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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홉이든 HOPEDEN Nov 04. 2015

다시 시드니로 향하는 길 D+58

호주 Australia


(2014.11.12)

안락한 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떠나야 할 때.  그동안 신세 졌던 레이나와 켄트 부부와 헤어질 시간이 왔다. 브리즈번에서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오늘의 목적지 골드코스트. 이들 부부가 호주 유학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들도 못내 아쉬웠는지 재미 난 제안을 했다. 자전거 짐은 그들이 차에 실어 나중에 출발할 테니, 우리는 먼저 '가벼운' 자전거로 이동해서 정오에 만나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새벽 5시. 짐 없이 출발하였다. 거짓말을 좀 보태서 말하자면 자전거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질주하였다. 골드코스트가 가까워질수록 아름다운 리조트와 호화 별장들이 많이 보인다. 별장마다 요트나 배를 정박할 수 있는 개인 부두가 있다. 많은 연예인과 부자들이 이곳에 거주하거나 휴양을 한다더니, 과연 휴양의 천국이긴 한 것 같다. 


우리는 오후 12시가 되어 목적지인 골드코스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나타났다. 잠시 자전거는 잠가 두고, 함께 차에 올라 미니 관광을 즐겼다. 유학시절 그들이 자주 찾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시내를 잠시 거닐었다. 그리고 유명한 유원지와 부두를 돌아보았다. 이젠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레이나는 더는 이동 말고 이곳에서 텐트 치길 권유했다. 조금만 더 가면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인데 거긴 위험하다고 한다. 특히 방학인 요즘 어린 친구들이 술 먹고 사고 치고 얼마 전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면서 잔뜩 겁을 준다.


"알았어, 이 근처에서 적당한 곳을 찾아볼게,  그동안 고맙고 즐거웠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


서로 이별의 아쉬움을 포옹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우리 둘은 다시 길 위에 섰다.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당신과 나. 잠시 아무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공원 한쪽 분지에 텐트를 쳤다. 무료 샤워장과는 2km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움푹 패여 바람을 잘 막아줄 것 같다. 또 바로 옆에 바로 피크닉 테이블까지 이만한 장소도 흔치 않다. 저녁식사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도 오늘처럼 새벽부터 달려야 하니까.


얼마쯤 잠들었을까? 밖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로 보아 분명 사람이다. 지나가는 사람인가 하고 무시했는데 텐트를 쿡쿡 찌른다. 그림자가 둘이다. 낮에 레이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설마 나쁜 친구들일까?


"누... 누구세요...?"


잠시 그림자가 멈칫하더니 킥킥 거리는 것이 익숙한 목소리다. '레이나'와 '켄트'


"놀랐지?"
"너희들 집에 갔던 거 아니야?"
"아까 차 막히는 시간이고 해서 이왕 온 김에 영화나 보고 더 있다가 차 막히는 시간 피해서 출발하려 한 거지. 저녁도 먹었어. 출발 전에  걱정돼서 한 번 와봤지"
"용케 잘 찾았네?"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둘러보고 갈려고 했는데 딱 있더라고..."
"크흐.... “


그들은 이젠 진짜 간다며 인사하고 사라졌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더 크게 손을 흔들었다. 함께 할 때는 그 시간이 멈춰 영원한  듯했지만 헤어진 후에는 왜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지… 야속하게도 지금 이 순간조차 여전히 흐르고 있다.

이동거리 65.58 km
누적거리 260.08 km


골드코스트 인근 공원에서 야영



(2014.11.13)

간밤에 우프(WWOOF)  호스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멀름빔비(Mullumbimby)라는 곳이고 나무 심는 일이라고 한다. 예정된 루트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은 곳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골드코스트에서 약 100km 정도의 거리. 이틀 후에 도착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자전거에 올랐다. 


호주에는 높은 산은 없는 대신 언덕이 많은데, 짐들 때문에 우리에겐 그 언덕이 고생스럽다. 그런데, 골드코스트(Gold Coast)에서 이어진 이 동쪽 해안선 길은 대부분 평지이고 해변을 따라 길이 나있기 때문에 달리기에 그만이다. 길도 좋고 해안을 끼고 달리는 이 기분은 마치 그림 속을 달리는 느낌이다. 호주를 방문하는 자전거 여행자라면 이 코스를 놓치지 마시라. 골드코스트(Gold Coast)에서 출발해서 쿨랑가 타(Coolangatta)를 거쳐 킹스크리프(Kingscriff)까지.


주 경계라는 쿨랑가타(Coolangatta). 퀸즈랜드(Queensland)를 뒤로 하고 뉴 사우스 웨일즈(NSW) 주로 들어섰다. 그리고 킹스클리프(Kingscliff)를 지나자 또다시 익숙한 언덕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동거리 49.45 km
누적거리 309.53 km


공원에 비치된 그릴은 무료로 이용가능



(2014.11.14)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은 뜨겁다 못해 몸이 녹아 내리는 기분이다.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어도 바람은 뜨겁다. 게다가 언덕은 왜 이렇게 많은지... 낮은 언덕마저도 숨이 차오른다. 오후 4시가 되어 발견한 갈림길. 위로 다음과 같은 이정표가 있었다.


"멀름빔비로 향하는 관문, 호주에서 가장 작은 마을"


5km를 더 달려 도착한 시내는 정말 작고 아담했다. 버스커의 감미로운 음악소리, 골목길에 그려진 멋진 풍경들, 전봇대에 그려놓은 추상적인 그래피티(Graffiti), 나무들은 알록달록 그물망 털실을 입었다. 이른바 '얀 범빙(Yarn Bombing)'이라는 것이다. 벽면의 포스트는 이달 말에 뮤직 페스티벌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타운 중심가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번째 우칭지 제인(Jane)의 집에 도착하였다. 제인과 펠리시티 모두 일 나가고 집은 비어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주인 대신 말루(Malu)와 요시(Yosh)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덩치 크고 나이가 많은 애완견 가족이었다. 상큼하게 샤워 후 테라스에서 의자에 앉아 쉬었다. 한들한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땅거미가 질 무렵, 제인과 파트너 팰리시티(Felicity)가 돌아왔다.

두 번째 호주의 우핑(WWOOFing)이 시작되었다.

이동거리 52.75 km
누적거리 362.28 km


자세한 이야기는 농장일지,
"나무를 심자, 제인과 펠리시티 - 멀름빔비 호주”편을 봐주세요.


멀름빔비 초입 간판



(2014.11.18)

제인과 헤어진 뒤, 다시 길 위에 섰다. 시드니까지 800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다. 이대로 달린다면 보름 정도면 시드니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호주에서의 우핑이 조금 아쉽다. 본업이 농부인 호스트를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 호주 우프 포럼에 다시 글을 올렸다. 좋은 인연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달린다.  


멀름빔비에서 멀지 않은 곳인 바이런베이(Byron bay), 호주 최동단으로 향하였다. 해변에서 보이는 하얀 등대. 언덕 위 꼭대기에 위치한 등대까지 가는데 거의 1시간이 걸렸다. 차라면 5분이면 올 것을. 바이런베이의 탁 트인 풍경을 즐기면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자 다음과 같은 표식이 있다. 


‘호주 본토 최동단(Most easterly point of the Australian mainland)'


‘최동단’이라... 

2013년 한여름. 우리는 한국의 최동단 ‘독도'에 있었다. 

그 외로운 섬 위에서 왠지 모를 애잔함으로 가슴이 뜨거워졌었는데...

호주의 최동단에서는 그저 바람의 시원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이동거리 50.92 km
누적거리 413.20 km


호주 최동단에 서서



(2014.11.19)

간밤에는 레녹스헤드(Lennox Head)라는 작은 마을의 해변공원에서 야영했다. 밤새 비바람이 몰아쳐 걱정했는데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호주의 여름 날씨는 무척이나 변덕스럽다. 한낮에 그토록 무덥더니 저녁에는 갑자기 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퍼붓는다. 이것을 ‘썬더스톰(Thunderstorm)’이라고 부르는데, 대형 화재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나무 껍질이 까맣게 탄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겉은 탔어도 가지 끝에 푸른 잎을 피우고 살아 남은 나무들. 자연은 위대하다. 


우프 포럼에 답글이 달렸다. 캠지(Kemsey)에서 마늘 농장을 하고 있다는 스티븐(Stephen)의 초대였다. 레녹스헤드에서는 300km가 조금 넘는다. 이번엔 확실한 '농장'이므로 많이 배우고 보면서 여러 날 여유 있게 머물고 싶은 마음이다. 점프를 해서  거리를 단축하기로 결정했다. 자전거 여행에서의 ‘점프(Jump)’라는 말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특정지역을 건너뛰는 것을 의미한다. 마침 중간 지점인 그래프톤(Grafton)에서 기차로 캠지(Kemsey)까지 닿을 수 있었다. 


그래프톤까지의 거리는 150km 정도. 3일이면 넉넉히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하루라도 빨리 우핑을 하고 싶었다. 오늘은 달릴 수 있을 만큼 달려보자. 힘차게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드번(Woodburn)에 가까워질 무렵 승용차 한대가 우리 앞에 멈췄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양인 커플이 내려서 말을 걸어온다.  


“태극기 보고 반가워서요… 어디 가세요?"
“와! 한국인이시네요? 시드니로 향하는 중이에요.”
“저희도 호주 동부 해안 따라 여행 중이에요.”
“와~반가워요. 신혼여행 오셨나 봐요?”
“아니요. 멜버른에서 8년째 살고 있고요, 휴가로 호주 자동차 일주를 하고 있어요”
“멋지네요!”
“드릴 건 생수뿐이라... 여기요”
"마침 물이 떨어져서 걱정하던 참이었는데요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들은 생수 2병을 건네고 힘찬 응원을 보낸 후 사라졌다.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 동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반갑고 기분이 좋다. 더구나 물을 얻었으니 힘이 절로 났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물은 최고로 중요하다. 특히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은 정말 귀하고, 생수는 비싸서 가난한 자전거 여행자는 수돗물을 먹는다. 그마저 구하지 못할 때도 허다하다.      


우드번(Woodburn)을 지나자 끊임없이 숲이 이어졌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좁은 갓길에서는 쉬는 것도 쉽지 않다. 이따금 차운전자를 위한 ‘휴게구역(Rest Area)'이 나오는데 유일한 쉴 곳이다. 화장실과 피크닉 테이블을 갖추고 있다. 처음에 도착한 휴게구역 ‘뉴 이태리(New Italy)’엔 미니 카페도 있어 제대로 된 휴게소의 느낌이었다. 게다가 텐트 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멈추기엔 아직 이른 시간 우리는 더 달려야 한다. 오후 4시 반. ‘양봉가들(Beekeepers)’이라는 이름의 휴게구역. 낡은 화장실과 이동식 카페 차량이 전부였다. 그 카페 차량마저 영업을 마치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70km를 넘게 달려 체력도 많이 소진된 상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괜찮다면 이 샌드위치 드릴까요?”


영업을 마치고 막 떠나려는 카페 차량의 여사장님이시다.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커피 한 잔이 아쉽긴 했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인 걸 우리는 안다. 

신선하고 맛난 새참을 먹고 나니 기력이 생긴다. 


“더 달려야겠는걸?”


기나긴 숲을 벗어나 드디어 맥클린(Maclean)에 도착했다. 마을이 정갈하고 집들이 예쁘다. 잘 정돈된 레고 마을 같다. 그런 와중에도 저니의 눈에 주류판매점이 먼저 들어왔다. 750ml짜리 맥주 한 병을 구입한 후 인근 공원에 텐트를 세웠다. 저녁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는데 감자가 더 많다. 아무렴 어떤가? 시원한 맥주 한 병이 있는데. 술을 잘 못하는 스테이시, 이번 여행에서 이변이 생겼다. 땀 흘린 후 마시는 맥주의 그 시원한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더구나 오늘은 자전거 하루 이동거리 100km 신기록을 세운 날이기에 맥주 맛이 더욱 좋다.


텐트 밖으로 올려다 본 하늘. 점점 시커멓게 변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와 어디론가 이동하는 수 백 마리의 박쥐 무리. 장관이다. 

그날 밤은 비가 엄청 내렸다.

이동거리 104.9 km
누적거리 517.29 km


여행중 한국인을 만나면 너무 기분이 좋다



(2014.11.20)

새로 맞춘 반팔 져지를 처음으로 입었다. 여행 기념으로 클라우드 펀딩(Cloud Funding)을 통해서 제작했던 ‘플라이바스켓 반팔 져지’. 입고 있으면 우릴 후원해 준 분들과 모두 함께 달리는 기분이 든다. 

어제 100km를 넘게 달린 덕분에 오늘은 여유 있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내일은 여유라는 보상이 있기를 기도해본다. 


드넓은 목장. 무더운 날씨 탓에 소들도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 소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하우디(Howdy)~, 반가워!”


소리에 놀랐는지 한 마리씩 일어나더니 30마리 가까운 소들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우릴 향해 오는 줄 알고 마음 졸였는데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저 큰 덩치를 하고 달릴 수가 있구나! 대지에서 자라고 신선한 풀을 뜯으며, 새끼와 단절되지 않는 행복하고 건강한 소. 우리가 가축을 키운다면 저렇게 키우고 싶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말이다. 온국민의 건강과 바른 먹거리를 위한 여행. 책임감이 무겁지만 우리의 경험의 공유와 소통을 통해 느리지만 천천히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프톤(Grafton) 역에 도착해서 캠지(Kemsey)행 티켓을 예약하였다. 내일 오전 5시 15분 열차. 

호주는 한국처럼 고속열차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주 있지도 않다. 자전거는 박스에 넣어 포장을 해야 짐칸에 싣을 수 있는데, 다행히도 역에서 자전거 박스를 제공한다. 윈드 서핑을 많이 하다 보니 서핑보드도 동일하게 포장을 하는 것 같다. 자전거 여행자라면 미리 예약할 때  이야기해두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다음날 아침. 열차 출발 1시간 전에 역에 도착해 자전거를 분해 박스 포장을 하였다. 비행기에 싣을  때처럼 꼼꼼하게는 안 해도 되어서 금방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바이올린을 합쳐 10개의 가방을 싣는 일은 늘 쉽지 않다. 몇 번을 열차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한 후에야 좌석에 앉을 수 있다. 휴. 


자전거와 비교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캠지(Kemsey)에 도착하였다. 캠지 역 앞에서 트럭을 타고 온 스티븐(Stephen)을 만났다. 꼼꼼하게 자전거를 싣고 그가 운영하는 마늘 농장 “갈릭 파머시(Garlic Farmacy)”로 향하였다. 

이동거리 44.44 km
누적거리 561.73 km


자세한 이야기는 농장일지,
"건강한 마늘을 위한 도전, 갈릭파마시 - 캐시 호주”편을 봐주세요.


텐트에서 바라본 박쥐떼



(2014.11.27)

스티븐은 '포트 맥쿼리(Port Macquarie)’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간의 보답으로 커피 한잔을 나누며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스티븐과 헤어지고 나자 또 다른 앞날에 대한 생각이 몰려온다. 한 달 전에 예약해 둔 '울루루 에어즈락(Uluru Ayer’ s Rock)’ 관광이 바로 3일 후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캠지에서의 우핑 기간이 길어져 시드니까지 이동하기에는 라이딩만으로는 안된다. 타리(Taree)에서 기차를 탈 생각으로, 100km 정도만 더 자전거로 이동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침부터 오던 비는 오후 늦게까지 이어져 하루 종일 비옷을 입고 달려야 했다. 

최대한 언덕을 피하기 위해 해안선으로 난 길로 이동하던 중, 로리톤(Laurieton)을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 한대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괜찮다면 우리 집에 묵어도 되는데요…"


중년의 한 여성의 제안은 감사했지만 우리는 정중히 거절했다. 오늘은  그동안 열어두었던 예민한 귀를 닫고 오로시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이어 우리 앞에 자갈길이 펼쳐졌다. 돌아서 가기엔 너무 먼길이고 날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혹여나 펑크가 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 달린 지 1시간째. 국립 공원 한 가운데 감춰진 해변과 캠핑장 표시가 눈 앞에 나타났다.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 도착.

이동거리 45.71km
누적거리 607.44 km


아직 갈 길이 멀다



(2014.11.28)

아침에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오는 데 바로 앞에 캥거루가 있다. 눈이 마주친 캥거루가 놀라 뛰어간다. 그 뛰는 모습을 자세히 본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큰 뒷다리에 비해 작은 앞다리는 그냥 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큰 뒷다리로 콩콩 점프하면서 뛰어가는 모습이 귀엽다. 게다가  뱃속에는 새끼 캥거루까지. 


자전거에 올라서니 어제의 비포장 도로가 떠올랐다. 지도상으로는 남쪽으로 15km를 더 달려야 포장도로를 만날 수 있다.  북쪽으로 돌아가면 20km를 더 달려야 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덜컹덜컹. 조금이라도 굴곡이 적은 곳을 찾아서 달려야 했다. 그래도 차량 통행이 거의 없다 보니 숲 길을 모두 전세 낸 기분이었다. 비록 손목은 아파왔지만. 거의 비포장도로가 끝날 무렵. 도로포장작업이 한참이었다. 우리가 달려온 길은 곧 포장도로로 바뀔 것이다. 힘들게 달려온 길이지만 마음 한쪽에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비포장도로를 빠져나왔으나 다른 문제에 부딪쳤다. 파리들이 얼굴 주변에서 괴롭히는 것이었다.  한두 마리 꼬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수십 마리로 늘었다. 눈 앞에서 귓가에서 윙윙~ 거릴  때마다 조금씩 짜증 나기 시작했다. 손으로 등을 내려쳐도 잠시 사라질 뿐 다시 모여들었다. 소는 이 짜증 나는 걸 어떻게 참아내지? 결국 자전거를 세우고 서로 파리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갓길에서 수건으로 서로 때려가며 파리를 쫓았다. 아마 사람들이 봤다면  부부싸움하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파리들은 우리를 괴롭혔다. 눈과 귀를 오가며 마치 서로 교대하면 괴롭 했다. 파리대왕이란 소설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오늘은 파리지옥이다. 

이동거리  50.46 km
누적거리 657.90 km


아침에 우릴 바라보던 캥거루



(2014.11.29)

무사히 타리(Taree)에 도착하여 열차 예매를 마쳤다. 호주에서의 자전거 여행은 이것으로 마무리. 벌써 한국을 떠난지도 두 달이 지났다. 지난 일들을 회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잠시 손 놓았던 바이올린 연습도 하였다. 역에서 가까운 캐러밴 파크(Caravan Park)에 딸린 벙크(Bunk)에 머물렀다. 잘 발달된 캠핑 문화 덕분에 호주 여행은 자전거 여행자에게도 제법 편리하다. 다양한 타입의 숙소를 제공하고 있으며, 캐러밴 파크 또는 할리데이 파크(Holiday Park)가 붙은 이름은 모두 흔히 찾을 수 있는 캠핑장이다. 


캐러밴(Caravan) 사이트 : 캠핑카나 주거용 트레일러(Caravan)를 주차하고 전기와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캐빈(Cabin) : 개별 객실. 화장실이 딸린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벙크(Bunk) : 4개 또는 8개 침대를 갖춘 간이 숙소로 통상 화장실과 샤워는 캠핑장 공동 시설 사용한다.  
텐트(Tent) 사이트 : 잔디 위에 텐트를 칠 수 있다. 전원 공급이 될 경우 조금 더 비싸다.

4인용 벙크를 둘이서 쓰니 제법 넓다. 하룻밤에 삼만오천 원($35) 저렴하게 머물렀다.  


여러명이 쓰기 좋은 벙크



(2014.11.30)

이미 열차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열차에서 지난 여행 이야기와 앞으로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나누게 될까. 설렌다. 열차는 꼬박 5시간을 달려 시드니 센트럴 역(Sydney Central Station)에 도착했다.  


센트럴 역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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