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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3. 2022

마피아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8시를 기다리는 남자

 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피아 게임은 진행자의 이 멘트로 게임이 시작된다. 이 말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늘도 나에게 알람만이 아침의 시간을 알려준다. 아침 8시가 되었습니다. 오전 8시는 내게 최근 몇 주간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가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 사이에 있었거나 있을 법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주 사소한 것은 크게 만들고 큰 문제들은 가볍게 넘겨서 별 것 아닌 것으로도 만들어버린다. 그게 글이 줄 수 있는 마법이다. 나는 판타지 소설을 전혀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요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판타지 소설 중에 하나는 전 세계에서 3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국내 작가가 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소식을 듣게 되면 조그마한 희망을 갖게 된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 정도까지는 못하더라도 나도 글 쓰면서 하루 두 끼 정도는 먹고살면 좋겠다. 딱 이 정도? 


 어제 나는 회사가 요구했던 업무를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인즉슨 회사를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싫은 일을 남을 속여가면서 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회사에도 이득이 되지 않고 나에게는 더더욱 남는 것이 없는 일이다. 나는 단지 지속 가능한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 회사에 처음 왔을 때부터 새로운 일을 하기 전까지 나는 사무실에 상시 근로하는 노동자로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급작스레 영업을 나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고 급박한 상황에 휩쓸려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영업이 왜 하기 싫은지 묻는 질문에 나는 하기 싫은 것에 대해 이유가 필요한지에 대해 단호히 대답하지는 못했다. 사장이 적절하고 적당한 답변을 기대하고 묻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필요한 존재로서 기능에 문제없이 성실한 기계가 되어주기를 바랐지만 내가 갑작스레 제동을 걸었을 뿐이다. 기계를 돌리는 사람은 멈춰버린 기계에 쉴 새 없이 구리스를 발라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세세한 부품 하나하나가 문제가 생긴다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될 수 없고 기계 또한 인간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인권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어제의 발언을 통해 회사가 바라는 인재와는 멀어졌고 나는 일련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새로운 어딘가에 적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건 지금껏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나에게 운명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끊임없이 나를 비난하고 힐난하는 순간들이 모여서 내 낮은 자존감을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자신감은 사라졌으며 삶의 의욕까지 상당 부분 꺾여서 살아왔다. 나의 능력과 재능을 인정해줄 곳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멍청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은 제한적이고 그 외의 것들을 요구하는 사회에 맞춰야 되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퇴사와 해고가 반복되는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견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견딘 것일까? 즐긴 것 일까?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나는 세상을 비난했다. 대한민국이 이래서 문제라고. 나라가 하나 바뀐 것이 없다고. 세상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런 말이라니. 주변의 가까운 사람 몇 명이나 나의 이런 볼멘소리를 들어줄 뿐 세상은 그런 소리를 한데 모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로 규정지어 소각 처리한다. 태워서 없애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으니까. 난 몇 마디 말도 못 하고 뜨거운 용광로로 빨려 들어간다. 내가 했던 말이나 글은 그렇게 녹아 없어지거나 침전하는 걸까? 내가 최악으로 예상했던 시나리오는 이번 주로 회사생활이 정리되는 것이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나는 수용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한 동안 아침 8시에 글을 쓸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이게 마지막은 아니겠지만 처음과 마지막은 늘 함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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