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던 모든 마음을 접고

by 조이


사랑이고 뭐고 내 몸이 아프면 소용이 없다는 걸 A형 독감에 걸리고 나서 실감했다. 체감상 코로나보다 더 아팠고, 오랜만에 짙은 무기력을 경험했다. 발열과 몸살 기운이 가시고 난 뒤에도 두통과 구토감으로 인한 식욕부진 때문에 도통 기운이 나질 않았다. 먹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모든 게 귀찮았다. 글쓰기는커녕 읽는 것마저도.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조차도 괴로웠다. 문자를 해독하는 것부터 머리를 쓰는 일,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들은 전부 뒤로 하고 싶었다. 조금 회복된 뒤에도 글쓰기보단 동영상으로 시각과 청각을 자극했다. 그중 몇 개의 다큐멘터리가 인상적이었는데 하필 토요일에 시청한 게 <광주 도심 헬기 추락, 그 후>라는 영상이었다.


어떤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내 홈화면에 이 영상이 떴는지, 나는 왜 그 영상을 시청했는지 모르겠지만 보면서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근처에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와 CCTV에 찍힌 헬기의 추락 장면은 심히 충격적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최선의 판단을 하느라 고군분투했을 조종사의 심정을 생각해 보면서 나는 씁쓸하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날 무안 공항에서 여객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체에 먼저 이상이 있었다고는 하나 착륙 과정에서 공항에 설치된 둔덕과의 충돌로 인해 대형사고로 번진 것이다. 활주로가 조금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둔덕이 없었더라면... 아니 애초에 기체 점검을 제대로 했더라면 등등 의미 없는 가정과 추측 속에서 일순간 이 땅을 떠나간 자들과 남겨진 자들을 생각했다.


굳어버린 머리, 무기력한 몸에도 여전히 뜨거운 피는 돌고 있었다. 올해 여름, 같은 항공사를 이용했던 나는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폭파된 비행기 속에 영영 갇혀버렸다. 사망자 179명이라는 숫자 속에 묻혀서. 시신의 신원이 확인된다 해도 179명 앞에 붙은 사망자라는 글자로 수렴된다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이런 재앙 앞에서 어떤 애도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는 나의 일상에서는. 무기력과 열심 사이에서 아직 깜박, 깜박이고 있는 나의 삶을 나는 다시 쓰기로 했다. 그저 내일 있을 연재를 위해서다. 끼니가 되면 다시 밥을 먹듯이.


전날 광주 도심의 헬기 추락 영상과 함께 시청했던 몇 편의 다큐멘터리는 교육에 관한 것과 경제에 관한 것, 건강과 사회에 대한 것이었다. 특별히 부풀리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조명했을 뿐인데도 숨이 턱 막혔다. 이게 현실인데 무얼 보고 살았던가. 나의 현실은 뭐 얼마나 다른 줄 알았나, 아니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나. 다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겨우 현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몇 편을 시청하면서도 사는 게 참 힘들단 생각을 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무기력한 상태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면 그 상태야말로 내가 현실에 맞서게 되는 가장 현실적인 상태가 아니었을까 한다. 무방비하고도 무기력한 상태.


어떤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최선으로 열심을 낸다 해도, 누군가 열심히 쌓아놓은 다른 장애물에 부닥쳐 결국 부서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설상가상에 속수무책인. 비극적인 사건, 사고를 바라보는 것 같은 염세적이고 비관론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적나라한 현실엔 고통이 있다. 삶과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듯 필연적이다. 그런데 죽음을 만져보지 않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고통을 피해 달아나며 고통에 대해 짐작하는 것은 필사적인 삶의 의지일까 사치일까. 다만 죽음의 때와 형태를 바라는 마음마저도 사치 같단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찾아온 179명의 죽음 앞에서. 필사적이었을 조종사의 마지막 착륙 앞에서. 바라던 모든 마음을 접는다. 살아있으되 죽은 자를 생각한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네가 그런 상황에 있었다면 '엄마야'를 불렀을까? 그래도 엄마는 너를 지켜주지 못했을 거야. 살면서 네가 접하게 되는 사건 사고들, 좋지 않은 소식들 속에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분명한 건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거야. 나쁜 꿈을 꾸고 깨어난 이후에는 '꿈이라서 다행이다'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내게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 수가 없는 거야. 당연히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고 앞으로도 있어선 안 되는 일이지만... 어떤 사건이든 사고든 너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무기력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이것을 기억하렴.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순간도 있을 거야. 모든 게 너의 의지만으로 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도, 끝까지 손 놓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네가 기억하길 바라.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그들이 끝까지 붙잡고 있던 것을."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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