점 기준이 바뀌기 전까지 과목별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어쨌든 난 배웠지만 학위도 없고 학교를 졸업한지도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래서 관련 업무 회의를 할 때도 내 이야기를 힘주어 이야기하지 못했다. 내가 부전공으로 그걸 배워서 아는데 라는 말로 입을 놀리기 시작하면 나에 대한 시선은 분명 달리 보이겠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배운 사람은 뭔가 달라야 하는 거 아니야? 뭐 이런 불편한 시선을 견딜 힘이 아직 내게는 없었기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업무에 필요한 책들을 구매하고 아침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 전까지 열심히 읽었다. 마케팅과 관련된 책, 브랜딩과 관련된 책을 읽어나갔지만 머리에는 뭔가 꽉 안 차는 것 같기도 하고 책에서는 뭔가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별 효과는 없었다. 세 권의 책으로 어떤 분야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검색과 실무 사례들을 찾아보는 게 더 빠를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책에서는 늘 숙련된 사람이 뭔가 큰 일을 기획해서 큰 효과를 본 얘기만 나오는 것 같다. 내가 그 자리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한 번 생각해보면 쉬운 일이 아닌 건 분명하다. 매일 남들과 다르게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넘쳐서 차고 흐른다. 


 결국 초반의 열정은 식어가고 이른 아침 출근은 지속되었다. 2달이 조금 못 되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성실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은 맞는 것 같다. 내가 없는 곳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은 좋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이다. 회사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일은 못하는데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 나는 그동안 많은 회사들을 거쳐왔다. 회사에 말 못 할 정도로 아주 많은 회사들을 거쳐왔다. 이제 기억조차 안 날 정도다. 그걸 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확인하려면 국민연금관리공단 사이트에서 재직 중에 보험료를 납부했던 이력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나도 잊고 있었는데 아 내가 그 회사를 잠시 다녔었지. 보험료도 내기 전에 내가 그만두거나 잘린 곳도 있기 때문에 그 시간적 순서를 퍼즐처럼 맞추는 건 조금 어려운 일이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떠들고 있는지 하지만 내 인생에서는 실패하거나 좌절했던 순간이기도 하다. 


온전히 내 것이기에 난 부끄럽지만 소중하다. 내가 남들보다 크게 성공한다면 이 스토리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그런데 나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서 남에게 희망을 준다니 그건 개소리에 불과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대학 선배는 보험 영업을 시작으로 오로지 영업 한 길만 파서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해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교수님들이 재학생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만한 선배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하게 하는데 거기에 뽑혀서 선배가 나가게 됐다. 나에게 후배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큰 그림을 그리며 이러한 방식으로 하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무슨 말을 더 보탤까 싶어 말이다. 누구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좋아하는 내가 세상의 척도에 맞는 성공을 했었더라면 난 여기저기 내 자랑을 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학교, 학과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자리 근처에도 나는 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무겁기도 했다. 내게 주어진 길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4번 타자의 헛스윙을 기다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