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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홉이든 HOPEDEN Nov 04. 2015

첫 우프체험, 필립을 만나다

호주 Australia, Mittag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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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hopedenkorea


글, 사진 : 저니, 스테이시

우프란? 
WWOOF(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유기농가와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금전적인 교환이 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문화교류와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글로벌 사회를 만드는 운동(프로그램)입니다.


어제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어찌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행히 감기 기운은 사라졌다. 따뜻한 침낭 속을 나가기 싫어 고개만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한쪽 벽면은 아이들이 그린 듯한 사람과 자연이, 한쪽 구석에는 우프(WWOOF)라고 크게 새겨져 있다. 아마도 이곳에 왔던 우퍼(WWOOFer)들의 그림일 것 같았다. 다른 한쪽 벽면에는 드림캡쳐(Dream Catcher)가 그려져 있다. 아이의 잠자리 근처에 걸어두면 악몽을 잡아준다는 주술품. 원형 안의 그물은 악몽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아래에 달린 구슬은 붙잡힌 악몽이 아침햇살을 받아 변한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꼼꼼하게 잘 그려진 그림이었다. 창문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눈에 닿는다. 침낭에서 빠져나와 현관으로 나선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정원 잔디와 모종을 심기 위해 준비된 듯한 욕조들. 어디론가 흘러가는 물과 숯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관개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나무. 우리는 가만히 필립의 정원을 바라보며 따스한 햇살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차분하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하얀 물체가 와락 달려든다. 과격하게 사람을 좋아하는 필립의 애완견 '앨리(Ellie)'이다. 이윽고 주인장 필립(Phillip)이 나타났다. 한 손엔 커피를, 다른 한 손엔 담배를 들고.



"굿모닝 필립!”


우프 첫 호스트인 필립은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노년의 남성이었다. 머리에는 트래퍼(Trapper)를 쓰고 몸에는 담요를 걸치고 있었다. 육식이 많은 호주인 치고 마른 체형인 그는  아니나 다를까 채식주의자였다. 아침식사로 그가 준비해준 호주식 오트밀(Oatmeal)을 먹었다. 귀리로 죽을 만들어 소금, 설탕, 우유 등을 넣어 먹는 건강식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먹기가 쉽지 않다. 생각보다 느끼하고 특유의 식감이 있어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예전에 처음 낫토(Natto)를 먹을 때와 비슷한 경험이었다. 건강한 것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간밤에 우리 말고 다른 우퍼도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침식사를 위해 그녀도 부엌에서 오트밀을 가지고 나타났다. 휜칠한 키의 독일 여성 마이쿠(Meike)였다. 그녀는 다인승 밴을 개조해 만든 차로 여행도 다니며 일도 한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간밤에 우리 말고 다른 우퍼도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침식사를 위해 그녀도 부엌에서 오트밀을 가지고 나타났다. 훤칠한 키의 독일 여성 마이쿠(Meike)였다. 그녀는 다인승 밴을 개조해 만든 차로 여행도 다니며 일도 한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필립은 요리준비중


서로 통성명을 마친 후, 우퍼로의 첫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의 텃밭과 정원은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의 일과는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실제 재배작물보다 잡초가 많았다. 잡초를 다 뽑고 나니 정갈한 그의 텃밭이 모양을 들어냈다. 그가 이곳을 만들 때의 청사진을 보면 다양한 각도로 고민한 흔적들이 보였다. 계절별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동선을 고려한 나무들과 텃밭의 배치, 빗물을 이용한 관개시스템, 태양의 하루 중의 변화, 전기배선의 위치에 대한 고려 등  그것이었다. 다만 그가 혼자서 이것을 운영하기에는 쉽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에게 우프 프로그램은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아침나절 짧은 작업이었지만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오후엔 잠시 주변 관광을 하고 마켓에 들려 저녁거리를 준비했다. 필립과 마이쿠에게 한국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물론 입맛을 잃은 저니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쓰던 재료나 양념이 없기 때문에 메뉴 선정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마이쿠 역시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에 메뉴 선정이 어려웠다. 그래서 결정한 저녁 메뉴는 감자조림과 양배추 샐러드, 그리고 흰 쌀밥. 마이쿠와 저니는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필립은 입맛에 맞지 않는 지 어느 정도 먹더니 숟가락으로 모두 섞어 휘젓기만 한다. 아침에 오트밀을 먹기 힘들어서 휘젓던 저니의 모습이 교차된다.


'미안해요. 필립, 원래는 맛있는 건데 한국 재료가 없어서 그래요.'


다음날이 밝았다. 필립의 부엌에는 유기농 제품이 많이 있었다. 유기농 우유, 사과주스, 설탕 등.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오늘은 필립이 손수 만든 치즈케이크와 허브보리빵을 선보였다. 취향대로 설탕이나 꿀을 발라 먹으면 더욱 맛있었다.


오늘의 우퍼 일과는 건초를 놓는 일이다. 어제 잡초를 뽑았던 곳에 건초를 적당히 놓아주는 것이었다. 뒷마당 있는 건초더미를 옮겨서 작업하였다. 필립은 자연농법을 실험하고 있다. 자연농법(Natural Farming)은 '후쿠오카 마사노부'에 의해 창시된 농업으로 크게 네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으며 다음과 같다.


1. 무경운 : 흙을 갈지 않는 농사법
2. 무제초직파법 :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땅에다 직접 파종하는 농사법
3. 무농약 :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사법
4. 무비료 :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농사법


자연농법의 기초는 인간의 이익이 자연의 생태가 충돌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유기비료를 통해 작물을 키우는 유기농법과는 그 차이가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건초피복'이라고 하는데, 건초로 햇빛을 차단하여 잡초 발아를 억제하고 건초는 섞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준다.


오후에는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덥다. 건초도 다 덮었기에 각자 휴식을 취했다. 해질 무렵이  그동안 쉬고 있던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다.  '스타카토(Staccato, 음의 길이를 줄여 짧게 연주하는 기법인데 딱딱 끊기는 느낌이 있다. 마치 저니가 스테이시의 말을 끊는  것처럼 닮아서 지어진 이름)'와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뜯어 음을 내는 기법, 스테이시가 저니에게 바가지를 긁는  것처럼 닮아서 지어진 이름)' 연습. 이미 현관 계단에서는 마이 쿠가 자신의 기타로 반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난 마이쿠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 '브라보~'


건초작업 중인 스테이시


여행을 준비할 때 바이올린을 가지고 가는 것은 큰 고민이었다. 자전거 여행에는 적잖은 부담이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1년 반 정도 배운 우리의 실력으로 길거리 공연은 말도 안될 이야기이다. 우리에게는 특별히 음악적 재능이 없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조금씩 연주할 수 있는 곡도 많아지리란 굳은 믿음이 있기에 바이올린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은 자신을 위한 연주 밖에 할 수 없지만 언젠간 타인을 위해 연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신적인 치유. 그래서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 다른 재미도 있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바이올린을 공유할 수 있다. 멋진 연주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그랬듯이 처음 바이올린을 접하고 자세를 취하고 소리를 내보는 것 만으로도 멋진 추억이 된다.


"나 어릴 적에 바이올린 배운 적이 있어"


마이쿠의 말이었다. 바이올린을 건네주었더니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한다. 물론 몇몇 잊어버린 손가락의 위치를 교정해주었더니 연주를 한다. 특히 활을 켜는 손놀림이나 소리는 정말 좋았다.


"마이쿠, 너 어릴 때 얼마나 배운 거야?"
"5년 정도 배웠는데 지금은 잊었어"
"5년!!!"


역시 뭔가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마이쿠는 한참 동안 우리를 잊은 채 바이올린 연주을 하였다. 옛 추억에 빠져 그 시절로 돌아간 모양이다. 같이 연주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원래 이곳에서 5일을 묵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호스트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예정보다 빨리 떠나기로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고마웠어요 필립.


필립 호스트 하우스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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