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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2. 2022

소개팅 보고서

코로X 때문이 아니었었지. 하하. 허허.

한여름이라 그런지 에어컨이 빵빵한 방안에서도 찬물로 씻고 나왔는데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 백수 주제에 열심히 사는 어느 여자를 만났다. 지금 내 상황에서 여자를 만나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1년 가까이 놀아서 돈도 없거니와 에너지란 에너지는 방 안에서 썼다가 소멸되니 밖에서는 어떤 힘을 쓸 에너지가 없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평일 낮이었고 바로 전화를 받으면 의심을 받을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한 번은 받지 않았다. 그런데 또 전화가 울리는 것이다. 조금 불안한 징조인 것 같아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그 사이 낯선 여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를 적은 문자가 띵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전화에 꽂혔다. 


“아들 엄마가 아는 사람 통해서 소개팅 하나 해줄게 문자로 연락처 남겨놨으니 누구 엄마 소개로 연락했다고 꼭 해”  “알겠어요 어머니” 


나는 좋으면서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말끝을 흐렸다. 이전에 엄마가 소개팅을 시켜주려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자주 가는 마사지샵에 마사지를 받으러 오는 어머님들이 자신의 딸과 소개해줄 사람 없는지 어머니에게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연락처를 받아다가 나한테 주면 내가 연락해서 만나보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거기서 말이 끊기고 말았다. 후에 물어보니 흐지부지 된 것이다. 그 이후에 또 한 번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서울에서 간호사를 하고 있는 38살 여자가 있는데 소개 한 번 받아볼래?" 


"엄마 내가 33살인데 5살 많은 여자 만나도 상관없어?"


 라고 하니까 엄마는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능력 좋으면 되지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래 뭐 나이 차이가 좀 있기는 하지만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소개팅 얘기를 하고 좀처럼 여자 연락처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길래 가족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 소개팅 시켜준다더니 왜 여자 연락처를 안 알려줘?"


 "그러게 네가 어려서 연락처를 안주는 건가 모르겠네"


나는 엄마가 적극적으로 연결시켜주려고 뭔가를 하고 있는 줄 알고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흐지부지 되었다. 거기에 누나는 왜 5살이나 많은 여자를 동생에게 소개해주냐며 엄마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참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이제 기대를 하지도 않고 바라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처를 보낸 것이다. 일단 번호를 저장했다. 그래야 사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랑 동갑이라는데 카톡 프사의 사진은 마르고 예뻤다. 기본적으로 카톡 프사를 자신의 얼굴로 해놓는다는 것은 얼굴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보통 그런 것 같다. 내 개인적인 통계에 의하면 소개팅했던 여자들 중에 대부분 카톡 프사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외모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내면을 본다고 하지만 소개팅에서 볼 수 있는 명확한 건 얼굴, 키, 몸매뿐이다. 나머지는 대화를 통해서 혹은 주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카톡으로 보내는 것이 조금 그런 것 같아서 안녕하세요 누구 엄마의 소개로 연락드리는 XXX입니다.라고 금요일 오후 7시 정도에 문자를 보냈다. 같은 계열의 스마트폰을 쓴다는 것을 메시지를 통해 확인했다. 그날 내내 문자나 카톡은 울리지 않았다. 나는 조금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소개를 시켜주든 부모가 소개를 시켜주든 꽤나 긴 시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좀 기분이 상한 건 있었다. 그러나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토요일 11시쯤 안녕하세요 XXX입니다.라고 문자가 왔다. 지금 확인했을 수도 있다. 그 후에 나는 카톡으로 다시 인사를 건넸고 언제 만나면 좋을지 이야기했다. 어디 사냐고 물으니 수원이라고 답한다. 누나가 수원에 살아서 수원은 가끔 갔었는데 소개팅하러 또 수원에 가야 한다니... 수원에서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안 좋았던 경험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여자 얼굴도 모른 채 소개팅에 갔고 서로 맘에 안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1세기에서 얼굴도 모르고 소개팅에 간다는 것은 어쩌면 냉정하게 불필요한 소모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수없이 많은 소개팅을 해왔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소개팅에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발전과 카메라의 발전은 그 궤를 같이했고 이제는 소개팅에서 얼굴을 보지 않고 간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하여튼 수원에서의 소개팅은 왠지 장소적 불쾌감이 있었다. 연락이 된 후 다음 주 토요일에 수원에서 만나기로 합의한 후 장소는 찾아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나는 수요일쯤이 적당해 보여서 수요일에 수원역사 안에 있는 음식점 리스트 몇 개를 추려서 보냈다. 여자가 고른 음식점을 검색해서 나는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블로그를 통해 찾아보았다. 파스타, 스테이크 등 잡다한 것 다 파는 곳이어서 먼저 가서 직원에게 물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작년 4월 28일 이후로 처음 하는 소개팅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가슴이 두근거렸다. 들키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편안해 보이기도 싫은 말로 설명 안 해도 소개팅의 그 기분 있지 않은가. 생각보다 많은 사진이 있어 사진을 보았다. 조카랑 찍은 사진, 친구랑 찍은 사진 등 얼굴이 어떨지 성격은 어떨지 말은 잘 통할지 등 만나면 모든 게 풀릴 걱정을 조금씩 혼자서 만들어가고 있던 차에 토요일이 왔다. 누나는 재차 강조했다. 너는 너무 말이 많으니 주로 질문을 던져라 질문을 던져라 주문을 외웠다. 

 수원역에 도착하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배가 살짝 아팠다. 아침에 병원에서 물을 4컵 이상 마시고 오래간만에 좀 걸었더니 장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나? 비의학적인 내 소견이다. 나는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고 많이 걸으면 쾌변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렇게 믿으니 주로 변비에 걸린 것 같을 때는 그런 방법을 자주 써왔다. 하지만 지금은 화장실 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애매했다. 블로그에는 식당이 점심시간에 유독 붐빈다고 나와 있었고 오늘은 특히나 토요일 아닌가 아마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플랜 B를 생각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 식당 안에 들어가니 다행히 몇 개의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식당 안이 너무 시끄러웠다. 어디에 앉아야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구석을 찾았다. 다행히 2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는 12시에 보기로 했고 나는 40분 정도에 식당에 들어왔다. 메뉴판을 쳐다보다가 여자가 들어왔을 때 물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냥 물로 목을 축이며 기다리기로 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그 여자가 있을까? 나는 여자가 오기 전까지 내내 숨을 죽이면서 시선을 여기저기 돌렸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아주머니 4명이 떠드는 소리는 멈춘 듯했고 내 또래의 여성들이 들어올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성을 만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특히나 서로 다른 세상을 살다가 만나는 소개팅은 더더욱 설레는 일이다. 아마 내가 계속 실패하면서도 거절하지 않고 받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12시가 조금 넘어 여자가 들어왔다. 서로 사진과 달라서 흠칫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 자연스레 앉았다. 먼저 메뉴판을 건네고 혹시 여기에 와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여자는 한 번 와본 적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어떤 것을 먹으면 좋을지 물어본다. 나는 소개팅에서 대부분의 음식을 남기는 것을 보았기에 세트메뉴보다 단품을 시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왔다. 돈이 아까워서가 진짜 아니다. 얼마 먹지도 못하고 돈을 버릴 바에는 각자 먹고 싶은 단품의 식사를 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세트 메뉴가 좋을지 단품으로 먹을지 물어봤다. 그러면서 단품으로 어떤 파스타가 여기서 맛있다더라 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러나 딱 봐도 많아 보이는 세트메뉴를 먹자고 한다. 나는 상관없다. 거기에 들어가는 파스타를 내가 추천한 파스타로만 바꿨다. 식당 안에 사람은 가득 차서 음식이 나오는데 20분 정도가 걸린다는 직원의 안내가 뒤따른다. 다행이다. 그 사이에 어색함을 조금 없앨 수 있을 것 같다. 음식이 너무 빨리 나오면 먹으면서 이야기를 해야 돼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여자는 88년 2월생 그러니까 학교를 일찍 갔으면 나랑 같은 학년이다. 그런데 한글을 못해서 어머니가 다음 해에 학교를 입학시켰다고 한다. 그러니 학번은 나보다 하나 아래인 07학번이라고 자기 입으로 이야기한다. 32살이란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게 갑자기 서글퍼졌다. 꼭 집어서 몇 년 몇 월 생이며 몇 학번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여자의 표정에서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우린 동향이다. 보령시라는 지자체에서 살았지만 나는 웅천읍에서 자랐고 여자는 시내에서 자랐다. 남녀공학의 중학교를 나온 후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몇몇의 여자 친구들도 시내에 있는 여고로 진학했다. 그래서 나는 만나기 전에 같은 나이니까 같은 학년을 다닌 것으로 알고 여고로 간 동네 친구들 얘기를 꺼내면서 어색함을 풀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같은 학년을 다니지 않았다니... 게다가 우리 누나와 여자의 언니가 같은 나이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게 대화를 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누나의 조언대로 나는 회사는 어딘지 무슨 일을 하는지 주말에 뭘 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등 온갖 질문들을 쏟아내면서 그에 더해 나의 답변도 놓치지 않았다. 질문과 답변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누군지 알고 있을까 싶었다. 나는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저번 주 금요일 저녁에 보낸 문자를 왜 다음날 아침에 보냈는지 말이다. 기분이 나빠서 물어본 게 아니고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 물음에는 사실 내가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과는 만나기 어렵다는 다른 물음이 숨어있었다. 여자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자는 말한다. 자신의 업무 특성상 문자와 카톡으로 업무처리를 많이 한다. 특히나 문자는 주로 컴플레인 등 외부인과의 업무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많아서 평일 업무시간이 지나면 잘 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나름 여자는 명확한 답변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나중에 누나는 왜 그런 질문을 했냐고 매너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건 매너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소개팅에서 한 번의 만남 이상을 이어간다는 것은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다는 신호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상대가 맘에 들어야 성사되겠지만 그전에 나도 맘에 들어야 한다. 난 그게 의도적인 것이었는지 단지 그게 궁금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오버한 것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 질문이 이후의 관계에 영향을 줄만한 질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식사는 내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나도 소개팅에서는 이상하게 음식이 많이 안 들어가는 편이다. 그 여자도 이것저것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2인 식탁에는 다 식은 파스타, 딱딱해진 돈가스가 있었고 서로에게 각자 주어진 밥 한 공기는 절반도 채 먹지도 못한 채 식탁 위에서 다 식어버렸다. 나는 그즈음 커피 한 잔 하러 가자며 일어나자고 했다. 당연히 내가 계산하려 부산히 움직이는 식당 안 직원들을 부르는 찰나에 여직원 한 명이 앞쪽에 카운터가 있다며 알려주었다. 여자가 식당밖에 나가 있는 줄 알고 나는 계산하러 가고 있는데 여자가 나에게 와 자신이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어 이건 아닌데... 일단 기분이 좀 상했다. 소개팅에서 여자가 밥을 산다는 게 뭐 대단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산다고 말을 했는데 여자가 계산을 한 것이다. 여자가 혹시 내가 계산하기 싫어서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여자에게 이야기한다. 


"이건 매너가 아닙니다." 그러니 여자가 대답한다. 


"수원까지 오셨는데 제가 살 수도 있지요 커피를 사시면 되잖아요."


나는 멋쩍은 듯 웃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우리는 실내에서 실외로 그리고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 7월 말의 장마가 지난 여름날은 뜨거웠다. 그 잠깐을 나갔다가 들어가는 시간도 상당히 더웠다. 적당한 카페를 찾기 위해 몰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카페에 사람들은 넘쳐났고 당연히 자리가 있는 카페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전에 소개팅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수원에서 얼굴도 모르고 소개팅을 했을 때 왔던 카페에 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난 자연스럽게 누나와 온 적이 있다는 쓸데없는 말로 카페를 찾아 헤매게 한 미안함을 애써 말로 지워보려 했다. 의자는 생각보다 불편했다. 차가운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자리를 비우면 왠지 분위기가 깨질까 싶어 화장실이 가고 싶었는데도 참았다. 곧 자리를 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서로의 부모, 형제, 친구 등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 갔다. 곧 각자에게 휘발될 가능성이 높은 정보처럼 보였다. 여자는 본인이 시킨 아이스 카페라테를 다 마시지는 못했다. 그리고 먼저 화장실에 갔다가 마무리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순간 나도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여자를 먼저 화장실에 보내고 우리가 마셨던 잔을 카페 직원에게 주고 나도 화장실로 향했다. 꽤나 오랜 시간을 참아서 그런지 오래 일을 보았다. 손을 씻고 내 옷매무새를 만지고 화장실을 나오는 순간 여자도 타이밍 좋게 나왔다. 여자와 나는 다시 건물과 건물 사이의 실외로 향했다. 다음을 기약하는 말을 서로 하지 않았지만 대화다운 대화는 계속 오고 가고 있었다. 식사 중에 누나가 수원에 산다는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여자는 내게 묻는다. 혹시 누나를 보고 갈 생각이냐고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일단 전화를 한 번 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순간 생각했다. 여자가 차를 타고 왔다는 말을 들은 후여서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주려고 생각하나? 난 참 이상한 생각을 잘하는 것 같다. 여자는 내가 길을 모를까 봐 수원역 가는 것을 알려주려고 나온 것이라 말한다. 나는 웃으며 여기는 한국이고 내가 모르면 물어보면서 가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실내와 실내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 횡단보도 앞에서 소개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여자가 말한다.


오늘 즐거웠다고... 


나도 대답한다. 


나도 즐거웠다고... 


 즐거움이 다음의 만남을 동반하지 않고 그것이 꼭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지만 여자의 말의 절반을 부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한다. 우리 또 만날 수 있지요? 여자는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 대답은 하지 않는다. 내가 너무 서둘렀나? 여자가 빨리 헤어지려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들어가세요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자다가 깬 눈치다. 맹장수술을 하고 병원에 있는 매형을 간호하고 있는 누나가 병원에 와서 저녁이나 먹고 가라고 한다. 근데 기분이 영 아니다. 누나가 분명히 내 소개팅 내용을 듣고 이래저래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간다고 전화를 끊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내내 더위가 올라왔다. 누구와 통화를 간절히 하고 싶어 졌다. 대학 선배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치킨집 사장을 하고 있는 전 회사 선배에게 전화를 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소개팅 얘기를 꺼낸다. 이래저래 해서 만나고 이제 집에 가려고 한다. 그렇게 잘 된 거 같지는 않다. 나의 소개팅이 궁금한 사람과 통화를 했어야 했다. 통화 중에 다행히 지하철이 열리고 밖의 날씨 때문인지 에어컨이 빵빵했다. 지하철에 사람들은 많았고 시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통화를 계속했다. 앉을자리도 없을 때는 구석에 가서 통화를 하는 것이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누나는 그것을 아주 극혐 하는 행동 중에 하나라고 강조하며 나에게 그런 매너 없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강조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누구라도 나에게 있었던 일의 일부를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풀리지 않았기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집에 와서 나는 여자에게 연락한다. 집에 잘 들어갔어요? 숫자 1은 없어지지 않는다. 누나에게 카톡이 왔다. 아주 상세히 여자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질문을 왜 했냐며 비난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여자가 계산했다는 것은 네가 정말 별로여서 일수도 있다고 한다. 아무렇지 않게 동생을 요샛말로 팩트 폭행을 가한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매너에 답장이 없는 여자의 연락을 기다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번호도 지우고 카톡도 지우란다. 누나의 말이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소개팅이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집에 잘 들어갔냐는 연락에 답장도 없는 것이 매너인지 생각한다. 누나는 그 정도로 네가 별로였다고 한다. 원래 가족을 이렇게 아프게 해도 되는가 싶다. 사실 오늘 하루만 지나면 소개팅에서 거절당한 것은 나에게 별 것 아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그중에 누나는 늘 쓴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기에 그것도 받아 들어야 한다. 어깨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근데 내일 아침에 답장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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