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Australia, Mullumbimby
우프란?
WWOOF(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유기농가와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금전적인 교환이 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문화교류와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글로벌 사회를 만드는 운동(프로그램)입니다.
(2014.11.14)
호스트는 일 나가고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사랑채로 보이는 안쪽 집에서 사람이 나온다.
아이와 엄마. 먼저 말을 걸어온다.
"오늘 온다던 우퍼이시군요, 제인과 펠리시티(Jane and Felicity)한테서 들었어요.”
제대로 오긴 했나 보다. 아무도 없는 집에 어디다가 짐을 들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일단 샤워하고 쉬자꾸나. 그늘진 테라스 안락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멍 때렸다.
곧장 퇴근해 온 우리의 호스트 제인과 펠리시티. 40대 후반의 여성 커플이시다. 제인은 182cm의 장신이고 지방 의회 사무실에서 IT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펠리시티는 아동복지센터에서 치료 및 상담역을 하고 있고, 가구 제작도 하는 등 손재주가 있다고 한다. 저녁 메뉴는 인도네시아 발리식 요리라는데 묽은 치킨카레 정도 될 것 같다. 밥에 얹어 먹으니 정말 맛나다. 저녁 먹기 전 훑어 본 우퍼 방명록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제인의 요리를 칭찬하였다. 다음으로 많이 언급한 것이 '오늘의 사과와 양파' 이야기. 우리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포도와 오렌지 이야기와 비슷하다. 오늘 당신의 사과(좋았던 것)와 양파(나빴던 것)는 뭐였나요?
(2014. 11. 15)
나무를 심을 위치는 바로 옆 마을 켄과 캐시(Ken&Cathy) 부부네 목장이었다. 이곳 '숲 되살리기' 커뮤니티에 동참하고 있는 삼사십대 청년들이 제법 모였다. 호주처럼 크고 작은 숲이 많은 나라에서 숲 살리기를 한다니 조금 의아했다. 나중에 제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 원래는 무척 울창한 숲이었는데 조금씩 인구수가 늘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던 숲이 군데군데 끊어지고, 나무 수도 줄어 코알라 같은 동물들의 생활 반경이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숲을 되살리고 단절된 숲들을 연결하자는 뜻이 모이고 모여 시작한 나무 심기가 벌써 십 년째이다. 8km 떨어진 국립공원과 이곳의 작은 숲들이 서로 이어져 생태계가 보존되고 나아가 확장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우리나라의 식목일을 떠올리게 된다. 365일 중에 딱 하루 나무 심기에 대해 고민해 보지만 나 조차도 단 한 번 적극적인 실행은 없었다. 숲이 울창한 호주에서 나무 심기의 중요성을 배우다니 느끼는 바가 많다.
9시도 안 된 시간이지만 햇볕이 꽤나 뜨겁다. 이미 알던 사이도 있고 처음 만난 이도 있다.
서로 간단히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은 시작되었다.
오늘의 목표량 : 묘목 200그루
작업 인원 : 10 명
예상 시간 : 2 시간
준비물 : 묘목(고무나무, 유칼립투스 등), 크리스털워터, 비료, 커버 매트, 물 호스, 삽
물웅덩이 주위로 신비탈 등으로 누군가가 미리 구멍을 파 놓았다. 깊이 25cm, 너비 10cm 일률적인 잘 파놓은 걸 보니 기계를 이용한 모양이다. 우선 파인 구멍 옆으로 묘목을 하나씩 배치한 후, 구멍 안으로 비료 약간, 크리스털워터를 한 움큼씩 넣는다. 크리스털워터. 척박한 땅에는 물을 주면 어디론가 흘러 버리거나 흙이 모두 흡수해 버리지만 크리스털 워터는 어린 묘목 뿌리가 수월하게 수분을 흡수할 수 있게 해 준다. 말랑 말랑 젤리 형태로 맨손위에서 약각 녹는 느낌이다. 한국에서도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 묘목을 넣고 흙으로 덮은 다음 잡초 방지를 위해 줄기 밑으로 커버 매트(원단, 의류 등이 재활용된 소재)를 하나씩 끼워 넣는다. 매트가 흠뻑 젖도록 물을 충분히 주고 나면 끝. 사람이 많으니 200그루도 금세 심어버렸다.
농장주 켄의 어머니와 아내가 수고 많았다며 다과를 준비해 주셨다. 오전 일을 열심히 한 후 맞이하는 모닝티 타임은 언제나 반갑다. 한국의 새참과 마찬가지지만 서양 특유의 낭만과 여유가 느껴진다. 약간 서먹하다고 느끼려는 찰나. 서로 간 이야기 나누느라 분주하다. 캐나다에서 이주해 온 청년, 영국에서 온 커플. 미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도 살다가 은퇴 후 아들 네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왔다는 Ken의 어머니. 상당히 내륙인 이곳 시골 마을까지 이민을 오다니. 역시 호주는 이민자의 나라인가 보다. 이민자로서의 어려움, 커뮤니티와 어울리는 방법 등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제인네 집으로 돌아와 뒷마당에서 물놀이를 하였다. 풀장에 커버를 덮어 놓아둔 덕에 물이 무척 시원해서 더위 식히는 데는 아주 그만이었다. 저니는 수영을 배운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라고 거듭 만족해한다. 한해 평균 열명 정도, 8년간 우퍼를 받았다는 제인. 그녀의 기준은 4시간 작업, 나머지는 자유시간. 요즘같이 더울 때에는 아침과 해거름 2시간씩 나눠서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작업량 안배도 뛰어나다.
우리의 할 일
1. 뒤뜰과 물탱크 주변 멀칭 작업 - 4시간
2. 집 진입로 주변에 나무 20그루 심기 - 2 시간
3. 울타리 가장 자리에 페인팅 - 2 시간
4. 사랑채(세입자) 멀칭 도와주기 - 2 시간
38도 무더위. 냉방이 되지 않는 집. 더위에 약한 펠리시티, 초점을 잃은 눈으로 강에 수영하러 가자는 제의를 한다. 호주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체육, 아웃도어 활동이라더니 '수영'없이는 호주 생활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한차례 수영을 하고 나니 해도 넘어갔고 훨씬 시원하다.
오후 작업 개시 - 멀칭생명력 강한 잡초를 예방하고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무언가로 덮는 일을 멀칭이라고 한다. 작물을 심은 곳과는 달리, 관목이나 잔디밭 주변에 종이박스를 깐 후 나무칩으로 덮는다. 냉장고 박스, TV 박스 등 어디서 구해 왔는지 수두룩 쌓아놓았다. 적당히 자르고 찢어 멀칭 할 곳에 잘 펼쳐 놓은 다음, 나무칩으로 골고루 덮으면 된다. 다섯 손수레쯤 퍼나르자 요령이 생긴다. 손수레 하나를 더 투입시켜 한 번에 두 수레씩 퍼나르니 일이 빠르고 두 명이 함께 움직이니 흥이 난다. 푹신하게 덮은 후 제인에게 검사를 받는다. '오케이'다!
(2014. 11.16)
어제 남겨둔 물탱크 주변 멀칭을 마저 하였다. 한낮의 더위를 피하고 싶어 일찍 시작하였더니 한결 수월히 끝마치게 되었다. 모닝티 휴식을 한 후에 더워지기 전 오늘의 일과를 마저 하기로 한다. 집 앞 공터에 나무 심는 것인데, 땅이 어찌나 메마르고 돌바닥인지 구멍을 파던 저니 기진 맥진하다. 크리스털 워터가 없는 대신 물을 충분히 공급하였고, 커버 매트 대용으로 종이 박스를 잘라 가운데 구멍을 낸 후 묘목에 끼워 주었다. 잘 자라주렴~ 오늘 일과는 끝. 텃밭에서 키웠다는 약간은 억센 샐러드 채소를 곁들여 각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점심을 먹었다. 빵은 소화가 잘 안된다는 스테이시는 상추 샌드위치를 잘도 만들어 먹는다.
오후에는 옆동네에 살고 있는 제인의 지인 부부와 다 같이 수영한 뒤 에프터눈 티타임을 가졌다. 수제 바나나빵을 준비해 간 펠리시티. 밀크티와 달콤한 빵. 맛이 잘 어울린다. 그레이와 수 부부가 좋아한다는 일간지 퀴즈 풀이 시간. 우리는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이 분들의 경쟁심과 소소한 재미를 함께 나눈 이 경험은 신선하고도 즐거웠다.
저녁 식사 전 제인과 인터뷰를 찍었다. 자신의 생업은 별도로 해 나가면서, 자원봉사로 계속 나무를 심고 숲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인터뷰에 이은 우핑 관련 얘기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하였다. 제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홈메이드 맥주는 정말 맛나다. 봉인이 제대로 되지 않아 거품이 꺼졌다고 여러 병 하수구에 버려진 맥주, 아깝다. 와인키트는 들어봤어도 맥주키트도 있구나…
나중에 한 번 도전해보겠다는 저니.
(2014.11.17)
날이 흐린 것이 안개비가 내린다. 두 호스트가 출근을 하자 이웃 다니엘라(Daniella) 집 안 뜰 연못 주위로 나무칩을 실어다 날랐다. 그녀가 박스를 미리 깔아 놓아 일은 수월하였다. 독일 사람으로 호주에 이민 와 두 아이의 엄마인 다니엘라. 우리가 나무칩을 까는 동안, 엄마와 두 아이는 마당 한쪽 토끼 우리 앞에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이들은 집이 학교이고 다니엘라는 대안학교 교사다. 이따금 독일어를 하는 것도 같다. 두 사람이 져다 나르니 멀칭도 금세 끝나고 때마침 비도 그쳤다. 이때다 싶어 물 한 모금 마시고 곧바로 울타리 페인트 작업에 들어갔다. 페인트칠이 처음인 스테이시. 벽돌색 페인트가 노란색으로 색칠된 울타리를 망치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일이 더디다. 간단해 보였는데 예민한 부분이 있어 시간이 제법 걸렸다. 모든 일을 마치고 주인 없는 텅 빈 집에서 누리는 여유. 공간 도둑이 된 듯하다.
예정대로 3일 작업을 충실히 마쳤다. 제인&펠리시티, 잘 있어요.
나중에 우리가 심은 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 보러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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