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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5. 2022

헤이 카카오, 머리에 두통약 좀 넣어줘!

글이 주는 온전한 스트레스를 사랑하기로 한다.

아침에 글을 쓰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고를 고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요즘 내 생활을 자세히 살펴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책에 파묻혀 살고 있다. 10대와 20대는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10대에는 자습시간에 종종 공부하기 싫어서 읽었던 소설이 무엇인지 명확히 기억할 만큼 독서와 거리를 두고 살았던 듯하다. 그런데 시나 글을 쓰는 것에 꽤 흥미를 가졌던 것은 분명하다.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감정 기복이 극에 달하는 시기인 15살에, 나는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 글을 쓰고 싶다 혹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뭐든지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는 나였기에 띄엄띄엄 어딘가에 글을 남기고, 그 조각난 글들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헝클어진 퍼즐처럼 여기저기 숨어있을 것이다. 최근에 컴퓨터나 손으로 쓴 글들을 모아서 구글 드라이브에 몽땅 저장해놓았다. 그러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구글에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모든 글을 다 삭제한다고 해도 대용량 USB에 복사해 놓았기에 걱정은 덜 수 있을 것 같다. 


 브런치에 합격한 이후로 좋은 글을 올려야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뭐 대단한 작가가 된 양 고뇌에 빠진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을 쳐봤지만 결국엔 내가 가진 것 중에 하나가 올라갈 뿐이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은 하겠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글로 표현하려고 할 때, 나에게는 아주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 지적인 능력이 글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이란 결국 오랫동안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들을 경험하고 그걸 극복해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쓰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도 읽고 거기에 나오는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취사선택하여 내 글에 반영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볼까 한다. 출판사의 마케터로서 나는 우리 책이 읽으면 얼마나 좋을만한 책인지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의무라고 하면 좀 거창한 말이지만 월급의 다른 이름은 회사에서 개별적 의무를 이행한 대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여기저기 좋은 책이라고 추천하는 온라인의 광고에 가까운 시답지 않은 말들, 책의 띠지에 품앗이처럼 느껴지는 유명인들의 진부한 추천사 이런 것들이 나의 취향과 맞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나는 보통 남들이 좋다는 것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문장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다음 문장이 결정된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남이 터놓은 길은 죽어도 가지 않으려는 내가 진짜 내 길로 가보려는 시도는, 오로지 글쓰기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나라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경험했던 일에 대해 시간이 걸리고 수정하는 시간이 들더라도 내가 써야지만 그게 진짜 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일관성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전공과는 무관한 일들을 지금껏 계속해왔고 맞지 않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속된 곳을 떠나왔다. 어쩌면 그게 유일한 일관성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맞지 않다고 느끼면 여지없이 그곳을 떠나는 것. 나는 여행하듯 취업과 퇴사를 반복했다. 대부분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당하게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노동부에 신고하여 나를 해고한 사업주와 대면했을 때도 나는 당당하게 그에게 나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런 일들이 부질없이 느껴질 때도 있다. 세상이 바라는 인재가 되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남들이 싫어할만한 행동만 하느냐고 나를 나무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청개구리 같지만 나 같은 사람 혹은 나보다 더한 사람이 존재해야 우리는 다양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감정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오늘도 글을 써 내려간다. 몇 년 전에 나와 아직도 결별하지 못해 반갑기도 하고 여전히 세상이 바뀌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멈춰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한다. 감정의 변온동물로써 오늘도 나는 지구를 유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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