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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종은 Sep 16. 2020

옹야족의 탄생

아기가 태어나고 나는 부족장이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많이 안아주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흔히 손탄다고 해서 안아줘 버릇하면 아기가 계속해서 안아달라고 하고 힘들어진다고 한다. 물론 갓난아기일 때는 계속 안아주는 게 큰 무리가 안 갈 수 있지만 아기는 점점 무거워진다. 그리고 언제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하루종일 아기를 안아주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조리원에 있을 때는 나의 결심을 지킬 수 있었다. 아기는 안으나 눕히나 계속 잠잘 뿐이었고 트름시킬때나 잠시 안았다가 내려놓거나 신생아실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남편이 아기를 계속 안고 싶어했을 때도 손탄다고 못 안게 하고 했다. 아기도 침대에 누워있는 게 익숙한지 누워서 혼자 잘 놀고 잘 잤다. 그때만 해도 난 배운 대로 육아를 잘하고 있다는 뿌듯함과 앞으로 편하게 육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나의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갈 수 없었다. 일단 아기는 생각보다 토를 잘 했다.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뿌듯한 마음에 눕혔더니 맙소사 토를 하는 게 아닌가. '트림 하면 토 안 하는 거 아니었나' 싶었는데, 사람 일이 어찌 교과서대로만 가겠는가. 트림을 하든 하지 않든 최소 한 시간은 안고 있어야 마음 편히 눕힐 수 있었다. 


아기는 혼자 자는 게 아니었다. 분명 조리원에서는 혼자 잘 잤던 것 같은데 아이가 클수록 오히려 재워줘야 잠을 잤다. 잠투정도 생기고 졸리면 재워달라고 찡얼거린다. 물론 이를 대비해 수면 교육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해놨다. 아기를 안아서 재우지 말고 아기가 울더라도 혼자 누워서 잘 수 있게 교육시키는 거다. 물론 나도 처음엔 배운 대로 시도했다. 아니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아기가 우는 건 훌쩍훌쩍 우는게 아니다. 동네 떠나가라 우는데 "너는 울어라. 달래주지 않을테니 스스로 자보아라"라며 내버려 두기엔 마음이 약했다. 


그렇게 옹야족이 탄생했다. 아기가 울 때면 그냥 안아주는 걸로는 달래지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걸어 다니는 것도 부족하다. 일단 아기를 안은 상태에서 무릎에 바운스를 주며 집안 곳곳을 걸어 다닌다. 그리고 리듬에 맞춰 "옹야 옹야 옹야 옹야~" 아기를 달래는 주문을 외운다. 그렇게 5분이고 10분이고 의식을 행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옹야족의 부족장이 되어 아기를 재우는 의식을 행하는 착각을 들게 한다. 


그런데 "옹야"는 어디서 나온 말일까? 나는 조리원에서 원장님이 아이를 달랠 때 "옹야~"라고 하는 데서 처음 봤다. 마치 너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듯 달래는 투로 '옹야~'라며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준다. 처음엔 나도 그 말을 내뱉는 게 무척이나 쑥스러웠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을 텐데 집에 와서 보니 엄마도 아이에게 "옹야~"라며 위로한다. 


'옹야'의 뜻이 궁금해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오냐'의 고창 사투리가 '옹야'라고 한다. 아랫사람의 물음이나 부탁에 대하여 긍정하여 대답할 때 하는 말. 그냥 어감이나 말투로 아기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사전적 의미 역시 상대에게 긍정의 피드백을 주는 의미였다. 나도 모르게 옹야족 족장이 되어 아이에게 무한의 긍정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던 거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안돼'라고 말하는 날들이 많아질 거다. 흔히들 말하는 미운 4살과 죽이고 싶은 7살의 시기를 거쳐 사춘기와 중2병도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아이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나는 옹야족 부족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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