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가 저문 자리에서
잃어버릴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잃을 것이 없는 이와 마주할 때의 바람결을 더 깊게 느끼게 된다
친절은 어느새 목을 간질이는 감기가 되고
배려는 몸속을 흔드는 독감이 되며
애정은 입술 끝에 스며든 독사과처럼
서서히 삶의 결을 파고든다
우리는 결국 밀림 같은 세상에 산다
빛과 어둠이 겹겹이 얽힌 숲에서
모두가 사냥꾼이고
모두가 사냥감이며
스스로가 함정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재물이 미끼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결이
덫이 된다
대의를 말하던 시대는 서서히 퇴색하고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생을 지키려는
은밀한 숨결뿐이다
결국 자신을 지키는 일은
혼자 선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에서 출발한다
홀로 선 채로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그 속에서 스쳐 지나갈 인연들에게
소소한 온기 한 점 나눌 수 있다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인연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도
너무 깊이 매달리지도 않은 채
단단히 서 있는 둘의 그림자
그 평온한 거리감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잃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숨 쉴 수 있음을
늦은 깨달음처럼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