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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5. 2022

오늘은 샹송을 듣고 싶다.

어차피 한 치 앞도 모르니까

오늘은 회사의 편집자 2명과 인쇄소에 인쇄 감리를 갔다. 


 자신들이 편집한 책이 본격적으로 인쇄가 들어가기 전에 책의 표지나 글씨, 색깔 등 책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점심은 각자 먹고 1시 즈음 회사의 과장으로부터 전에 내가 소유했던 차량과 같은 차종의 키를 받았다. 운전석에 앉으니 지방을 휘젓고 돌아다니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내가 생각났다. 마포구에서 파주로 강변북로를 타고 달리기를 1시간 정도 지나 우리는 인쇄소에 도착했다. 전에 다녔던 회사 지하에서 났던 냄새보다 더 강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전 직장에 책을 인쇄하는 공장이 있었지만 그곳에 자주 가지 않았고 그래서 냄새가 그렇게 또렷이 기억나는 건 아닌데 하여튼 그것보다는 더 심한 냄새가 나는 건 맞았다. 주말 내내 날씨는 좋았으나 바람이 차가웠고 그게 월요일에도 이어졌다. 1시에 출발했지만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5시가 넘어 회사에 도착했다. 할 일은 태산이었지만 시침은 6이라는 숫자를 가리켰다. 시간이 지나서 못하게 되는 일도 있어야 내일의 할 일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 있으면 우리가 내일을 살 이유가 없어지니까.


 문득 이유 없이 샹송이 듣고 싶어졌다. 한 번도 찾아서 들어본 적 없었지만 부모님과 장거리로 어딘가를 이동하게 될 때 차 안에서 샹송 테이프를 들었던 게 기억이 난다. 돈 데이 보이 돈데 보이 ~ 이후의 가사는 기억이 안 나지만 꽤나 그 가수의 음성이 슬퍼 아주 가끔 내 입으로 그 부분만 흥얼거렸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스트리밍 앱에 샹송을 검색해본다. 들어본 적 있었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다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카를라 부르니의 노래로 넘어간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며칠 째 읽고 있는 책을 잡는다. 그러다가 가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스피커 곁으로 온다.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했을까? 25살의 내가 35살의 나를 어떻게 상상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샹송을 듣고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내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결혼과 행복한 가족을 꿈꿨을까? 그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의 불안감은 지금의 불안감과는 분명 달랐겠지만 안정감이 깔려있지 않은 것은 아마 같았을 것이다. 불안감에 무슨 안정감이 깔리느냐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인간은 불안하고, 동시에 안정적이다. 그런 상충되는 감정으로 아침과 저녁이 안 올 것 같은 하루를 견디어 낸다. 수없이 많은 책들이 찍혀 나오는 인쇄소에서 어떤 선명한 나의 자국을 찍어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40살이 되기 전에 종이에는 잉크를 먹이고 이름 세 글자를 채우리라 다짐해본다. 그럴 수 있는 소양과 능력을 가지려면 무던히도 고민하고 쓰고 지우고 기억해내고 토해내야 한다. 나에게 있었던 고통의 기억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풀어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겁이 나지는 않는다. 마치 툭 치면 매일 똑같은 성대모사를 하는 어느 개그맨처럼 몸이 오랫동안 기억한 감정들은 내가 원하는 형태의 글로 나오지 않을 뿐 시간만 충분히 허락한다면 백지를 검게 채울 것이리라 믿는다. 나는 너무나 기쁘게도 배우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하고 싶지 않다. 그게 지금의 나고 과거의 나고 미래의 나일 것이다.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이든 나는 따르지 않을 예정이다. 오로지 단 한 번의 삶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은 개체로서,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생존하는 수십억 명 중의 하나로서 특별하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내 글에 내가 감탄하는 순간 그것은 좋은 문장이 아닌 것이다. 그냥 느끼지 않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시키는 걸 받아 적어야 한다. 


 새로운 의자가 온다니 내 허리가 좀 더 나아지려나 싶다. 이 오래된 의자와도 이제 작별을 해야 한다. 너도 누군가로부터 내게 왔다가 다시 완전히 쓸모없음 판정을 받게 된다는 게 나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너나 나나 시간과 태어남의 차이일 뿐 우리의 쓸모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너를 보낸다. 의자여! 잘 가라. 지구에서 너의 임무를 다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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