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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1. 2022

메모와 낙서 사이♪

EP. 1 야구방망이가 이 지긋지긋한 문제의 유일한 해결사?!

우리는 똑같은 육체노동자다. 하얀색 셔츠를 입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와 키보드랑 씨름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육체노동자다. 여기서 우리에 들고 싶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구분 짓기가 자연스럽게 차별을 만들었다. 부의 대물림만큼이나 직업의 대물림이 이어지는 시대에서 위험한 산업현장에는 나의 아버지 혹은 우리의 자식이 가있으면 안 된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우리는 매일 노동현장의 비극을 가짜 뉴스처럼 접하게 된다. 왜 세계 1등을 자랑하는 기업의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수 십 명이 사망을 했는지 그들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고통받으면서 회사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쳤는지 우리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매일 그런 뉴스들이 판을 친다. 오늘도 길가에 주차하고 운전석에서 쓰러져 있던 동료를 발견하고 병원에 옮겨진 택배노동자는 이틀 만에 사망했다. 회사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을 소화하게끔 시키면서 산업재해는 신청하지 못하게 노동자를 압박했다. 그걸 지시, 강요한 사람은 법 위에 군림해도 상관없는 사람인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하는 사과는 받고 싶은 사람도 들어줄 사람도 없다. 그런 뉴스에 욕이나 해대는 나를 보면서 네가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한 게 또 뭐가 있느냐며 나는 나를 향해서 삿대질을 해댄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반복되는 삶이다. 돈만 있으면 누가 힘들게 일을 하고 살겠는가 돈이 있어도 노동은 어쩌면 인간을 살게 하는 최소한의 요건일 수도 있다. 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을 조장하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것마저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욕할 자격이 있는 건지 나는 내게 되묻지 못한다. 어쩌면 뉴스나 권리를 찾기 위해 청와대, 국회 앞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편이 어쩌면 나은 방법일 수 있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거꾸로 조선, 그것도 지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기성세대는 요즘애들이라며 싸잡아 비난한다. 끈기가 없다, 노력이 부족하다, 예의가 없다 등등 법보다 관계가 우선이었던 기성세대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사 지르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노동환경의 개선을 위해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희생했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나? 결국에는 직장에서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하는 기업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나아진 게 없이 살아가게 만든 건 바로 당신들 때문이다. 컴퓨터도 아니고 몇 86세대로 규정지어진 당신들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다던 당신들이 민주주의의 달콤한 열매만 얻어가고 그 남겨진 씨앗들은 제대로 기름진 땅에 심어 놓지를 못한 것이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모두가 기득권은 아니다. 젊은 시절 고생해서 그게 그때는 불법이 아니었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엄연히 불법에 가깝게 많은 부를 축적한 당신이 대한민국의 허리여서 지금은 뛸 수 조차 없는 당신이 대한민국의 코어를 망쳐놨다. 그래서 너는 몇 살인데 왜 남 탓만 하고 있냐는 말에 나는 당신들이 깔아놓은 식탁 위에는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 굶다 보니 아무 힘도 못쓰고 있노라고 대답할 수 있다. 가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TV에 나와 지금의 세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장면을 볼 때가 있다. 이게 누구 개인의 문제일 수는 없다. 강압적이고 폭압적인 군사정권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총, 칼이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강에 뛰어들고 가족끼리 세상과 작별한다. 사회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노력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노오력으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조롱하듯 이야기했던 건 성장하던 대한민국과 멈춰버린 대한민국의 간극을 서로 이해하지 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정말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건지 오늘은 분명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건강하라는 인사는 사치가 되었고 제발 살아있기만을 당부한다.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는 폭력성을 억누르고 언젠가 수명을 다하고 부러질 야구방망이를 어루만진다. A4 한 장 정도를 채워놓고 한 참을 고민했다. 대안 없는 분노가 고질적인 병폐보다 공동체를 와해시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우리의 시민사회는 역사의 제일 앞에 서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지금껏 모두를 끌어왔기에 그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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