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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Aug 09. 2020

리얼한 출산의 고통 체험기

포효하는 좀비였던 그날의 기억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 그중 꾸준히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출산의 고통이다. 믿거나 말거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통증 순위 같은 걸 보면 항상 상위 레벨에 있는 출산의 고통. 이외에도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으니 도대체 얼마나 아프길래?! 라는 호기심이 있었다. 물론 궁금했을 뿐 꼭 경험해보리라 뭐 이런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고통이 눈앞에 닥쳤다. 출산으로 입원하니 가장 먼저 하는 게 자궁수축과 태동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배에 붙이는 거였다. 그리고 수축의 세기를 보더니 간호사가 말했다.


“지금 많이 아프시죠?”

“아, 네 조금 아프네요. 그래도 아직 참을만해요.”


서로 당황스러웠다. 꽤 높게 측정되는 수축 세기에 태연하게 "아프네요~" 하는 나. 간호사는 고통을 잘 참으시나 보다며 나갔다. 내가 고통을 잘 참는다고? 지금까지 고통에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출산의 고통 앞에서 난 아픈 것도 잘 참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한 편으론 다행이었다. 출산이 생각보다 아프지 않겠구나, 이 정도면 참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몇 시간 뒤에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다.


난 내가 작은 아픔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산 방법을 선택하라고 할 때 고민도 없이 무통 마취를 선택했다. 무통 마취가 좋네 안 좋네 말은 많지만 아픈 게 싫은 나는 마취 없는 출산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출산에는 무통 천국이란 게 있다고 한다. 나도 그 천국에 어서 가보고 싶었다. 참을만했지만 이 진통의 아픔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무통 마취는 자궁경부가 4~5센티는 열려야 맞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이 3센티니까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드디어 무통 마취의 시간이 왔다. 마취 주사를 척추에 놓는 건 살짝 당황스러웠다. 옆으로 누운 채 허리를 구부려 새우등처럼 최대한 만들라고 하고 척추에 주사를 놓는다. 문득 예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송혜교가 백혈병에 걸려 치료를 받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 자세로 척추에 무언갈 하고 송혜교가 엄청 고통스러워하던데. 덜컥 겁이 났고, 그만큼 주사는 아팠다. 치과 치료를 받을 때도 마취주사가 더 아프지 않던가. 요즘 치과에서는 마취 주사도 안 아프게 놔주는 기계가 있던데, 주사를 맞으면서 비명을 질러본 건 처음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주사를 세 번이나 맞아야 했다. 평소 링거 맞을 때도 혈관이 잘 안 보여서 여러 번 찔리곤 했는데, 아파서 움찔거린 탓인지 주사가 잘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취의 고통도 잠시. 드디어 나에게도 말로만 듣던 무통 천국이 왔다. 고통이 사라지니 가장 먼저 인증샷을 찍을 정신이 생겼다. 일생일대의 사건을 앞두고 인증샷을 안 찍을 수 없다. 그리고 동네방네 사진을 보내며 나 애 낳으러 왔다고 소문을 냈다. 몇 시간 지속되던 진통이 사라지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하진 않았다. 유튜브에서 배운 바로는 무통 마취 시간에 잠들면 배에 힘이 빠져서 진통 시간이 길어진다고 한다. 또 인터넷 출산 후기들에선 무통 마취 빨로 아기를 낳아야 한다며 시간이 길어지면 자칫 나중에 진짜 아플 때 생으로 아파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글도 있었다. 겁이 많은 나로선 지금 마취돼있는 시간 동안 빨리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취돼서 언제 수축이 오는지 잘 느낄 순 없었지만, 최대한 때에 맞춰 배에 힘을 줬다. 그동안 운동으로 코어에 힘주는 법을 알고 있는 게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계속해서 봉긋해 있는 나의 배였다. 자궁문은 열려가는데 아기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간호사는 옆으로 누워 있으라고 했고,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다시 서서히 진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통은 마취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통 앞에 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시기는 소리가 안 나올 만큼만 아픈 거였다. 고통의 크기는 ‘아....’에서 ‘아윽..!!’을 거쳐 ‘으어어 억!!!’으로 변해갔다. 남편에게 간호사를 불러 마취를 다시 해달라고시켰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 자궁 입구가 이미 7~8센티가 열렸고, 이제 아기 낳을 때 힘줘야 하니 마취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난 아기 낳을 때 마취 빨로 낳으려고 무통 마취를 한 건데! 분명 출산 전 상담할 때 마취주사는 여러 번이라도 놔준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었는데! 방심했다. 진통 중에는 여러 번이라도 마취해줄 수 있지만, 정작 출산 시에는 마취를 해주지 않는다니. 자궁 수축이 올 때 산모가 같이 배에 힘을 줘야 아기가 나올 수 있는데, 마취를 하면 산모가 힘을 줄 수 없어 마취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병원마다 다르다.


이제 진짜 말로만 듣던 애 낳는 고통의 시작이다. 남편 앞에선 언제나 여자이고 싶지만 그런 건 눈에 뵈지도 않았다. 남편이 혹시나 잘못되는 건가 싶어 걱정스럽게 ‘어떻게 아프냐’고 물었지만 ‘아파!!!’라고 비명만 지를 뿐이었다. 진통이 강할 땐 마치 좀비로 변해가는 것처럼 허리가 뒤로 꺾이곤 했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눈을 감고 있으니 눈앞에 별이 보였다. 이 와중에 ‘오~ 진짜 별이 보이네!’ 하고 신기해했던 걸 보니 아직은 살 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원체 타고난 큰 목소리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작아졌는데, 출산의 고통 앞에서 다시 나의 데시벨을 찾았다. 사람의 비명이라기보단 동물의 포효 같은 소리가 나왔다.다른 방에서 내 소리를 들으며 공포감을 더해갔을 산모들을 생각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난 진통이 올 때마다 남편의 손을 꽉 쥐며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그의 팔이 내 입 근처로 왔고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려 팔을 물어버릴 뻔했다. 다행히 이성의 끈은 놓지 않아 물지는 않았지만, 만약 본능적으로 물어버렸다면 살점이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도 순간 팔이 물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이걸 피해야 하나 물려야 하나 찰나의 고민을 했다고 한다.


비명소리에도 꿋꿋이 홀로 평온했던 간호사가 마침내 방에 들어왔다. 내진을 하더니 이 상태면 30분 뒤에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계속 힘을 주라고 했다. 하지만 너무 아프니까 오히려 힘을 줄 수 없었다. 힘을 주기 위해선 몸이 앞으로 숙여져야 하는데, 난 앞서 말한 좀비처럼 계속 허리가 뒤로 꺾였다. 아파서 힘을 줄 수 없으니 마취를 더 해달라고 협상을 시도했지만 실패. 힘을 안 주면 30분이 지나도 아기가 안 나오고 이런 진통이 계속된다는 엄포를 놓을 뿐이었다. 너무 아파 힘주기는 도저히 못 하겠지만, 이 고통이 늘어나는 건 더 안될 일이었다. 덜컥 겁이 난 나는 죽을힘을 다해 힘을 주기 시작했다. 30분이랬다. 30분만 버티면 된다. 진통이 올 때마다 시계를 보며 버텼다. 같은 고통이라고 하더라도 끝이 보이는 고통은 희망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다시 간호사가 왔고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아기가 태어날 때가 된 것이다. 간호사는 의사가 오기 전까지 이제는 힘을 주지 말고 호흡을 하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큰 고통 앞에 그런 말을 한다고 씨알이 먹힐 리 없다. 그때의 내 상태는 ‘모르겠고 나는 아프다!!’라며 진통이 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배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회음부 절개를 아직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가 나오면 자칫 항문 파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 몸은 내 의지를 벗어났다.


다행히 의사는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회음부 절개를 했다. 인터넷에서 출산에 대해 찾아볼 때 가장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 아기가 태어나기 쉽게 질 입구를 살짝 절개하는 거다. 생살을 찢는다니 너무 무서웠지만, 막상 출산할 때 보니 아무 감각이 없었다. 고통은 고통으로 잊는다고 했던가. 진통 앞에 생 살을 찢는지 꿰매는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단순히 마취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취 주사 놓는 것도 모를 정도니, 뭐가 됐든 진통 앞에선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은 게 확실하다.


의사도 왔겠다 이제 거칠 것이 없다. 난 마음껏 힘을 줬고 어느 순간 무언가 쑥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끝난 건가. 힘을 쭉 빼는데 다시 더 힘을 주라는 말이 들린다. “어! 머리 보인다!” 옆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아직 머리만 나온 거구나. 나는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힘껏 힘을 줬다.


‘물컹’


이런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굴을 낳는 느낌이었달까. 우스갯소리로 출산은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라고 하던데 내가 느낀 바로는 생각보다 미끄덩하고 물컹거리는 것이 내 몸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지금까지의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간호사는 핏덩이 아기를 내게 보여줬다. 이내 내 가슴에 누인 아기. 얼떨떨하기도, 감동적이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으로 아기를 보고 있으니 간호사가 아기 이름을 불러줘 보라 시킨다.


“보름아~”


순간 터지는 아기 울음. 태어나자마자 아기도 얼떨떨했는지 울지도 않고 있더니,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아마 뱃속에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리니 그제야 운 게 아닐까. 뭐 물론 그냥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간호사는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당장 젖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엄마의 젖을 기억시키게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다.


이제 아기는 제 아빠와 함께 신생아실로 이동해야 한다. 떠나기 전 아직 내 가슴팍에 올라와 있는 작은 핏덩이에게 준비한 마디를 했다.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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