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절정
은퇴한지 어느덧 일 년
한 달 두 번의 저녁 약속이면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전화번호 등록이 사천 명을 넘을 만큼
사람 속을 부지런히 오가며
인연으로 하루를 채우던 내가
지금은 몇몇 고정된 얼굴 외에는
굳이 연락도
굳이 만날 계획도 잘 세우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의 엑티브는 지금이 절정이다
가장 많이 움직이고
생각은 가장 적게 하는 시기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성을 가진 사람들과의 인연을
조용히 정리하는 요즘
그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진 인생 철학이
다른 결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니
아쉬움도 없다
pc를 보기에 카톡은 확인하지만
전화기는 언제나 무음
아침 커피를 마시며
어제 내게 어떤 전화가 왔었나
그저 한번 들여다보는 정도
이런 생활을 이렇게나 사랑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아마 많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도
이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시대
관계의 가벼움 속에서
진짜의 무게를 찾는 시간
어쩌다 마주 앉아
와인 한 잔 기울이며
말과 생각이 크게 다름이 없음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친구 하나면
인생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