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Colom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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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저니, 스테이시
바랑키야, 흔들리는 마음
오로지 카카오 농장 우핑을 위해 서둘러 건너온 콜롬비아. 우핑도 마쳤고 다음은 파나마다. 그런데, 교통편이 애매해졌다. 양국을 오가던 저가의 페리가 최근 운행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런! 비행기는 피하고 싶은데 무슨 수가 없을까.
"스테이시, 항구로 가보자. 발품이 들긴 하겠지만 방법이 있을 거야. "
"여기서 600km 넘는 거 알죠? 버스로 열 시간이라고요."
좋은 정보는 현장에서 나오는 법. 무작정 버스터미널로 향해 표를 끊었다. 여차하면 거기서 비행기를 타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카리브 해안 도시 바랑키야(Barranquilla)행. 얼마 전 에콰도르에서 만난 애버리 사촌 필(Phil, 미국인)이 꼭 가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한 곳이기도 했다. 결정 한 번 참 쉽다. 그때는 몰랐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부카라망가(Bucaramanga)를 떠난 야간 버스는 다음날 이른 아침 바랑키야에 도착했다. 타이어 펑크 소동으로 한 시간쯤 늦은 것이 우리에겐 오히려 잘 된 것이다. 컴컴한 새벽에 자전거를 내리다 불청객이라도 만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른 시간인데도 습도 때문에 더욱 덥게 느껴지는 해안도시. 알아봐 둔 숙소를 향해 곧장 달렸다. 후드득 비가 쏟아진다. 그러더니 도로는 홍수 난 마냥 물길로 변해버렸다. 왜 물이 안 빠지고 길 위로 흐르고 있는 걸까. 오르막길이라 오히려 다행이었다. 홍수는 면했지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숙소 인근에 도착할 무렵엔 비구름은 온 데 간데없고 땅바닥은 바짝 말랐다. 날씨 한 번 묘하다.
바랑키야에서는 한 달 정도 머물 생각으로 주방 딸린 가정집을 구했다. 타 지역에 살고 있는 호스트 대신 우릴 맞아준 사람은 세입자 마피(Mapi)였다. 싹싹한 성격의 그녀와는 나이도 엇비슷해 금방 친해졌다. 영어를 좀 하는 편이어서 며칠 동안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인근 항구에서 파나마 가는 페리가 있다는데 혹시 아는 거 없어?"
"있어! 페리! 금방 알아봐 줄게!"
그 길로 조사가 시작됐다. 인터넷과 전화, 그녀의 휴먼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답은 부정적이었다. 페리는 운행을 중단한 지 여러 달 됐고 언제 재개할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항공권을 검색했다. 어라? 바랑키야 - 플로리다(미국) 항공료가 바랑키야 - 파나마시티의 절반이라니!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었다. 우리 둘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남미에서 열 달 넘었지? 그렇다고 중미를 건너뛰면 후회할 것 같은데"
"잘 생각하세요."
스테이시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기간은 또 그만큼 늘어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저니는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할까나.
콜롬비아의 젖줄 막달레나 강
외식을 나간 어느 날이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사거리에 위치한 바비큐 식당.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굴뚝으로 모락모락 연기를 내뿜는 통에 언젠가 한 번 가고야 말겠다 벼르던 곳. 드디어 발을 들여놓았다. 쇠고기, 돼지고기, 소시지가 함께 구워져 나오는 그 식당 대표 메뉴를 주문하고 식전 빵을 즐기던 바로 그때였다.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앗! 창문!
'외출할 땐 창문을 꼭 닫아야 돼'
흘려 들었던 주의 사항. 길 건너면 바로인 집으로 달려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굵은 소낙비에 옷이 홀딱 젖을 것 같고 도로에 차기 시작하는 빗물을 보니 까딱하다간 홍수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요 며칠 자주 그랬던 것처럼 곧 그칠 거야. 제발 그래야 할 텐데.
푸짐하게 담겨 나온 고기 접시.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질긴 고기를 씹었다. 맛있다. 시선은 자연스레 테이블로 돌아왔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맛나게 먹고 가자. 한 접시만 시키길 잘 했다. 이 많은 고기를 혼자서 다 먹는 옆 테이블 현지인은 위가 얼마나 큰 걸까. 먹다 보면 점점 커질지도. 그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접시는 비워지고 예상대로 비가 잦아들었다.
'슬 가볼까. 얼마나 들이닥쳤을까? 마음을 비우자.'
아무리 아파트라지만 비에 이토록 취약할까. 고작 두 군데 열린 창문으로 몰아친 비는 거실에 작은 시내를 만들고, 위층 우리 방엔 물침대를 놓았다. 창문이 닫혀 있던 마피의 방은 피해가 없었다. 아래층과 위층을 오가며 물기를 없애느라 고기로 채운 배가 금방 꺼졌다. 그래, 몸 쓰는 일이라면 인당 한 접시는 먹어야지 암 그렇고 말고. 그날은 고기를 먹었는데 코에서 비린내가 풍겼다. 창문 잘 닫고 다니자.
영화 프로덕션 사업을 한다는 마피는 늘 바빴다. 그 와중에 하루는 우릴 위해 시내 구경을 시켜주겠다길래 얼씨구나 집을 나섰다. 사실은 일의 연장으로 영화 촬영 장소를 물색하러 가는 것이었기에 조용히 옆에 따라붙었다. 어떤 영화인지 궁금했다.
"너희들 그거 알아? 바랑키야는 카니발로 유명한 도시야. 보고타로 떠난 남자가 이곳으로 돌아와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 이야기인데, 여인의 직업이 무용수인 거지."
구시가지 성 니콜라스 광장은 미사를 보러 온 사람과 주차한 차들로 복잡했다. 소녀 감성이 느껴지는 신 고딕 양식의 성 니콜라스 성당의 내부는 여느 성당과 달리 장식이 적고 서민적으로 느껴졌다. 영화 속 연인이 사랑의 맹세를 하게 될 곳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스테이시는 마음이 따스해졌다. 현대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옛 세관과 바로 옆에 위치한 옛역 몬토야(La Estacion Montoya). 그 앞으로 넓은 정원이 아름다운 그곳은 영화 속 연회장이 될 거라는 설명이다. 얼떨결에 따라나선 동행은 풀코스 시내 관광으로 바뀌었다.
수변 공원 조성으로 한참 공사 중인 강변으로 이동했다. 바랑키야엔 하수구가 없다더니 빗물이 모두 강으로 흘러 들어온 걸까. 흙탕물이 된 강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저지대에는 저소득층이, 고지대에는 고소득층이 분포된 도시 구조. 지리적 특성상 빗물은 북쪽 바다로 바로 흘러가지 못 하고 저지대인 남동쪽으로 흘러 강에 흡수된다. 그 강이 바로 막달레나(Magdalena)다. 콜롬비아 서부를 흘러 1500 킬로미터를 여행 후 카리브 해로 흘러 들어가는 그 강은 예전부터 운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콜롬비아 정부는 세금 1조 오천억 원($1.3 Billion)을 운하 재개발에 할당했다는 소식이다. 험준한 산악 지형과 나쁜 도로 상태 때문에 물류비가 높았는데 국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거란 전망이라고... 22조 원 이상을 쓰고도 좋은 소리 하나 듣지 못하는 한국의 4대 강 사업이 떠올랐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린 한국인가 보다.
거대한 흙탕물 줄기에 그물을 담그면 아마존처럼 사람 키 만한 고기가 잡힐 것 같다. 2018년에 운하 정비가 마무리되면 바랑키야는 해운 대도시로서 많이 변모해있을 테지. 저지대 침수지역의 하수 정비도 함께 이뤄지길 소망한다.
할머니, 피자 드실래요?
다음 주말. 카리브해 휴양지 산타 마르타(Santa Marta)에 놀러 가자는 마피의 제안에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이번에도 볼일이 있었다. 영화 촬영에 쓰일 장비 물색이 목적이었으나 오랜만에 마피도 한 템포 쉬어가는 모습이었다. 해변에서 2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아파트형 별장, 특히 탁 트인 베란다를 통해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와 에어컨 없이도 충분히 시원했다.
볼일 보러 간 일이 잘 됐다며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그녀의 표정에서 한층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드디어 바다로 렛츠고! 수영복만 달랑 입고 밖으로 나갔다. 가운 등으로 몸을 가려야 할 것만 같던 '남 신경 쓰기'는 집을 나서자마자 '남들 같이 하기'로 바뀌었다. 가리기는커녕, 남녀노소 모두 바닷물 뚝뚝 떨어뜨리며 너무나도 자유롭게 다니고 있었다.
'그래 여긴 남미지.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가 없는 곳'
뜨거운 모래를 피해 그늘을 밟으며 드디어 카리브에 몸을 담갔다. 태양은 뜨겁고 바닷물은 시원하고 사람들은 느긋했다. 그간 한국에서 의뢰해 온 홈페이지 개발 작업으로 바빴던 저니도 그 순간만큼은 긴장을 놓았다. 그리웠던 물놀이, 경쟁하듯 저니와 마피는 바다를 가로질렀다.
"당구대 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는 늘 바빴지만 언제나 주말은 여기서 가족과 함께였어. 여든의 나이에도 물에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르셨지. 해변 저쪽 끝에서 이쪽 끝으로 헤엄쳐오곤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
마피는 아버지 흉내를 내보려는 듯 바다 한가운데로 멀리멀리 헤엄쳐 갔다.
늦은 토요일 오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변은 사람들로 붐볐다. 태평양 연안은 홍수림 습지인 지형 탓에 콜롬비아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카리브해 연안뿐이다. 주말이면 보고타, 메데진, 칼리에서 온 내국인 관광객으로 연중 호황을 누린다. 바랑키야를 거점으로(바랑키야엔 해변이 없다) 산타 마르타, 까르따헤나(Cartagena), 타이로나(Tayrona), 팔로미노(Palomino) 등 자동차로 한두 시간 거리에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 모래사장에 사람이 몰리는 만큼 잡상인도 늘어갔다. 다음날 해 뜰 녘 한가한 때에 다시 오리라 기약하고 출출함을 달래러 식당으로 향했다.
그저 평범한 피자집일 뿐 특색 없어 보이던 식당은 산타 마르타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맛집이었다. 마피가 추천한 문어 샐러드와 해산물 피자는 정말 최고였다. 결코 많은 양이 아닌데, 맥주에, 이야기에, 분위기에 취해 금세 배가 불렀다. 물놀이로 노곤함마저 들어 일찍 쉬기로 하고 식당을 나왔다.
"할머니, 피자 드실래요?"
남은 피자가 들어있는 종이 박스를 할머니 앞으로 쭈욱 디밀며 마피가 하는 말이었다. 회색 머리의 비쩍 마른 할머니는 팔려던 것인지 조화 몇 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먹고 남은 것을 나눠 본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다소 충격이었다.
"난 음식 버리는 게 제일 싫어. 깨끗하게 먹고 남긴 거잖아.
포장해 와서 나중에 내가 먹을 수도 있고 누굴 줄 수도 있는 거지.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겐 이런 음식은 좀처럼 먹기 힘든 좋은 음식이거든."
남은 음식을 챙겨 와서 아파트 경비 아저씨 드리기도 하고 꽃을 파는 노파와 나누기도 하는 이 서른 중반의 콜롬비아 여인 마피. 무슨 일이든 제 손으로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영화 프로덕션 회사를 다니다가 올해 독립을 이루었고 그 첫 작품으로 바랑키야를 무대로 한 영화를 맡았다. 어쩐지 공을 들이는 모습이더니. 아침 운동으로 건강까지 챙기는 그녀가 아름답다.
동틀 녘의 카리브 해변. 정작 해는 뒤편 빌딩 숲에서 떠올랐다.
중미행은 운명이었나
"저니 여보, 일어나 봐요. 큰일 났어요! "
스테이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더 자고 싶어 돌아 눕는 그에게 메시지를 읽어주었다.
"안녕하세요.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피디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두 분의 특별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단순한 세계여행이 아닌 보다 나은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귀농을 위한 치열한 준비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이쯤은 해야 하는 건가? 사탕 발린 말인걸 알지만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말을 어찌 요렇게 잘 쓰지? 스테이시는 살짝 배가 아팠다.
"(중략) '오늘을 달리고, 내일을 심는다'라는 문구 역시 울림과 감동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된 계기와 그 동기 등 두 분의 삶이 보여주는 진솔한 가치가 저희 제작진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특히 제작하신 영상은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꿈과 현실을 표현한 연주 장면..(이하 생략)"
그런데 이 사람들. 이 정도면 나름 조사를 했단 얘기. 포장이 과하긴 해도 우리보다 우리에 대해 더 잘 정리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충분히 고민해 보고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어느 자전거 여행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몇 번 제안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제 여행이 방해받을 게 분명했거든요.'
마음이 복잡했다. 망설이다 가족에게 의견을 구했다.
"미디어의 힘은 무서운 거라서 순간의 선택으로 뜻하지 않게 많은 것이 영향을 받고 삶의 방향이 왜곡될 것도 같다는 생각... 곰곰이 생각해서 삶의 여정에 미칠 영향을 냉철히 살펴보길 바란다. 그러고 나서 같은 결론이 나온다면 더욱 좋은 일이고."
도대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던 거지? 우린 그 여행자만큼 유명하지 않고, 이야기 또한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가 아니다. 제작 의도에 충실하자. 우리 여정 중 "일부"를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우리에게 남는 건 전문가 손을 통해 탄생할 훌륭한 영상 하나. 그렇다면 오케이.
결정을 내리고 나니 숙제가 밀려왔다. 얼마 전 우핑을 마친 카카오 농장이 주 촬영지로 선정되었기에 농장 호스트에게 재방문 및 촬영 동의를 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와 그 농장에 좋은 소식이길 바라면서. 그리고 일정 변경 및 환불이 전혀 안 되는 미국행 티켓을 놓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계획보다 오래 체류한 남미. 다큐 건으로 더욱 지체된 여행. 어찌할 것인가. 중미를 점프하고 미국으로 가려던 생각을 다시 돌려 원래 계획한 루트대로 가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음 기회란 절대 오지 않으니까. 항공권을 다시 검색했다. 카카오 농장이 있는 부카라망가(Bucaramanga)와 파나마시티(Panama City)를 오가는 비행기가 일주일에 딱 한 번 있었다. 오케이. 그걸로 결정!
우리의 중미행은 운명이었다.
자, 다시 시작이다! 차근차근 한 나라씩 중미를 달린다!
우쒸, 내 돈 돌려줘
숙제는 또 있었다. 촬영팀 도착일까지 늘어난 보름이란 기간 동안 머물 숙소가 문제다. 보고타에 장기 출장 중인 호스트에게 숙박 연장 건을 묻자, 자기가 써야 한다며 제 날짜에 방을 비워달란다. 다른 곳을 알아보는 수밖에. 그전에 그(이하 '놀부'씨)와는 매듭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그 집을 구한 것은 인터넷 A 숙박 중개 서비스를 통한 것으로 에어컨이 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 보니 에어컨은 고장이었고, 놀부 씨는 초보라 잘 몰랐다며 수리비를 내면 고쳐 주겠다 했다. 그가 시킨 대로 하우스 메이트인 마피(Mapi)에게 비용을 계산했다. 며칠 지나 에어컨 수리 기사가 다녀갔고 뭔가 부품이 필요하다며 다음 날 오겠다던 그는 오지 않았다. 호스트 또한 그간 아무 말이 없다가 스테이시가 말을 꺼내니 별말 없길래 진행을 않았단다. 이미 지난 일. 수리비 환불을 요청했다.
"A 숙박 중개 서비스 통해 지불된 방세를 확인해 보니 딱 그만큼 빠졌더군요.
당신들이 덜 낸 거니까 그 금액은 돌려줄 수가 없어요."
A 숙박 중개 서비스를 처음 이용한 데서 생긴 문제였다. 이 초짜 호스트를 어찌할꼬. 공제된 금액은 중개 수수료임을 일러줬지만 그럴 리가 없다며 빡빡 우기는 자세로 일관하는 놀부 씨. 그래 몰랐다고 하는데 별 수 없지. 값에 비해 만족도 높은 숙소였으니 그냥 잊으려 했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진.
"당신의 콜롬비아식 스페인어는 정말 알아듣기 어렵군요. "
스페인어의 줄기가 크게 세 개 있다는 것은 들었다. 에스파냐식, 남미식, 그리고 칠레식. 그런데 콜롬비아식 스페인어는 또 뭐란 말인가. 스테이시가 줄곧 소통에 사용한 언어는 인터넷 글로벌 번역기를 이용한 것뿐인데 거참 이상하다. 한번 만난 적도 없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임을 강조하던 그의 실체를 본 듯했다. 말이든 글이든 마디 하나하나가 이렇게 중요한 것임을 또 한 번 새긴다.
이튿날, 어디다 알아본 모양인지 수수료에 대해서 인정하려 들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그 금액에 해당하는 이틀을 더 묵고 가라는. 한마디로 돈은 돌려줄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었다. 이런..! 순간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일방적인데다, 이기적이고 심지어 독재자스러운 느낌까지 받은 스테이시. 사람을 상대로 슬프다는 감정이 들긴 처음이었다.
"처음 당신의 말대로 그간 내 집처럼 편하게 잘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불편해져 버렸어요. 예정대로 방을 비우고 돈은 받은 사람에게서 돌려받겠어요! 고맙게도 아직 그녀가 보관 중이라며 도와주겠다고 했거든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그는 그저 놀부 씨일 뿐, 그를 스페인 사람이라 기억하진 않겠다.
- 스테이시 일기장에서
당장 여기로 와!
중개인 마피(Mapi) 덕분에 미해결 건을 깔끔히 마무리 짓고 새로운 곳으로 옮겼다. 프리랜서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호스트(이하 '너구리' 씨)는 하필 우리와 약속한 시간에 급히 수업이 생겼다며 두 시간 기다려 달란다. 후덥지근한 날씨. 그의 연립 주택 단지 앞 나무 그늘 아래서 청설모 구경을 하고 있자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때마침 너구리 씨가 도착하고 서둘러 짐을 옮겼다. 자기 집은 꽉 찼다고 사촌뻘 되는 이웃을 연결해 주는데 영 찜찜했지만 일단 비를 피하고 봐야 했다.
"와이파이 되죠? "
"음... 인터넷 할 수 있어요."
대답이 시원찮다. 다큐 제작팀으로부터 연락이 잦은 시기였기에 인터넷은 필수였다. 된다고 했으니 되겠지. 짐 정리를 마치고 샤워로 땀을 씻었다. 이내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너구리 씨의 사촌은 인터넷을 해보라며 자신의 핸드폰을 보인다. 앗?! 모바일 핫스팟? 잠시 나갔다 온다더니 데이터 충전을 해 온 모양이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그걸로는 어림없다. 우리는 근심에 잠겼다. 당장 나가고 싶어도 갈 데가 없다. 날도 저물고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하자며 서로를 달랬다.
그 밤은 유난히 덥고 괴로웠다. 낮이고 밤이고 그렇게 시원하게 불던 바람은 멈췄고 미지근한 거실 공기는 애완견 냄새와 뒤섞여 지독했다. 방문을 열 수도 없고 인터넷보다 에어컨이 급한 상황이었다. 엉성한 방충망이 불안했지만 창문을 열어 두고 애써 잠을 청했다. 왱~왱~ 모기의 습격이 시작됐다. 밤새 약 뿌리랴, 약 바르랴, 잠을 설쳤다.
"안 되겠다. 가자!"
이튿날 아침.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진 저니의 첫마디였다. 갈 때 가더라도 갈 곳을 알아보고 가야 한다. 원활한 인터넷이 가능한 너구리 씨의 집을 방문했다. 반갑다 와이파이! 인터넷에 접속하자마자 '띵동~' 메시지 도착음이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큐 제작팀이 보내온 것이었다. 밤낮을 바꿔서 사는 것인가,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데...... 콜롬비아 현지 촬영, 출국까지 보름. 그동안 온갖 준비로 시간이 빠듯할 것이다. 메시지 상의 요청 사항은 몇 가지 확인을 거쳐 답해주어야 할 내용으로 하루 만에 될 게 아니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알아보겠노라 회신 후 새로운 거처를 물색하려던 차였다. '띵동~' 이번엔 문자, 마피(Mapi)였다.
"어때? 아무 문제없어?"
"마피, 네가 그리워. 거기가 좋았어 ㅠㅠ "
"내가 집 알아봐 줄테니까 여기로 와! 지금 당장!"
뭔가 낌새를 느끼기라도 한 걸까 하필 그렇게 물어왔을까. 그녀는 지금껏 만나 본 사람, 특히 외국인 중에서 상황 판단과 행동이 가장 빠른 사람이다. 숙소를 옮기려던 차에 때마침 오라는 사람도 있고 더 있을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다. 곧장 너구리 씨에게 알렸다. 가야겠노라고. 그 길로 나와 짐을 꾸렸다. 쪼르르 건너온 너구리 씨는 인터넷을 놓아준다느니, 에어컨 방으로 바꿔 준다느니 잔말이 많다. 이미 너무 늦었다고요! 참다 참다 짧고 굵게 한 마디 던지고 그곳을 박차고 나왔다. 속이 그렇게 후련할 수 없었다.
다니엘라와 아기 고양이
마피가 소개한 새로운 숙소 다니엘라(Daniela)네. 역시 지인 소개는 믿을만했다. 그 집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널찍한 베란다가 맘에 쏙 들었다. 그녀는 아기 고양이 블루와 함께 산다. 애완동물 경험이 없던 스테이시에겐 블루와의 동거는 좋은 기회였다. 손가락을 깨물려도 아프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고 난 뒤 블루에게 다가가길 주저 않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장난기로 가득한 블루. 귀가 예민한 탓일까? 비닐봉지 소리가 날 때마다 귀를 쫑긋하며 달려오곤 했다.
어느 아침 식사 때였다. 유독 야옹야옹 보채는 블루. 치즈를 넣어 노릿하게 구워진 아레이파(Arepa, 옥수수 가루로 만든 콜롬비아식 팬케익)에 관심을 보이길래 손톱만큼 떼어 주었는데 이를 어쩐다. 얼마 후, 그만 설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똥개처럼 마음대로 먹이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스테이시. 베란다 너머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길고양이 무리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어미 없이 혼자지만 인간의 보호 속에 먹이 걱정과 천적에게 당할 걱정 없는 애완동물. 반면, 먹이 찾아 헤매야 하는 거친 일상이지만 가족과 함께인 길고양이. 동물도 저마다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구나.
다니엘라의 아침은 마피의 아침과 비슷하게 과일 시리얼이다. 과일 천국 콜롬비아. 열대 과일 중에서도 신맛이 덜하고 과육이 부드러운 파파야, 망고, 파인애플 등을 잘라 넣고 그 위에 귀리, 키노아, 치아, 그래놀라 등을 뿌리면 완성. 시리얼이라 함은 아이들 입맛에 맞춘 달달한 것, 너무나 익숙한 브랜드에 특유의 종이 상자에 든 제품으로 우유와는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도 앞으로 종종 해 먹을 것 같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다니엘라의 직장은 바로 위층. 대체로 점심 식사는 집에 내려와 직접 만들어 먹었는데 이 콜롬비아 아가씨 요리가 제법이다. 무엇보다, 그럴듯한 요리를 간단하고 신속하게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었다. 가장 좋아한다는 생선 요리가 특히 그랬는데 거기엔 비법이 있었다. 접시 위에 올리브유를 바르고 생선 한 토막을 올린 뒤, 소금, 후추, 실란트로를 살짝 뿌리면 준비는 끝이다. 다음은 구울 차례. 프라이팬이 아닌 '토스터기'로 생선이 들어가는 그 순간. 스테이시의 두 눈은 똥그래졌고 '토스터기는 빵 굽는 기계'란 고정관념에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피자 정도는 시도해 봤지만, 그걸로 생선 구울 생각을 하다니! 다니엘라가 천재같이 느껴졌다. 미니 오븐에서 생선이 익어가는 동안 채소 샐러드가 완성됐다. 맛있게 드세요. 잘 배웠어요.
인터넷 문제가 또 생겼다. 에그형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도착 이틀 만에 허용 데이터를 다 써버린 것이었다. 다니엘라가 우리에게 미안하다며 무제한 데이터를 신청해 주었다. 어쩜 호스트의 대응이 이리도 다를까. 인터넷 설치 기사가 오는 데는 삼일이 걸렸지만 설치는 반 시간 만에 끝났다. 데이터의 풍요 속에 오랜만에 가족과 영상 통화 시간을 가졌다. 모두 무고하게 잘 있어준 덕에 타지에서 맘 편히 밤을 맞는다.
무노동 무임금?
띠링~띠링~ 이른 아침, 현관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한국인이죠? 저랑 같이 좀 갑시다!"
젊은 남자 목소리. 스테이시가 머뭇머뭇하고 있는 사이 주인장 다니엘라가 현관문을 열었다. 분위기로 보아 둘은 초면이 아닌 듯했다. 그는 영화사 소속으로 마피의 심부름을 온 것이었다. 띵동! 때마침 마피에게서 문자가 왔다. 도움을 청하는 내용으로 요구사항은 간단했다. 카메라를 가지고 저니와 함께 올 것. 혹시 몰라 저니는 노트북을 챙겨 차에 올랐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걸까? 영화배우들이 탈 법한 고급 봉고차는 으리으리한 주택가를 지나 오성급 호텔에서 멈췄다. 영화 촬영 장비로 빼곡히 들어찬 입구를 지나 로비로 들어가니 아는 사람이 보였다.
"마피, 도울 일이란 게 뭐야?"
"엑스트라 아르바이트. '이따가' 감독이 설명해줄 거니까 걱정 말고 가서 아침부터 먹고 와. "
호텔 뒤편에 간이 뷔페 식당이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밥차'. 그런 케이터링 업체를 선정하는 것도 마피의 일. 촬영장 섭외에 특수 장비 알선까지 결국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을 보게 되었다. 생선 조림과 쇠고기 구이에 커피까지 한 잔 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야외수영장 앞 벤치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와이파이도 빵빵하니 느긋하게 좀 쉬어볼까.
카니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로비. 오고 가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쪽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우리처럼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배우. 무전기, 마이크, 카메라 박스 등 손에 뭐라도 든 사람은 촬영 스텝. 그들은 분주해 보였다. 두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때가 된 걸까. 보조 감독에게서 배역을 설명을 들었다.
"두 분 잘 와주었어요. 해 주실 역할은 외신 기자 겸 관광객이에요.
자연스럽게 사진 촬영하는 포즈를 취해 주시면 되는 겁니다.
'이따가' 연회가 열리면 적당한 장소를 정해드릴 거예요."
메이크업은 특별히 할 필요 없고 복장은 입은 그대로 괜찮다고 했다. 희한하네.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포장될 기회가 없다는 얘기에 스테이시는 다소 실망했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데...
이래 저래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는 일 없이 밥만 얻어먹으니 맘이 편치 않았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직사광선을 피해 자리를 옮겼다. 이따금 짬이 나면 마피가 다가와 대거리를 해주곤 했다. 현장을 뛰어다니는 그녀에게서 진한 땀냄새가 풍겼다. 좋아하는 일, 자기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향기였다. 여태껏 내 일이라곤 해 본 적 없던 스테이시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저니는 진행 중이던 작업을 계속했다. 촉도 좋지, 노트북 챙길 생각을 어찌했을까.
지루해질 즈음이면 케이터링 부서에서 음료와 간식을 날라다 주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시간은 흘러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바깥엔 선선한 바람이 부는데 대낮보다 훤한 세트장에선 조명 열기가 새어 나왔다. 슬슬 모기가 꼬이기 시작했다. 모기에 예민한 저니의 눈치를 살피며 스테이시는 촬영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녹화를 하고 있긴 한 건가? 케이터링 부서에서 커다란 빵을 나눠주었다. 이번은 간식이 아니고 저녁 식사 대용인 듯했다. 달달한 꽈배기를 골라 한입 물고 있는데 보조 감독이 다가왔다. 마피도 함께였다.
"오늘 촬영은 없으니 이제 가도 좋습니다!"
"정말이에요? 좋아요, 고맙습니다!"
하루를 허망하게 날렸지만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집에 갈 생각에 얼굴이 활짝 핀 우리를 향해 마피가 씽긋 웃었다. 잠시 앉아보라더니 지갑을 꺼내 지폐를 세기 시작하는 그녀. 저니와 스테이시는 서로 번갈아 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뭐지? 설마? "
그랬다. 그건 출연료였다. 무노동 무임금 아니야? 아니란다. 당연히 책정된 비용으로 기다린 시간에 대한 보상이란다. 이거 받으면 내일 또 와야 하는 거 아냐? 아니란다. 오늘 펑크 냈던 사람이 내일은 오기로 했다며 이제 안 와도 된단다. 야호! 외국에서 내 힘으로 번 첫 수입. 기분이 묘하면서도 무척 좋았다. 순간포착. 저니 카메라에 찍힌 스테이시 표정이 끝내준다. 그렇게 좋을까? 그랬다. 잊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정말 신났다.
우리 꼭 만나야 해
"부카라망가행. 어른 두 명!"
버스표를 구입하는 스테이시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아는 길을 가는 것이었기에 즐거웠고, 불안감 대신 신선함이 느껴졌다. 버스비가 이렇게 비쌌던가. 여유가 생긴 틈에 전에 없던 생각이 들어찼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둘은 생각도 많고 말도 많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돼 있는 걸까"
농장 호스트 미겔(Miguel)을 두고 한 말이다. 사정상 미국에 살고 있는 관계로 그와의 모든 얘기는 지금껏 이메일을 통해서 이뤄졌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많고, 서툰 영어로 써진 이메일만 의지하자니 이만저만 답답한 게 아녔다. 그도 마찬가지. 다큐 이야기가 있기 훨씬 전부터 못 만나 안달 난 것처럼 말하곤 했으니까.
"우리 꼭 만나야 해! 미국엔 언제 와?"
우리의 중미행도, 미겔과의 만남도 어쩌면 정해져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가운 얼굴.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우리는 처음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다 같이 엘 카르멘 데 추쿠리(El Carmen de Chucuri)행 버스에 올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스테이시가 묻고 미겔이 답했다.
"그 지역에서 카카오 농사지은 지는 한 삼십 년 됐어. 너희도 가봐서 알겠지만 거기가 보통 오지냔 말이야. 야생 소만 있던 구릉지가 변한 건 좌익 무장혁명군(FARC)이 숨어들면서야. 외부로 통하는 미로 같은 길을 내고 숲을 개간해 작물을 심기 시작했지. 커피, 사탕수수, 카카오, 아보카도 등. 반군의 보호 아래 가족 단위 정착민이 급증했는데 우리 할아버지도 그중 한 분이셨지."
"그런데, 그 반군이란 세력은 테러 단체임에 다름없잖아."
"이래서 꼭 만나야 한다니까! 한국에선 그렇게 알고 있나 본데 꼭 그런 건 아니야. 반군은 수많은 농민들과 빈민의 지지를 받았어. 세력이 크고 이념이 뚜렷한 정당에서 파생되었기에 좌익 단체의 일종인 반군이라 불리지 전 세계 어느 외신도 테러 단체라 보도하지 않는다고. 활동 양상에 비춰 게릴라 조직으로 분류할지언정 테러리스트 어쩌고 하면 정말 곤란해. 그들의 타깃이 되는 부유한 지주 또는 저명한 관리가 아니고서야. 암튼, 반군이 이 지역을 떠난 건 2002년 인가 그래. 정부군은 우두머리를 척결했다고 떠들어댔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어.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는 소문이 돌았거든."
직접 만날 수 있었기에 이런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와 우리의 생각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일본인 아야, 그리고 햅쌀
엘 카르멘 데 추쿠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즐거운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일본인 아야 씨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농장 체험을 앞두고 미겔 부모님 댁에 자전거를 맡기러 들렀을 때였다. 콜롬비아 작은 읍내에 나타난 동양인 커플을 향한 아이들은 관심은 남달랐다. 자전거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더니 다소 의외의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하포네스(Japonés)? 일본 사람? "
"아니 우린 한국 사람이야, 그런데 왜 일본 사람이냐고 물었어?"
"나 일본 사람 알아요. 아야 상. 여기 산단 말이에요. 헤헤"
이구동성 '아야'라는 이름을 외친 탓에 금방 각인되었다. 남미, 그것도 콜롬비아 작은 읍내에 일본인이 살고 있다니. 호기심이 동했다. 어딨는데? 그 한 마디에 아이들은 다시 우르르 움직였다. 어딘가 모르게 들뜬 얼굴이 되어 길을 돌아가더니 학교라고 쓰인 곳에서 돌아섰다. 여기예요! 교실 창 너머로 우리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가 꼬맹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저니.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얼떨결에 저녁식사 약속까지 잡게 되었다.
동네 맛집에서 정식으로 다시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아야 이토(彩伊藤).
자이카(JICA) 봉사 단원으로 그곳에서 활동한 지 6개월 정도 됐다고 했다. 학생 대상으로 일본어를 비롯한 일본 문화 전반을 알리는 일과, 심리학 전공자로서 병원과 양로원에서 상담 치료 봉사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우리가 반갑다며 소바, 후리카케, 미소된장 등 일본 식료품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오랜만에 일본어로 수다쟁이가 되었던 저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자이카(JICA, 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란 : 국제협력단의 하나. 세계 각국에서 우호협력 및 상호 교류의 증진, 경제 사회 발전의 일환으로 활약하는 봉사단으로 한국에는 코이카(KOICA)가 있음.
다시 찾은 읍내는 피에스타(Fiesta, 축제) 기간로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축제를 구경할 겸 거닐다 보니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아야 씨. 뭐든 적극적이고 활발한 그녀는 이번엔 콜롬비아 전통복장을 입고 춤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약간 수줍은 듯했지만 이곳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추억의 맛집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우리가 되돌아 온 이유를 설명하고 혹시 몰라 촬영 협조도 구했다. 그녀 역시 즐거운 일이라며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얼마 뒤 촬영팀이 오고 그때 공수받은 장모님 표 시골 햅쌀을 그녀와 나누었다. 지난번 그녀가 준 일본 식료품에 대한 보답이었다. 햅쌀을 받아 들고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를 외쳤다. 얏따! 무척이나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소소하지만 오고 가는 정 속에 인연이 깊어갔다. 역사적 정치적 이슈로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나라를 떠나, 하나의 지구촌 사람으로 그녀는 우리의 아미가(Amiga, 친구)이자 신유(親友, 친구)이다. 우리 또 만나요. 지구 어디에서든.
두 달 후 방송된 다큐멘터리. 안타깝게도 그녀와의 촬영분은 스토리상 편집되어 방영되지는 못했다.
'아야 씨 미안해요.'
도시쥐와 시골쥐
시골쥐를 촬영하러 콜롬비아 오지를 찾아온 도시쥐.
비포장 도로를 세 시간 넘게 달려 드디어 농장에 도착했다.
"이런 곳은 대체 어떻게 알고 오는 거예요?"
거친 숨을 내쉬며 도시쥐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이런 곳'이란 완전 시골 깡촌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인터넷은커녕 전화 신호도 잘 잡히지 않을 뿐 아니라, 가끔 전기 공급도 끊어지는 무시무시한 곳. 남미 오지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시차 적응 기간도 갖지 못하고 곧장 촬영에 임해야 하는 도시쥐.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카카오나무 사무를 휘젓고 다니는 시골쥐를 따라다니느라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반소매 차림의 그들이 시골쥐는 걱정이 되었다.
"날벌레에게 쏘일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아니나 다를까. 카메라 주위로 모여든 벌레가 떠날 줄을 몰랐다. 도시쥐 셋은 하나같이 연신 팔을 긁어대기 시작했고 벌레를 잡느라, 벌레를 쫓느라 녹화는 자주 중단되었다. 다시, 다시 갈게요! 도시 쥐의 눈치를 보며 시골쥐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다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같은 주문이 반복될수록 시골쥐의 연기가 어색해져, 결국 도시쥐 시골쥐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벌레를 피해, 땡볕을 피해 휴식이 필요했다.
"레모네이드 한 잔 마시고 좀 쉬었다 하세요~"
나이스 타이밍! 집 근처 앞마당에서 들려온 안주인 목소리다. 한국 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카카오 밭을 나왔다. 가려움을 참아 온 도시쥐들은 음료는 뒷전이고 너나 할 것 없이 약을 먼저 찾았다.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안주인이 한국 쥐들에게 물었다.
"여기 참 좋죠? 공기 좋고 물 좋고, 조용하고."
"그렇긴 한데, 서울 집이 그리울 뿐예요."
도시 쥐의 대답이었다. 자기가 나고 자란 곳. 그의 고향은 도시다. 휴양으로 잠시 머무는 것은 좋지만, 아예 시골로 내려가 사는 데는 매력을 못 느낀다는 말에 시골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둘의 차이는 컸다.
촬영 중반이 되던 날 아침.
시차 적응도 됐고, 가려움증도 가라앉아 다소 안정을 찾은 듯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도시쥐들 얼굴이 영 어둡다. 날이 갈수록 말 수도 줄었다. 우리가 연기를 못해서 그런가? 시골쥐는 또 걱정이 되었다. 시무룩하게 있던 막내 도시쥐가 입을 열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서울요금소를 지날 때의 그 향긋한 매연 냄새가 그리워요.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끄는 그 신선한 손맛을 느끼고 싶어요."
말을 하면서도 손을 꼼지락꼼지락 카트 잡는 시늉을 한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마트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시골쥐는 그의 흔들리는 동공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 그를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던 시골쥐,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무릎을 치며 짝에게 달려갔다.
"마누라, 닭볶음탕 먹고 싶어. 닭 몇 마리 잡을까? 내가 도울 테니 꼭 좀 해줘."
마침 장모님 표 양념도 공수받은 상태. 안주인의 동의를 얻어 뒷마당에서 닭을 잡았다. 하루 종일 촬영을 위해 진흙탕에 빠지고 벌레에 쏘이며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준 그들에게 소박하지만 보답하고 싶었다. 토종닭의 누런 털을 뽑으면서 시골쥐는 씩 웃었다. 이걸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땅거미가 내리고 사방이 어두워지는 시간. 부엌은 반대로 환했다. 타들어가는 장작으로 아궁이는 뻘겋게 달아오르고, 새빨간 한국 양념을 덮어쓴 콜롬비아 토종닭은 잘 익어갔다. 김이 모락모락 접시에 담긴 한국요리. 닭볶음탕. 도시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시골쥐의 기분은 찢어질 듯 좋았다. 행복이 오지 마을을 뒤덮는 것 같았다.
열흘간의 촬영을 마치고 이제 헤어질 시간.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 정이 많이 들었다. 시골쥐는 이것저것 든 작은 선물 꾸러미를 준비했다. 그중 커피는 도시쥐들이 오지 마을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던 것으로 특별히 넉넉하게 넣었다. 돌아가서도 할 일이 많은 그들. 방송을 위한 편집과 구성, 바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터. 이따금 커피 향을 맡으며 쉬어가는 여유를 가지길 바랬다.
고향.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도 고향이 된다고 했다.
콜롬비아는 또 하나의 고향으로 남게 되었다.
방송은 2016년 2월 3일에 방영되었습니다.
KBS1 TV 사람과 사람들 "18회 이 부부의 특별한 세계일주"편
다시보기 http://tvcast.naver.com/v/727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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