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심정으로
말할 때 특유의 말투가 있듯 글을 쓸 때도 문체가 있다. 나는 말투와 문체가 크게 다른 사람은 아니길 바라고 있다. 쓰는 글과 삶이 다르지 않길, 쓰는 만큼이라도 살아내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내 입에서 하나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퍼버벙 펑, 열이 올라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팝콘이 하나 둘 튀다가 폭발음을 내듯, 내 안에 봉했던 마음과 말들이 터져버렸다.
짜증이 났다. 눈물이 났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쓴 것처럼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해버렸다. 왜, 뭐가 짜증 나는데. 뭐가 억울하고 화가 나는데. 하고 싶은 말이라서 해버린 것 아니었냐고 내면의 목소리가 반문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질러버리는 게 결국 너의 인격이고 너의 언어라고. 이것이 너의 저급한 모국어라고. 같은 모국어를 쓰고 있는 언니와 나의 대화는 실패로 끝났다. 내 마음은 실패감과 참담한 후회로 점철되었다.
정제된 글을 쓰면서 한동안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기뻤다. 김창옥 선생님의 말씀처럼 미국에 가지 않아도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좋은 언어를 물려받지 않았어도 좋은 언어를 배워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문체를, 나의 새로운 언어를 사랑했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신경 쓰지 않으면 팔자로 걷듯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날것의 언어를 지껄였다. 차라리 횡설수설하는 외계어라면 나았을 텐데. 차라리 말을 할 줄 몰랐다면...
무엇을 잃어버려 화가 난 아이처럼 나는 한동안 제자리에서 땅바닥을 발로 차고 있었다. 나는 언어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나의 언어는 무엇일까. 혼란스럽고 후회스러운 날이었다. 이렇게라도, 다시 나의 언어를 찾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