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강 시집 - 첫 번째 ,
아버지의 검은 머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옛 사진은 안 본 지 오래
귀 옆에 조금 남은 머리가
마치 수명(살아온 세월의 깊이) 같아 좋다
남은 시간이 길다고 좋은 건 아니지 싶다
해뜨기 전 가루가 반죽이 되고
시간이 나를 만들었다
인간이 흙으로 빚어졌다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나는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쓴
한 번도 검은 머리였던 적 없는
아버지의 흰머리가 나였다
빽빽한 그 머리카락 사이로
나는 자식이었을까 고통이었을까
나는 내게 자식도 못되고 고통뿐이라
입에서 아버지 찾는 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