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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4. 2022

타임머신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벌이라면 달게 받을 수도 있겠다 싶다.

10대와 20대는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빵집을 운영하시느라 늘 바쁘신 부모님 곁에서 자란 나는 집안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매일 나가서 뛰어놀았다. 특히 구기종목 운동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축구, 농구로 사계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에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보다 그 꿈 앞에 내가 먼저 와있었던 걸까? 나의 장래희망을 알게 된 엄마가 축구하는 학교로 전학 갈까?라는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No라고 이야기했다. 부모님의 신장은 큰 편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늘 반에서 키 순서로 1, 2위를 다툴 정도로 작은 아이였다. 또한 또래에 비해 달리기가 빠른 편도 아니었다. 운동회를 할 때면 같은 조에서도 1등을 한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냉정하게 축구선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왜 나의 가능성을 낮게 책정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 의기소침한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장래희망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생각을 부모님과 잘 공유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늘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부모님과 내 미래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나는 커가면서 집안 노동력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나가고 있을 뿐 미래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한 고민 같은 건 저 먼 미래에 생각하기로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빛의 속도로 12살의 내가 세 곱절의 나이에 와있게 된 것이다. 그때 내가 축구선수가 되기로 마음먹고 운동을 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했던 사촌동생을 떠올리면 대충 그림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니 지레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결괏값이 중요하다. 내가 선수가 되었을까? 그냥 운동 잘하는 일반인이 되었을까? 이건 가정도 하기 어렵고 예측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내가 갑자기 왜 이야기를 하냐면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서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최초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을 했다면 수많은 것들이 바뀌어있을 것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지금도 운동장을 뛰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그게 더 나에게 일상적이고 행복한 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성격이나 말, 행동도 그에 따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변해있지 않았을까? 그 이후에도 나에게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그게 좋은 기회였을 수도 있고 안 좋은 기회였을 수도 있다. 나는 다행히 안 좋은 선택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선택을 한 것도 아니었다. 직장을 계속 옮겨다니기도 했고 별다른 이유 없이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다. 그 와중에 노동법을 위반한 사업주에게 내가 문제를 제기하여 노동청에 신고 후 사업주와 대면조사를 받기도 했다.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이 제법 나에게는 많이 일어났다. 어떤 회사에서는 금요일 오후에 불러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같이 여행 갔다 온 연인이 여행에 돌아오는 길에 헤어지자고 했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당연히 사장은 해외로 출장을 핑계 삼아 자리를 피했고 그 고통스러운 말은 인사팀장에게 듣게 되었다. 중요한 건 자세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장이 싫어서 내가 나가야 한다는 것. 문득 내가 인터넷에 구매한 물건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인터넷에서 구매한 물건은 단순변심으로 환불이 안되잖아. 나에게 몇 달치 월급을 주었기에 그들에게 환불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또 저항해야 할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노동청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수습기간에는 사업주가 임의로 해고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이게 뭔 개소리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하늘에서 누군가 나에게 외친다. 그건 네가 21세기 대한민국을 모르고 하는 소리고. 나보다 더 뭣 같은 상황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온 사람들이 많다. 그 분노가 넘실대는 한강을 나는 오늘도 지나쳐 회사에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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