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의 출발점
겸손,
그건 참 어려운 과제다.
말을 아끼면 표현력이 부족해 보이고,
성공의 한 자락을 이야기하면 자랑으로 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망설인다.
‘이 말을 해도 괜찮을까, 이 웃음은 교만해 보이지 않을까.’
겸손은 단지 말과 몸짓의 문제라 여겼지만,
그건 빙산의 수면 위에 불과하다.
진짜 겸손은,
내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내가 나에게 교만할 때,
세상은 쉽게 왜곡된다.
“이 정도는 괜찮잖아.”
“다들 이렇게 하잖아.”
그 순간, 잘못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합리화라는 이름의 미로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배임’은 단지 편의가 되고,
뇌물’은 작은 호의로 둔갑한다.
하지만 그건 결국,
겸손을 잃어버린 마음이 만든 함정이다.
겸손을 잃으면 또 다른 위험이 찾아온다.
자신의 생각과 이념을
누군가에게 ‘고급스럽게’ 포장해 주입시키려는 욕망.
세상은 그걸 알아차린다.
너의 말속에 숨은 의도,
너의 선물에 담긴 계산,
너의 영화, 영상, 책 권유에 깃든 확신의 향기까지도.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른바 ‘시대적 가스라이팅’은
겸손하지 못한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공존하는 무대다.
누구나 각자의 상처와 기쁨을 안고 살아가며,
그 다양함 속에 조화가 깃든다.
그런데 내가 그 무대를 지배하려 한다면,
그건 겸손을 잃은 교만의 시작이다.
존중은 곧 겸손이다.
내 이야기가 옳다 하여 남의 삶을 덮을 수는 없다.
겸손하지 못하면 우리는 쉽게 취한다.
술에, 자랑에,
그리고 스스로의 우월감에.
그때의 말은 비수가 되고,
그때의 웃음은 타인을 멀어지게 한다.
나 역시 그 수많은 실수를 반복하며
조용히 반성의 시간을 배운다.
어쩌면 겸손이란
빛나는 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늘 속에서도 반짝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마음일 것이다.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는 연습이 아니라
타인을 높이는 사랑의 방식이다.
혹시, 당신 곁에서
조용히 멀어져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가 변한 게 아니라
내가 겸손을 잃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 마음을 내려놓고
세상의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겸손은 언제나,
늦지 않게 돌아오는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