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가 인연을 정리하는 기준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by 조운

인연을 서서히 정리해 간다는 말은
마치 오래된 서랍을 하나씩 비우는 일과도 같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지만
손을 넣어 뒤쪽까지 쓸어내려 보면
먼지가 되고 모래가 된 감정들이
조용히 쌓여 있는 곳


사실 대부분의 갈등은
상대가 아닌 나에게서 시작된다

아무 문제없는 사람들이
내게는 버티기 어려운 공간을 만들고
그 평범함이 오히려 고통이 되어
내 삶의 결을 흔들 때가 있다




먼저 떠나보내는 인연은

대중의 환호에 쉽게 흔들리고
유행의 파도에 자신을 싣는 사람들이었다
가치보다 기준을 앞세우고
그 기준에 의미를 끼워 맞추는 방식은
결국 사회에도 사람에게도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필요할 때만 다가오는 인연


사람 사이란 원래 필요할 때 찾는 것이 맞다고
수십 년 현장에서 살아온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필요함마저 온전히 떠안고 살고 싶지 않다
나도 나를 지켜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보내는 이들은

의사를 묻지 않는 사람들이다

성공과 리더십을 등에 업었지만
실은 타인의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 이들
밥 한 그릇을 먹더라도
이미 정해둔 메뉴를 통보하며
질문을 생략하는 방식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게 틀린 건 아니다


어쩌면 그 방식도 하나의 효율이고
세상의 속도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한 번 더 묻는 사람이 좋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려도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살피는 마음
함께 나누는 식사 한 끼에도
조용히 서로의 온도를 확인하는
그 따뜻한 방식이 좋다




인연을 정리하는 일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머물고 싶은 자리로
조용히 귀향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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