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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4. 2022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였더라?

세상에서 유일한, 오늘 아침에 대하여

근래 2달 동안 주 5일 퇴근하고 돌아오면 책을 읽었다. 


 밤 10시 30분 정도 되면 TV나 컴퓨터를 모두 끄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쇼팽의 피아노곡을 작은 소리로 재생한다.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 창문까지 닫고 나면 내 방은 오직 나를 위한 오케스트라 공연장이 된다. 옆집에서 내는 미세한 소음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실제 공연장에서도 연주를 방해하는 작은 소음은 왕왕 있으니 개의치 않기로 한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오늘의 책을 편다. 전 날 읽었던 마지막 페이지에는 당첨되지 않은 로또가 끼워져 있다. 매주 복권을 하는 나는 5천 원 이상은 된 적도 없고 매주 한 개에서 두 개 정도 숫자를 맞춘다. 한 번에 구매하는 금액에 비하면 분명 행운인데 1등을 바라지 않고 로또를 사는 사람이 있겠나. 수익금의 대부분이 좋은 일에 쓰인다고 사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 있겠지만, 일확천금이 아니면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해 회차를 거듭할수록 판매량은 늘어나는 것 같다. 한 때는 매주 10명 가까이 1등이 나오니까 기계 조작설까지 흘러나왔지만 진위여부는 알 수 없는 상태로 사람들은 국가가 허락한 도박을 매주 한다. 늘 곁가지로 빠지는 게 주특기라 책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아무튼 베개 두 개를 머리에 괴고 책을 읽는다. 소설 같은 경우는 보통 어제 읽었던 내용과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에세이나 다른 책들은 아예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독서법에 대한 책을 읽어 나은 독서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 나름의 독서방법을 내가 체득하고 싶을 뿐이다. 독서도 일종의 취미이자 기호이기에 맞는 방법도 옳은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달에 5권 정도 책을 읽은 것 같다. 그중 2권은 1개의 소설이었다. 지난달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는 유독 그 소설의 내용만 떠오른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아마 소설은 독자 개개인에게 유일해서 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업무를 위해서 마케팅 관련 서적을 아침마다 부단히 읽었는데 퍽이나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자기 계발 서적들은 머리에 쌓이지 않고 잘 스쳐 지나가는 타입이다. 직업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가 일시적으로 감흥을 받다가도 나의 현실에서 나를 비춰보면 그렇게 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쉽게 좌절하게 되기도 해서인지 책에서 뭘 가르치려고 하면 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늘 그래 왔던 것 같다. 학교를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 누군가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느낌을 받을 때면 굉장히 기분이 불쾌했다. 직장 내 업무의 숙련도가 낮은 신입에게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세상은 배울 것투성이다. 나도 내가 뭐가 잘났다고 그러고 살았는지 가끔은 허무할 때가 있다. 곰곰이 나에 대해 생각해보면 난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만큼 고민의 깊이도 얕았으며 그래서 늘 원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일을 자주 그만두고 또 멈추었다. 아무리 좋은 차도 계속 달리지 않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좋은 차가 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일들의 반복이 나의 건강한 일상을 방해하였고 나는 긴 시간 먹고 놀면서 어느 것 하나 좋은 습관이 없는 체로 35살을 맞이했다. 어제 서울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에 교수들을 만나러 갔다. 나보다 10살 이상 어린 친구들이 코로나임에도 생기를 잃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나 싶어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문득 어떤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고. 지금도 충분히 젊고 할 수 있는 것은 많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내 나이 정도를 열심히 일할 나이지만 이직의 마지노선이 될 수도 있고, 결혼을 할 수도 있지만 못 갈 수도 있는 연령으로 보기도 한다. 바라건대 전자와 후자의 좋은 것만 쟁취하고 싶지만 그게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내가 나를 거울 없이 바라보기로 한다. 직업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작가들이 느끼는 업에서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깊이 있게 공감하게 된다. 일에는 그렇게 적정한 기쁨과 슬픔이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매일 일희일비하더라도 어떤 일을 업으로 생각하고 조금 더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읽을수록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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