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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강 Mar 22. 2022

어쩌면 사소한,

어느 날, 나는 이미 작가였다.

부모님께 드디어 이직한 것을 말했다. 2018년 6월 15일 퇴사 이후 3년 하고도 9개월이 지나서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2월 말 즈음까지 회사를 다녔고 회사에 더 이상 비전이 없어서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부모님은 나의 의견을 늘 존중해왔다. 존중해왔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일에 매몰되어 신경 쓰기 어려웠다는 말이 오히려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동안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아왔던 나의 감정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음을 느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고 살면서 내 마음도 그 껍질을 쉽게 벗어버리지 못한 듯했다. 가벼운 침묵이 흘렀지만 이직한 회사에서 만든 책이 마침 아버지 서재에 꽂혀있었다. 유명한 미대 교수의 시리즈로 나온 책이었고 아버지는 그 시리즈를 전부 가지고 있었다. 우리 회사의 제일 베스트셀러였고 내가 회사를 다닌 지 한 달 조금 넘었지만 지금까지 20만 부 정도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음 주 평일에는 회사에서 밀고 있는 신간의 지면 광고가 나올 예정이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구독해온 신문의 지면에 아들이 다니는 회사의 책이 광고에 실릴 것이라는 말에 약간 반색하신 듯 한 얼굴을 하신다. 모처럼 누나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가족 모임에서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음 주면 아버지의 66번째 생신이고 나도 셀 수 없이 옮겨 다니다가 정착한 그러나 여전히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머릿속으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나는 아버지 옆에 정신없이 쌓여있는 책들처럼 문장의 종결어미가 모호해졌다. 더 나은 곳으로 간 것이라 여기고 전에 다닌 회사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데도 썩 공감을 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보니 진실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고 만다. 옆에 엄마는 듣고만 있다가 연봉은 오른 상태로 간 거냐고 묻는다. 


사실 얼마 오르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동안 논거에 비하면 연봉은 오른 거나 다름없다. 회사가 나의 메뚜기 같은 경력에서 그나마 희망을 본 것은 내가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일했다는 경력 때문일 것이다. 그 경력이 긴 공백을 채울 만큼 나와 경쟁할만한 인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단한 인재가 아니고 수없이 많은 면접에서 내가 누군지는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면접에서 자기소개를 절대 준비해 가지 않는다. 나는 준비하면 떠는 스타일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1분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몇 100대 1의 경쟁률이라면 모를까 낮은 확률의 경쟁에서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짜깁기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결국 괜찮은 결론에 이르지 못한 글의 결말이다. 입, 퇴사와 면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가다 보니 나는 또 좋은 풍경 앞에서 바닥만 보고 글을 쓴 셈이다. 아직도 이전에 써놨던 일기 형식의 글들이 거대한 용량을 가진 저장장치에 잠들어있다. 이야기하기 부끄러운 것들이 훨씬 더 많지만 쓰고 지우 고를 반복하다 보니 내가 조금은 더 선명해지는 듯하다. 우리 삶이 긁는 복권처럼 결과를 빨리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변천사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글에서는 내가 작가 이면서 편집자이기도 하고 사장이기도 하다. 누구에게 보일 운명을 타고났다면 이 글 또한 세상에 뿌려질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3월 한낮에 이제 더는 드릴 소리가 나지 않는 방 안에서 글을 쓴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생각 모두 퇴근하고 생각하고 말하면 좋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에 평범하게 살지는 않기로 다짐한다. 매번 좋은 것은 다음으로 미루면서 사는 것은 포기하려 한다. 김치찌개의 고기를 다음 끼니를 위해 남기거나 치킨의 다리와 날개 1개씩을 다음 끼니를 위해 남기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오늘 당신의 수저에는 빨간 국물보다 고기가 넘쳐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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