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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5. 2022

오전에 만났으니, 오후에 사귀자!

마음이 급할 때 행동은 더 조급해진다.

 나는 좀 많이 조급한 편이다. 



 이런 성격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자주 생각하고 왜 그런가 고민해보지만 잘은 모르겠다. 인간이 살아온 시간을 다 기억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조급한 것은 일종의 집착과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독 나는 어릴 때부터 먹는 것에 조금 집착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몇 해 전에 육아와 함께 빵집 운영의 어려움을 느낀 부모님이 나를 친척집에 맡겼던 적이 있다. 나는 그때를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내가 몇 살이었는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뿐 나의 최초의 기억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고향인 충남 보령과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부산에서 1년간 살았던 적이 있다. 부산에는 이모가 살고 있었는데 배를 모는 선장이었던 이모부는 부재중이었고 그 자리를 내가 대신했다. 사실 그것도 아닌 것이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사촌 형, 누나가 한 명씩 있었으니 거기에 나를 더해 케어하는 것이 이모에게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은 부끄럽게 생각하는 어린 시절의 최초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거의 매일 바지에 오줌을 쌌다. 나이가 어려서 그럴 수도 있는데 매일 아침마다 이불이 젖어있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밥상 옆에서 이모가 끓인 맛있는 김치찌개나 고소한 계란 프라이 냄새를 애써 외면하며 여전히 나는 자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이모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모는 자식들을 학교 보내고 키라고 불리는 바구니 같은 걸 주고 나에게 옆집에 가서 소금을 받아오라고 시켰다. 지금의 10대가 들으면 20세기 초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실제로 바구니 같은 걸 들고 동네 슈퍼나 이모네 집 주변에 소금을 얻으러 다니곤 했다. 그게 한 두 번은 아닌 게 분명한 듯하다. 내가 명확히 기억하기엔 아주 오래된 기억인데 명확히 기억하니까 말이다. 그때 수치스럽다는 감정을 몰랐겠지만 부끄러웠다 정도로 말하면 좋을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동네에 유일하게 아는 것 이모였지만 아주 어렸던 내가 이모를 뭘 그리 잘 알았을까? 모든 게 낯설고 무서웠지만 나는 시골의 충분한 육아시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저 멀리 남쪽 끝에 와있었던 거다. 내가 부산에서만 길러진 것은 아니었다. 천안에 큰아버지댁에도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거기서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명확히 기억을 못 하지만 사촌누나들이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한 아주 가끔 이야기 해준 적이 있다. 욕을 잘하는 아이 었다고... 


 그런데 이야기를 하고 보니 이게 집착? 식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거다. 먹는 것만큼은 누구나 편하게 먹고 싶을 거다. 남의 집에 살면서 내가 원할 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한다는 걸 어린 시절부터 느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유독 나는 사람들 많은 곳에서 혼자 몰래 먹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면 나는 수업 중에 몰래 군것질하는 것을 좋아했다. 30명 남짓한 교실의 아이들 중에서 입에 무언갈 넣고 오물조물하는 게 선생님 눈에는 안 보일 리 없지만 나에겐 그게 소소한 행복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전제가 있다면 내 것을 누군가에 주고 싶지 않다는 것. 이기주의적이기도 한 것인데 내 먹을 것을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이 행동(?)은 멈출 수 없었고 냄새를 잘 맡는 친구들은 수업하는 동안 나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성인이 된 후 나는 완전히 독립했다. 서울로 대학은 못 갔지만 대전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했다. 이제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누구 눈치 안 보고 혼자 먹을 수 있는 완전한 상태가 된 것이다. 요즘 같이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평일, 주말을 보내고 있는 상태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나에게 너무 중요하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집착, 식탐을 버리고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햄버거, 피자, 치킨, 떡볶이 같은 음식을 충분히 시켜 내 배를 단단히 채우고 나서야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나는 여전히 집착과 식탐을 동시에 지우지 못하고 있다. 평생 따라다닐지도 모르지만 내 삶의 작은 흔적 같은 거라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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