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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Sep 16. 2020

모유 수유의 역습

당연하듯 쉽게 생각하던 지난날의 어리석음

모유를 먹일 것인가 분유를 먹일 것인가. 난 임신 기간부터 당연히 모유 수유를 하리라고 생각했다. 일단 모유가 아이에게 좋다고 하니 가능하면 모유를 주고 싶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귀찮음. 젖병은 매번 닦고 삶아 소독해야 한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너무 귀찮았다. 내가 먹은 것들 설거지하기도 귀찮아서 식기세척기를 쓰는데, 하루에도 몇 개씩 나오는 젖병을 언제 다 삶아 소독하고 있겠는가. 어차피 육아휴직을 해서 24시간 아이와 붙어있을 예정이니 아이가 원할 때 편하게 젖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상상하는 모유 수유는 그랬다. 아이가 배고파 울면 젖을 물리면 끝. 비교 대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강아지들 보면 어미 개가 누워있으면 강아지들이 알아서 찾아와 젖을 물지 않는가. 세상 편한 게 모유 수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의 착각. 일단 모유 수유는 생각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 양이 적을 수도, 유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다양한 원인으로 수유를 못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니 나도 내가 모유 수유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어도 초유만큼은 먹일 수 있었으면 했다.


다행히 나는 모유량이 적지 않았다. 초산이었음에도 젖이 빨리 돌기 시작했고 젖양도 많은 편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유축기를 쓰는데 압력이 가해질 때마다 젖이 쫙쫙 나왔다. 처음엔 10~20mL 나오던 것이 점점 늘어 조리원에서 나올 땐 젖병 두 개가 필요할 정도였다. 유축한 모유가 가득한 젖병을 들고 신생아실로 내려갈 때면 알 수 없는 희열과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넘치는 것은 정녕 모자람만 못 했다. 모유가 많다 보니 점점 아이가 젖을 먹기 힘들어했다. 아이의 작은 목구멍으로 젖이 쏟아져 나오니 수유를 할 때마다 마치 내가 물고문이라도 하는 듯 울어댔다. 젖이 물줄기처럼 '찍'하고 나오는 사출도 심했다. 사출이 목구멍을 강타하니 아이는 젖을 먹다가 켁켁 거리며 헛구역질을 하기 일쑤였다. 젖량은 아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많아졌고, 나중에 가서 아이는 젖을 물다 말고 비명을 지르고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멘탈이 나가는 것 같았다. 사출이 심하면 아이가 나중에 젖 거부를 할 수 있다고 하던데, 내가 아이보다 먼저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 아이가 힘들어 울 때마다 나도 울고 싶었다. 젖먹는 게 아이와 엄마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서 수유 시간이 겁나고 무서웠다.


공기를 먹는 것도 문제였다. 보통 젖병으로 먹으면 공기를 많이 먹어서 트림을 꼭 시켜줘야 하고 배앓이도 많이 한다고 한다. 모유 수유는 아이의 입과 젖이 착 밀착되어 진공상태가 되기 때문에 공기 유입도 없고 배앓이도 잘 하지 않는다. 굳이 트림을 안 시켜도 된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예외였다. 젖량이 많아서인지 아이는 켁켁거리며 공기를 많이 마시기 일쑤였다. 공기를 많이 마셔 한 번에 충분히 수유하지 못하니 자주 젖을 찾고, 그러다 보니 공기를 계속 먹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밤이 되면 아이 배는 가스가 차서 빵빵해졌고, 배앓이가 시작되면서 몇 시간이고 찡얼거리고 울곤 했다.


아이가 편하게 수유할 수 있도록 수유 자세를 얼마나 연구했는지 모른다. 유튜브와 인터넷을 찾아보며 다양한 수유 자세를 공부하고 아이에게 시도해봤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보건소에서 모유 수유 전문가를 보내주는 프로그램 같은 것도 있다던데 코로나19로 다 취소되었다. 그런데 모유 수유 전문가는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내 옆에 두 아이를 모유 수유로 키운 사람이 있지 않은가.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수유 쿠션을 고집하는 내게 그런 거 없어도 옛날엔 다 잘 먹였다며 자세를 알려줬다. 비슷하게나마 흉내 내보니 맙소사 성공이다. 수유할 때마다 몸부림치며 비명 지르던 아이가 다시 얌전히 젖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구토 증상. 살짝 게워내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입과 코에서 토를 뿜어내는 분수토가 자주 일어났다. 아기의 분수토를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 것이다. 울컥울컥하다가 갑자기 입과 코에서 동시에 토를 뿜어낸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두세 번 연속해서 토가 뿜어져 나오는데 처음 경험하면 정말 패닉상태가 된다. 이렇게 자주 분수토를 하는 경우 유문협착증일 수 있는데, 그러면 아이가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해 살이 빠지면서 수술까지 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아기의 경우 살이 토실토실하게 쪄서 병은 아니라고 했다. 구토증상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살이 찌는 걸로 봐서 과식일 것으로 추측된다. 전문가들은 모유 수유는 소화가 잘된다고 달라는 대로 주면 된다고 했었다. 문제는 내가 배고프다고 우는 것과 졸리다고 우는 걸 구분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그냥 울면 젖을 줬다는 것이다. 젖량이 많다 보니 먹어도 먹어도 화수분처럼 젖이 계속 나왔고 결국 구토로 이어졌다. 분유는 얼마나 먹었는지 확인이라도 할 수 있지, 모유는 순전히 내 감과 수유 시간으로만 가늠해야 하니 조절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이가 클수록 점차 증상은 나아지는 듯했지만, 분수토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수면시간도 단축된다. 분유는 소화가 잘 안되는 게 단점이자 장점이다. 그래서 분유를 먹으면 밤에 어른들처럼 7~8시간 푹 자기도 한다. 하지만 모유 수유는 그럴 수 없다.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자주 젖을 찾는다. 죽을 먹으면 금방 배고픈 것과 비슷하달까. 이건 낮에도 문제지만 밤이 더 문제다. 통잠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아니 간혹 그런 아기들이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밤에도 아기는 배고프다고 계속 깬다. 당연히 엄마의 수면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모유 수유의 장점도 있다. 영양분이나 아이와의 애착 관계 형성 등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으니 차치하고서라도, 편하다는 건 무시할 수 없다. 아무래도 아이가 젖을 찾을 때 보다 빨리 젖을 물릴 수 있다. 아기가 딸꾹질 할 때도 유용하다. 딸꾹질을 할 때 젖을 물리면 금방 멎는데, 이때마다 분유를 조금씩 타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목이 말랐는지 잠깐 먹고 마는 경우에도 젖을 물리면 편하고, 잠자기 전에 잠깐 물리면 금방 잠드는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위에 말한 모유 수유의 어려움들이 아기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역시 아기 키울 때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시간이 약인 경우가 많다.  


임신과 출산을 겪어보니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걸 조심해야겠다는 걸 깨닫는다. 모유 수유가 좋다는 각종 연구 결과가 나오니 분유를 먹이는 엄마들에게 모종의 죄책감을 심어주는 분위기가 있다. 모유가 좋다 하니 주위 어른들도 모유 수유 하길 원하는 눈치다. 난 애초에 모유 수유를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에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지만, 분유를 먹이고 싶었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옛날에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이랬을까. 물론 쉽게 아들 낳는 사람들도 있고, 쉽게 모유 수유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아이에게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이 엄마보다 강할까.


그럼에도 나는 모유 수유를 더 해 볼 생각이다. 그냥 나의 선택이다. 힘들긴 하지만 아기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주고 싶은 욕심이 더 클 수도 있겠다. 다행히 아직은 체력이 버텨주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얘기다. 이렇게 고생하며 모유 수유하는걸 아기는 알려나 모르겠다. 아기 건강하라고 이 고생인데, 나중에 아기가 술담배 하면 배신감 들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날 모유 수유로 키우셨는데, 인스턴트 음식과 탄산음료를 몸에 달고 살았던 과거가 문득 죄송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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