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가족

피보다 뇌로 맺은 관계

by 조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대안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곱씹어왔다.


우리는 왜 태어나면서 정해진 혈연만을

‘가족’이라 부를까.
선택권 없는 관계, 그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학창 시절, 종교학생회 활동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교리부장으로 시작해 회장까지 맡았던 나는

그때 만난 성직자 한 분의 영향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그분은 종교라기보다 실천학문으로서의 중요성을

늘 말씀하셨고
다른 종교기관도 배움이 있다면

스스럼없이 방문하던 열린 분이었다.


그분의 ‘깨어있는 뇌’는 내 사고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삶을 살아가며 나는 종종 묻게 된다.
"생각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왜 꼭 혈연이 중심이 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낳은 자식조차도
나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상처만 커질 수도 있다.


어쩌면 혈연이라는 끈은
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뤄야 할 관계일지도 모르며

존경해야 할 관계와 사이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취미를 나누며,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경제적 궁합이 맞는 이도 있고,
정치적 시선이 닮은 이도 있으며,
예술과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가족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간에,
내가 편한 공간에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위안인가.


혈연의 가족은 좋든 싫든 모든 면을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대안가족은
서로 원하는 순간에만 닿아도 되는 관계다.

개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연결이다.

물론 현실은 아직 관계의 벽이 높다.
성별, 나이, 계층...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친밀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 사회가 경직되어 있는 이유는
‘위험이라 포장된 이질감’이 과하게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화하려면
희생도, 시행착오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시행착오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제도와 교육을 마련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없다.
새로운 ‘케이스’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하고 싶다.
대안가족,
이제는 공생을 위한 진지한 고민으로
우리 모두의 삶에 들어와야 할 개념이다.


피로 맺은 관계보다
‘뇌로 맺은 관계’가 더 단단하고 소중할 수 있다는 사실,
당신의 삶이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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