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해버린 거짓말

by 조이


휴직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은 도서관을 출입했던 것이다. 잊고 있던 글에 대한 감각, 글에 대한 나의 취향이 되살아났다. 십 대 때는 취향이랄 것도 없이 엄마가 주워오거나 얻어온 책 꾸러미를 헤집었고, 이십 대 때는 지적 허영심이 꽤나 있었는데 그냥 허영으로 끝나버렸다. 이동진 평론가는 지적 허영심이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긍정하지만, 나의 경우 허영과 실제 욕망의 괴리만큼 자괴감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라캉이 말한 것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보단, 내적 동기를 먼저 탐색하는 데 집중하면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순수한 욕망의 시절로 돌아가, 내가 제일 먼저 집어든 책은 에세이였다. <합정과 망원 사이>, <대체로 가난해서>,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같은 책을 읽으며 나는 물을 빨아들이는 나무가 된 것 같았다. 너무나 오랜만에 책을 단숨에 읽었기 때문이다. 단숨에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90년생이 온다>까지 우연히도 모두 브런치 작가들이 낸 책이었고, 휴직한 지 한 달째 나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읽고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나의 깊은 내적 동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잘한 일은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갔던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치구의 초등학생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독서장학생 선발 제도에 도전하게 했다. 아이 이름으로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대출 카드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관내 도서관에서 출석 도장을 찍기 위해 거의 매일 도서관을 출입했다. 휴직기간에 아이들을 교육기관에 데려다주고서 나는 도서관으로 출근했고, 아이는 학교에 다녀온 뒤 나와 함께 짧게는 삼십 분에서 한두 시간씩 도서관에 머물렀다.


결론적으로 장학생에 선발되지는 못했지만, 관내 위치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재학생까지를 포함하는 대상 인원에 비해 선발 인원이 터무니없이 적었기에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상금이 아니더라도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참여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상금은 하나의 미끼였을 뿐이다. 그리고 상금은 다행히도 내가 충당해 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퇴근길에 상금에 해당하는 액수만큼 출금하여 아이에게 내밀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뚫고 도서관에 왔다 갔다 했던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응당 해야 할 하얀 거짓말이었다.


아이는 예상대로 뛸 듯이 기뻐했다. 평소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누구보다도 그 과정에 성실히 참여한 아이였다. 도서관에서 머물던 시간들, 그 시간 동안 빠져들었던 책 속의 세계를 아이는 살면서 또 다른 세계 속에서 경험할 것이다. 그 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 과정 자체가 아이에겐 소중한 자산이 되겠지만 당장은 알 수 없을 테니 보상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젖는 것도 좋지만, 소나기를 흠뻑 뒤집어쓰거나 웅덩이에서 첨벙첨벙하며 젖어본 경험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라는 것에 대한 추억이 남게 된다면 삶에서 한 번쯤은 이벤트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이런 이유로 아이에게 하얀 거짓말을 해버렸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사실은 엄마가 너에게 거짓말을 했어. 독서장학생에 선정된 건 아니지만 엄마가 주는 장학금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 왜냐하면 너는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니까. 엄마가 그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 했잖아. 엄마는 너와 손잡고 도서관에 함께 가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어. 그 여름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엄마가 좋아하는 공간을 너도 좋아해 줘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몰라.


책을 느리게 읽는 엄마가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도 책 속에 빠져서 엄마를 찾지 않는 너를 보며 속으로 놀란 적도 많단다. 물론 만화책을 훨씬 많이 읽긴 했지만 말이야. 글밥이 많은 책을 읽길 바라는 건 엄마의 욕심이겠지. 자연스럽게, 너의 취향대로, 재미있게, 네 안의 내적 동기로 책을 집어 들고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그렇게 시작해서 너를 둘러싼 세계를 더 알고 싶은 열망으로 천천히 내면을 채워갔으면 좋겠어. 네가 와이(why) 책을 재미있게 읽는 이유처럼 말이야.


이 세상에 정답은 없어. 인생을 먼저 살아본 사람들이 더 좋은 길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좋은지 아닌지는 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이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허영에 지나지 않아. 그렇게 해서라도 내면을 채우는 게 일시적인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오래 지속하기는 힘들 수 있어. 무엇보다도 허무와 억지로 만든 고통에 시달리지 않길 바라.


어떤 때는 익숙하지 않음으로 인해 고통을 겪더라도 배워야 할 세계가 있어.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동안 나의 사고와 행동을 통제해야 하듯이 말이야.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해. 너의 목적은 다른 사람에 있지 않단다. 너 자신이 되는 것, 너 자신을 아는 것. 너와 너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참된 공부이자 가치 있는 과정일 거야. 엄마도 그 과정에 함께 할 거야.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내가 너의 손 잡아줄게. 엄마도 흔들리는 구간이 있겠지만 그럴 땐 같이 쉬어가기로 하자. 혼자가 아닌 것만으로도 우리 서로에게 힘이 될 테니."


* 사진 출처: Unsplash


내가 너의 손 잡아줄게(촛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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