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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Aug 09. 2020

아기가 태어난대요

진통이란 무엇인가

느낌이 싸했다. 왠지 오늘일 것 같은 기분. 말로만 듣던 '이슬'이 비친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나오겠거니 싶더니,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급하게 진통 시간을 체크하는 어플을 깔고 인터넷 카페에서 진통에 대해 검색했다. 진통이 뭘까? 어떻게 아픈 게 진통이지? 가끔 뉴스에서 보면 지하철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혹여 내가 진통인지 모르고 병원 갈 때를 놓치면 어떡하지?


신경이 온통 배에 가 있었다. 아픈 건가? 이게 진통인가? 그러다가 뭔가 싸르르하게 배가 아픈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거다 싶어 진통 시간을 체크하며 주기가 5분 단위가 될 때를 기다렸다. 출산할 때가 되면 배가 아래로 내려간다는데 내 배는 아직 봉긋했다. 그래도 싸르르한 느낌은 점점 주기가 짧아졌다. 생각보다 진통은 참을 만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주기가 더 짧아지기 전에 샤워를 하고 병원에 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아팠다 안 아팠다 하는 주기가 5분 단위로 짧아졌을 때 병원으로 여유롭게 출발했다. 그때가 이미 새벽 3~4시경이었다.


“아직 하나도 안 열렸네요. 입원하셨다가 유도 분만하시겠어요? 아니면 집에 돌아갔다 오시겠어요?”


나름 야무진 척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찾아간 병원은 나에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퇴짜를 놓았다. 어차피 집이랑 병원은 10분 거리였기에 난 집에 갔다가 다시 오기로 했다. 어쩐지, 인터넷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진통이 참을만하다 했다. 내가 경험한 아픔은 “배 아파”라며 계속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달까.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게 바로 진짜 진통이 오기 전 오는 가진통이었다.


가진통이 있으면 정말 출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다. 이제 진짜 언제 애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 그렇다고 바로 아기가 나오는 건 아니고 사람에 따라 며칠이 걸리기도 하고 몇 시간 뒤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는 아기가 결정한다.


문제는 남편의 휴가. 당장 남편은 날이 밝으면 출근을 해야 하는데 휴가를 쓸지, 아니면 일단 출근했다가 진통이 시작되면 올지 결정해야 했다. 직업 특성상 휴가를 여유롭게 쓰지 못했는데, 휴가를 쓴 날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고 계속 휴가를 이어 쓰기도 곤란했다. 물론 남편이 그냥 출근하고 진통이 오면 나 혼자 택시 타고 병원으로 향하면 그만이지만, 첫째 아이에다가 태생이 겁 많은 우리 부부는 그냥 휴가를 쓰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안 나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막연함과 오늘은 꼭 나올 것만 같은 본능적인 느낌을 믿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고 아침이 밝았다. 배는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아팠다 안 아팠다를 반복했지만, 강도는 계속해서 참을만한 정도였다. 그래도 배가 아프다는 건 아기가 태어날 준비를 한다는 신호. 예전에 어디서 짐볼을 타면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쉽게도 우리 집엔 짐볼이 없다. 짐볼 좋다고 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살걸. 하다못해 필라테스 선생님이 임신 중 좋은 짐볼 운동법을 알려준다고 할 때 사둘걸. 짐볼에 앉아 덩실덩실 몸을 움직이면 아기가 아래로 내려오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진통은 있어도 배가 봉긋해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 나에게 짐볼 운동이 도움 될 것 같았지만 어쩌겠는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 나는 소파에 앉아 몸을 위아래로 흔들어보았다. 생각보다 짐볼에 앉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밖에 나가기는 찝찝한 상황.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얼마 전 구입한 닌텐도 링피트도 꺼냈다. 배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게임을 따라 걷다가 팔운동도 했다가 최대한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가 진통이 올 때면 "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잠시 멈췄다가 계속 게임을 이어갔다. 옆에서 남편은 아프면 하지 말라며 걱정스레 쳐다봤지만, 난 순산을 위한 운동이라며 열심히 했다.


저녁은 오랜만에 분식을 먹고 싶어 배달 어플을 켰다. 근데 순간 또 촉이 왔다. 오늘 새벽에 어쩐지 힘을 써야 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고기다. 오늘은 고기를 먹자. 그렇게 난 분식에서 갈비로 메뉴를 급선회했고, 몇 시간 뒤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조금씩 밑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생리를 해 본 여성이라면 알 수 있는 고통. 가진통 때는 없었던 밑이 빠지는 느낌이 들자 이제 진짜 때가 다가오고 있구나 알 수 있었다. 배가 아픈 강도도 강해졌다. 지금까지가 ‘배 아파, 진통이 오는 것 같아’ 였다면 이제는 ‘아윽!!.............. 하아 이제 괜찮아’로 변했다. 진통이 오는 순간은 움직일 수도 소리조차 낼 수 없이 아팠다.


하지만 생각보다 진통 주기는 짧아지지 않았다. 진통 주기가 규칙적으로 5분이 될 때 병원에 가라고 하는데 아직 규칙적이지도 않고 시간도 10분 내외였다. 사실 이때 병원을 가도 됐을 것 같다. 밑이 빠지는 느낌이 자궁 입구가 벌어지는 아픔이었을 거라 생각 든다. 그래도 전날 새벽에 병원서 퇴짜를 맞은 경험이 있는지라 선뜻 병원에 가기 민망했다. 그냥 갔다가 아니라고 하면 다시 집에 오면 되는 거였는데, 지나고 나니 참 별게 다 부끄러웠구나 싶다.


그렇게 참다 보니 어느새 밤 11시 정도가 되었다. 난 계속해서 진통이 올 때마다 어플로 체크를 하면서도 지금인가? 지금 가면 병원서 퇴짜 안 맞으려나, 이게 진짜 진통이 맞나? 등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참고 참다 이제 진짜 못 참겠다 싶을 때 드디어 남편을 불렀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이제 진통이 강해져서 어플로 시간 체크  할 정신도 없었다. 병원에 가는 동안에도 진통이 올 때면 걸음을 멈춰야 했고, 차 안에서도 남편의 손을 꼭 쥐며 고통을 참아냈다. 병원 문 앞에서도 쥐어짜는 진통의 아픔에 남편의 손과 옷을 꽉 쥐며 진통이 지나갈 때까지 들어가지 못했었다. 그리고 간호사의 내진 결과 자궁문이 3센티가 열렸다고 한다. 바로 입원이 진행되었고 그 자리에서 난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곧 아기가 태어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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